첫째는 매주 한 번씩 동네에 있는 만화책 서점 및 카드게임 shop에 들려서 사람들과 매직 더 게더링(Magic The Gathering)이라는 카드게임을 한다. 주에 한 번씩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카드 게임을 하는 날이 있는데 이 날이 일주일 중 가장 기다리는 날.
나도 간혹 아이들과 집에서 MTG 카드 게임을 하는데 엄청 내 스타일은 아닐지라도 나름 재미가 있다. 트럼프나 화투처럼 간단한 규칙이 아니라 카드끼리 도와주기도 하고 무력화시키기도 하는 데다 함께 플레이하는 다른 사람들의 카드와도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하다 보면 굉장히 복잡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플레이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 게임처럼 효과나 대미지가 자동으로 계산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일이 말로 설명해줘야 하고 주사위나 표식을 올렸다 내렸다 해야 하기 때문. 그 와중에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고 어떤 효과가 우선인지 서로 토론하기도 한다. 그래서 플레이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 정말 시끄럽다. 컴퓨터 게임으로도 있는데 첫째의 설명에 따르면 테이블에 앉아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 플레이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고.
첫째는 이 게임을 작년 연말에 우연한 기회에 간단하게 배웠는데 이후 완전히 푹 빠져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수 십 년 된 카드 게임이고 매년 새로운 카드 덱이 발표되기 때문에 수만 장(?)의 카드들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매일 고민한다. 한두 장이 아니라 100장의 카드를 가진 덱을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조합이 정말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조합에 따라 플레이 방법이 무한하게 늘어난다.
고등학생이 무슨 카드 게임이냐고 할 수 있지만 워낙 복잡한 게임이라 어린아이들은 오히려 어려워 한다. 매주 카드샵에 함께 가보면 우리 집 첫째가 사실상 가장 어린 나이에 속하고 대부분 어른들이다. 말 그대로 어른들의 취미. 돈을 주고 카드를 사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야 원하는 카드를 모을 수 있다. 첫째는 용돈으로 모으는 것 + 인터넷에서 카드 이미지를 받아 실물 크기로 프린트해서 자르고 그걸 다시 일반 카드와 투명 슬리브에 함께 넣는 수고를 하고 있다. 원래는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은데 다행히 동네 카드샵에 오는 사람들은 아직 고등학생인 첫째의 사정을 이해해 줘서 별말 없이 즐겁게 함께 어울린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이야기하면 아마 깜짝 놀라시지 않을까? 대단히 높은 확률로 대학 입시 공부해야 할 손주가 공부 안 하고 다른 거 한다고 걱정하실 것 같다. 그리고 손주 공부에 무신경해 보이는 당신들의 아들래미를 질타하시겠지. 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고, 아이들의 여러 취미를 지지해주고 있다. 특히 사람들과 만나서 함께 어울리는 취미라면 더욱.
첫째와 둘째는 카드 게임 말고도 (첫째는 MTG, 둘째는 포켓몬 카드를 동일 카드샵에서 사람들과 즐긴다) Table talk RPG를 즐긴다. 둘 다 각자 학교에서 TRPG 클럽을 하고 있고 첫째는 별도로 2주에 한 번씩 모여서 플레이하는 친구들도 있다. TRPG 역시 함께 모여서 몇 시간씩 서로 떠들고 토론하면서 플레이해야 하는(그렇게 하고도 모험이 끝나지 않아 몇 달씩 플레이가 이어지기도 한다) 게임이다.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사람과 마주 보고 함께 즐기는 취미가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혼자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거나 PC방에 앉아서 몇 시간씩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한 취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