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깼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다시 잠들기엔 어정쩡한 시간. 새벽은 아니지만 이른 아침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오늘이 토요일이니 평소 같으면 침대에서 나와 이래저래 짐 챙기고 자전거를 차에 실으며 분주하게 주말 아침 라이딩을 준비했겠지만 생각보다 이른 추위와 얼마 전부터 말썽인 오른쪽 무릎은 추운 날씨에 나가서 라이드 하는 걸 주저하게 만든다.
그대로 누워서 휴대폰을 보며 한참 시간을 보내다 문득 벽난로나 미리 지펴 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이 일어나서 거실에 내려왔을 때 활활 타고 있는 벽난로와 함께 훈훈한 거실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유일한 문제라면 뒷마당 장작 거치대에 있는 장작을 거실로 옮겨야 한다는 귀찮음인데 그 정도야 충분히 감수할만했다.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나오니 고양이들이 반긴다. 하지만 거실을 데우려면 고양이들과 놀아주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 길로 뒷마당으로 나가 장작 거치대에서 장작을 주워드는데 문득 하늘을 보니 제법 날이 밝아온 뒤였다. 사진을 찍을까 했는데 폰을 안 가져왔다. 서둘러 정작을 한 아름 끌어안고 거실로 돌아와 불을 지폈다.
벽난로에 장작과 스타터를 쌓아서 불을 붙이고 어둑어둑한 거실이 벽난로에서 나온 붉은빛으로 조금 밝아지는 걸 확인한 뒤 서둘로 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타오를 것 같은 선홍빛 하늘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낮게 내려앉은, 하지만 서로 다른 두 무리 구름의 결이 잘 보일 정도의 빛과 분홍색 아침 햇살이 고운 하늘이었다.
사진을 찍고 잠시 서서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다 집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겨울 초입이라고 하나 얇은 옷 한 겹 있고 서있기에 11월 중순의 아침 추위는 만만치 않다.
거실로 돌아오니 활활 타오르고 있는 벽난로가 반기고 있다. 이제 잠시 시간을 주면 훈훈한 온기가 돌겠지. 거실 불을 따로 켜지 않고 냉장고에서 아내가 만들어 둔 에그 샐러드를 꺼내와서 옆에 놓고 앉았다. 이제 가족들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
따뜻한 벽난로의 온기와 불빛이 일렁이는 어둑한 거실. 문득 와인 한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후면 환하게 날이 밝을 텐데 주책이다. 하지만 그만큼 벽난로의 온기는 와인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기온이 조금 더 올라가면 자전거를 끌고 나갈 생각에 와인은 오늘 저녁으로 미뤘다. 그게 아니라도 주말 아침 와인은 좀 너무한다. 혼자 피식.
평일 아침이면 가장 먼저 일어나 샤워를 하는 첫째가 어제저녁 2박 3일간 진행되는 성당 청소년 피정에 참석하느라 인근 수도원으로 가고 없으니 아내와 다른 두 아이들 중 누가 제일 먼저 거실에 내려올지 모르겠다. 어쨌든 누구든 내려와서 이 고요함을 깨고 벽난로의 온기를 함께 나누기까지 장작이 타며 나는 소리와 열기를 즐기며 이렇게 앉아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