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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Nov 23. 2023

Happy Thanksgiving - 감사한 삶

Thanksgiving Day 아침.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곳에 Thanksgiving 장식을 했다. 제일 앞에 보이는 향초는 둘째가 지난번 학교 장터에 만들어서 팔고 남은 것들. 고이 모셔 놨었는데 이번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때 켜기로 했다. 호박은 할로윈에 집 앞 장식으로 사용했던 진짜 호박인데 아직 멀쩡해서 계속 사용하기로.


매년 추수감사절마다 여러 가정을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내고는 했지만 아내와 나 둘 다 집을 이렇게 저렇게 꾸미는 부지런함은 갖추지 못해 그런 부분에서는 매번 밋밋하게 넘어가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 추수감사절은 그러지 말고 집 안과 식탁을 좀 꾸미자고 아내에게 제안을 했다. 아내도 동의해서 이번주에 식탁보나 집 데코레이션을 추수감사절에 맞게 하고 접시와 그릇도 새로 샀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정말로 추수 '감사' 절 처럼 보내고 싶어서.. 라는 담백한 이유였다.


며칠전 첫째와 성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아이가 "감사할게 없는데 뭘 자꾸 감사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는 말을 했다. 그 때 아이에게 "아빠는 감사하다고 느끼는 일이 없는 삶을 네가 살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 라고 말해줬다. 무슨 소리냐는 아이에게 해 준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늘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마름에 고통받는 사람은 누가 물 한컵을 주면 그 사람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느끼겠지만 마실 물이 풍족해서 목마름을 느낄 일 없는 사람은 누가 물 한컵을 줘도 감사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좀 더 멀리서 바라봤을때, 물 한컵에도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삶과 물 한컵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삶 중 어느게 더 행복하고 원하는 삶일까 생각해보면 1초의 고민도 없이 후자를 고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두 삶 중 하나를 살게 된다면, 후자의 삶을.. 풍족한 삶을 살고 있을때 더 감사해야 할 일 아닐까. 한컵의 물에도 감사한다면, 걱정할 필요도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에는 얼마만큼의 감사를 해야 할까. 그래서 아빠는 네가 평소 감사할 일이 별로 없다고 느낄 정도로 모든 면에서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아래를 내려다 보며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그러네요" 하고 이내 수긍했다.


아빠는 네가 평소 감사할 일이 별로 없다고 느낄 정도로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


종교의 유무와 관계없이 사람은 고통스럽고 절박한 상황에서는 기도를 하든 해법을 간절히 바라든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니 정말로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난 삶은 얼마나 더 매일매일이 감사한 나날인가. 그런데 우리는 행복할땐 오히려 감사 기도를 하지 않고 일상에 대한 감사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후자의 삶을 살았을때 누군가는 내가 노력한 결과라 말할 것이며, 누군가는 운이 좋다고 말할 것이며, 누군가는 부처님의 자비라고 말 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뭐든, 감사하는 마음 만큼은 모두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력한 나 자신에게 감사하든, 행운에 감사하든, 종교적 의미의 감사함이든. 단지 일상에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 뿐.


아이와의 그 대화 이후 나도 여러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아내에게 제안했다. 추수감사절을 정말로 '감사'하는 날로 바꿔 보자고. 장식 한두가지가 그럼 감사함의 표현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그렇게 꾸미는 마음 가짐이 감사함의 표현이 되지 않을까. 평소와 다른,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공간을 꾸미는 행위에서 다시 한번 내 삶의 풍성함과 행복함에 감사해야 함을 느끼지 않을까.


작년까지는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이웃들을 초대 했었는데 올해는 비빌 언덕도 없이 미국에 와서 고군분투하기 시작한지 1년도 채 안되는, 그래서 이번에 첫 Thanksgiving을 맞이하는 두 한국인 이민 가정을 초대했다. 5년전 우리 가족이 그랬듯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고 놀라움과 어려움이 공존하는.. 하지만 낯설음이 조금 더 많은 삶을 살고 있을 이들.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이 땅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는 같은 이민자 입장에서 속에 있는 말들을 테이블 위에 쏟아내놓고 풀어내는 식탁이 됐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웃과의 그런 교류가 지금의 삶에 감사하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감사의 표현이기도 할테니.


Happy Thanksg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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