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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Sep 27. 2023

어른이 된다는 것

요즘 첫째와 이런 저런 대화를 참 많이 한다.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주말에 둘이서만 자전거를 타고 몇시간씩 함께 트레일을 다니고 하면서 대화가 더 늘기는 했으나 아이가 7학년에서 8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전과 확연하게 차이가 날 만큼 대화가 늘었다. 이와 관련해서 아이에게 아빠이기 전에 사춘기를 먼저 겪은 한 남성으로서 네가 참 멋있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고 보여 부럽다고 했다. 나는 이 나이때 아버지와 대화 자체를 안하려 했었는데, 이 아이는 다르다. 어른들과 대화를 하려 하고,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변명을 하지 않고 인정한다.(간혹 그래서 더 대담하게 잘못을 저지르기는 하지만....) 요약하면, 내가 못했던 걸 이 아이는 한다. 같은 사춘기에.


어쩌면 그래서 제안했던 것 같다. 어제 저녁 함께 피자를 먹으면서 아이에게 그랬다. 5년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제 성인으로써 집을 나가 독립을 하게 될텐데,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직업을 갖든 혹은 대학을 가든 상관 없이 1년정도 하와이 같은 곳에 가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남는 시간은 주구장창 서핑을 즐기며 해변에서 한껏 시간을 보내고 오는게 어떠냐고. 앞에서 듣고 있던 아내도 즉각 찬성의 뜻을 아이에게 전했다. (사실 우리 부부는 이 이야기를 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하는 아이들과 어떻게 헤어질 것인가 하는 주제로. 한국이면 몰라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독립하는게 당연한 미국 아이로 자라고 있는 우리 부부의 삼형제에게 고등학교 졸업은 곧 독립이다. 그리고 나와 아내는 그걸 받아들여야 하고. 아직 여러해 남았지만 분명 충분한 시간을 가족 사이에 대화해야 하는 이슈임에는 분명했다.)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스스로를 책임지는 성인으로 첫 발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지 고민해보고 또 마음껏 젊음을 즐겨 보는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른으로써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이제 그럴 기회가 없을테니 시작점에서 한번 쉼표를 찍고 가는게 좋다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다. 그런 고민과 사색은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도서관 책상에 앉아서 하기 보다, 하와이 같은 곳에서 파도를 바라보며 하는게 더 낫지 않겠냐고. 19살의 치기 어린 감성으로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그 시간이 돈 버는데는 쓸모 없을 확률이 높지만 아빠 나이가 됐을때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 순간으로 기억이 될지는 상상도 못할 거라는 건 아이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상상도, 이해도 못할테니. 그 1년을 일하고 사색하며 보내든, 그 사이사이 젊음을 한껏 즐기든 그건 아이의 선택이겠지만 어느쪽이든 분명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리라 확신한다.


나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었으나 고등학교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었다.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무엇이 어른인지, 어른으로써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할 기회는 갖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 당시 내게 성인이 됐다는건 다른 사람 눈치 안보고 술 마실수 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부모님이 알려주신 길을 그대로 따랐을 뿐 내 길을 고민해보지 못했던 것. 내가 어른이 된 건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뒤,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던 내 삶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뒤늦은 고민을 해 본 뒤였다.


피자를 한 입 물고 있다 내 말을 들은 아이는 무엇이 웃겼는지 피식 웃고는 답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제대로 고민해 본 적 없는 독립에 대한 이야기와 혼자 타지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을 테고 가슴에 와 닿지 않았겠지. 먼 훗날의 이야기인건 맞다. 한편으로 조금 빠른가.. 싶은 타이밍이기도 했고.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는 내년이 오기 전 그런 생각의 씨앗을 심어 주는건 필요하다고 봤다. 그 씨앗이 고등학생이 되면 싹을 틔울테고 진지한 고민의 초석을 다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다 떠나서, 넌 아빠가 못했던 것 좀 해보면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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