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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성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by 봄마을

어제 둘째 J의 학교 선생님들과 Zoom 미팅을 가졌다.


8학년이 되고 나서 J는 학교 숙제나 수업을 따라가는데 전과 달리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7학년때 아이는 아빠인 내가 봐도 정말 열심히 지냈다. 수업도 열심히 듣고 숙제도 밤늦게까지 최선을 다해 완료했는데, 대부분의 숙제가 100%를 기록했다. 수준별 수업이 나뉘어 있는 수학은 중간에 선생님의 추천으로 상위 클래스로 옮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8학년이 되면서 여러 곳에서 삐걱거리는 소음이 나기 시작했다. 수학은 하위 클래스에서 잘해서 상위 클래스로 옮기기는 했으나 갑자기 어려워진 내용에 아이가 힘들어했고 다른 과목들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많아진 숙제와 어려워진 내용이 발목을 잡았다. 원래도 늦게까지 숙제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 단계 더 어려워지면서 노력만으로 극복하는데 한계가 온 것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한 번은 이해가 가지 않는 숙제를 이해하고 완료하겠다며 새벽 3시까지 서재에 앉아있기도 했는데 아내가 J에게 그 정도 고민했으면 충분하니 선생님에게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으라고 했으나 아이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해서 냈고 안타깝게도 100%는 받지 못했다.)


J는 머리 회전이 빠른 아이는 아니다. 굳이 빠르다 느리다로 분류하면 오히려 모든 게 느린 아이다. 다른 아이들은 한번 들으면 금방 이해하고 쉽게 풀거나 답을 내는 문제들도 J는 긴 시간 고민을 해야 했고 끝내 문제가 요구하는걸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답을 틀리는 경우도 많았다. 학교 수업만 그런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비슷했다. 하지만 J의 장점도 거기에서 시작을 하는데, J는 모든 질문과 상황을 진지하고 깊게(아주 깊게) 고민한 뒤에 의견을 냈으며 항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예를 들어 '오늘 컨디션 어때?' 하고 누가 가볍게 물어보더라도 오늘 자기 컨디션이 어떤지 깊게 생각해 본 뒤에 답을 했다. 그 과정에서 왜 답을 안 하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할 때도 있었다.) 내가 J의 성적이나 당장의 결과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깊게 고찰한 뒤에 행동으로 옮기고, 행동으로 옮긴 뒤에는 최선을 다하는 성정은 문제 풀이에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삶의 태도였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아이의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것 같은 상황을 이어지게 할 수는 없어 고민이 많았다. 거기에다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이는 전보다 집중력이 떨어졌고 불필요한 (하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존심에 선생님들에게 도움도 요청하지 않고 있었기에 여러 가지로 도움의 손길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학원을 보내거나 튜터(과외선생님)를 붙여주는 것이었는데 며칠 고민하다 머리에서 지웠다. 자칫 스스로 원리를 깊게 고민해 보고 자기가 답이라고 믿어서 풀었으나 틀린 문제들을 몇 시간이고 다시 탐구해 보는 아이의 습관을 망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해 문제풀이 능력만 향상시키거나 다 알아듣게 설명해서 떠먹여 주면 당장의 점수는 올라가겠지만 아이의 삶 전체로 보면 득 보다 실이 많은 방법이었다.


아내와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수학 선생님에게 메일이 왔다. J의 숙제 완료율과 성적이 하락하고 있으며 이 추세면 다음 학기에는 수업을 하위 클래스로 내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인지하는 문제를 선생님들이라고 놓칠 리 없었다. 그 메일을 읽어보고는 이참에 학교 선생님들하고 J에 대해 미팅을 하는 게 필요하겠구나 싶어 학교 카운셀러에게 미팅을 요청했고 어제 그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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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에는 아이의 담당 카운셀러와 각 과목 선생님들이 모두 들어왔다. 그들의 우려는 예상대로였다. 8학년이 되면서 아이의 숙제 완료율과 시험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과,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아이에게 이야기하면 말을 안 하고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것. 나는 집에서 아이가 어떤지 자세히 설명하고 그들이 보는 J의 문제들이 실제로는 J가 굉장히 깊게 고민하고 답하는 성향이어서 생각을 하는 동안은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J는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깊게 고민했는데 선생님이 답을 안 하고 선생님의 질문을 무시한다는 식으로 질책을 하면 그다음부터 오히려 선생님과 대화하는걸 더 꺼려했는데 4학년 때 이 문제가 굉장히 심했었다. 4학년 담임은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그만큼 성격도 급했는데 J를 기다려주지 못했기에 학년 내내 교실에서 J는 입만 닫은 게 아니라 마음도 닫아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런 부분을 설명하면서 선생님들에게 아이의 성정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아이에게 선생님이 기다려준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강조했다. 필요하면 수업이 끝난 뒤에 남겨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야기를 해도 좋은데 절대로 아이가 선생님을 무시한다거나 생각이 없다고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J에게 선생님이 J를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그 말 끝에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J's academic achievement is not my top priority. I care more about J’s emotional health and steady personal growth.


아이의 학업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부모의 말이 선생님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어처구니없었을 수도 있다. 기껏 자기들은 이렇게 모여서 아이의 학교 성적과 수업 참여율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있는데 부모라는 사람들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해버렸으니.


하지만 난 그들이 내 진심을 이해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학교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성적보다 아이가 가진 보석 같은 가치를, 성향을 지켜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그 성향은 당장의 성적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겠으나 아이가 살아갈 삶을 단단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데는 꼭 필요할 성향임이 분명하니까.


J는 8학년의, 그리고 이어질 고학년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솔직히 장담할 수는 없다. 어느 시점에선가 좌절을 할 수도 있고 도저히 안 되겠다며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안되는 일도 있다는걸 십대에 경험하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깊게 고민하고 최선을 다하는 아이의 성정이 어느 날 갑자기 빛을 볼지.


나는 J가 어떤 길을 가게 되든 나와 아내가 동요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우리는 항상 아이를 안아주고, 품어주고,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아이가 삶을 걸으며 마주칠 모퉁이마다 마치 그게 나 자신에 대한 평가인것 마냥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보다 아이의 결과를 함께 받아들여주는 부모가 되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J가 어떤 삶을 살게 되든 스스로를 다독이고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아이가 되기를 기도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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