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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Dec 09. 2023

팀원의 학비 지원 계약에 서명했다


어제, 팀원 한 명의 공부를 회사에서 지원하겠다는 서류에 sign 했다.


가정 여건상 고등학교만 마친 친구였는데 1년 정도 함께 일해 보니 대단히 성실했다. 얼마 전 그 친구가(이후 J라고 지칭) 자기 매니저에게 현재 주 40시간 일하게 되어 있는 근무 조건을 32시간으로 바꾸고 하루는 인근 커뮤니티 칼리지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가능하냐는 문의를 했다. 그 매니저는 내게 허락하고 싶다는 메모를 달아 결재를 올렸고. 사실 Covid-19 상황 이후 인력을 굉장히 tight 하게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명이 하루를 빠지면 그만큼 업무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도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회사에 이런 지원을 위한 규정도 없었고.


하지만 내 입장에서 제일 컸던 문제는 J가 공부하고 싶다는 분야가 air conditioning이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충분히 이해는 갔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입장에서 일반 회사에서 일하는 건 사실 크게 비전이 보이지 않는 일이지만, air conditioning을 공부하고 field에 나가서, 특히 이곳 미국에서, 몇 년만 경험을 쌓으면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할 테니까. 그러니까, 내 입장에 쉽게 승인할 수 없었던 건 J의 요청은 공부를 마치면 회사를 떠나겠다는 명백한 의사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젊은 친구의 생각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 게, 이제 고작 스무 살이 된 상황에 자신의 인생을 멀리까지 내다보고 설계하고 있었다. 면담 중 그런 J가 그런 말을 했다. 자기 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을 못했지만 대신 어떻게든 아들인 자기와 자기 동생은 고등학교까지는 졸업을 시켜줬단다. 그러니 자기도 아버지만큼 노력해서 자기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그러면서 그렇게 세대를 거칠 때마다 나아지면 결국 자기 가족의 전체 삶이 나아지는 것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이 말을 듣고 잠시 묵묵히 있었다. 과연 내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스무 살의 나는 그러지 못했었다. J의 아버지를 만나보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학점당 학비를 청구하는 이곳 커뮤니티 칼리지 특징상 한 과목씩만 들으면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수업 시간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대신 여러 해 공부를 해야 하는데 J는 그 시간을 버틸 돈을 일해서 벌겠다는 것. 주중에도 회사 근무 시간이 끝나면 우버를 몰면서 돈을 벌고 있었는데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상황이었다. 잠깐 대화를 해보니 주말 포함 나머지 3일은 책상에 앉아서 살겠다는 각오였다. 어쨌든 뜻은 가상하지만 회사는 자선 단체가 아니니 그의 이런 의지를 지원해 줬을 때 회사에 어떤 이득이 있는지가 불투명해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솔직히 회사는 손해만 보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의지를 꺾고 싶지 않아 그 부서의 매니저와 HR디렉터, 나까지 셋이서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야기를 하다 회사에서 역제안을 하기로 했다. 제안한 조건은 아래와 같다.


(1) 필요한 학비(등록금 + 교재비용 + 기타 등등)는 회사에서 전액 지원 (단, A 학점일 경우. B는 75%, C는 50%)

(2) Electrical engineering을 공부한다는 조건 

(3) 의무로 주 3일 출근해서 근무하고 나머지 이틀은 공부하는데 쓸 수 있음. 단, 회사에서 필요시 Over Time 은 해야 함. OT 하는 시간은 법에 명시된 대로 1.5배 pay 하겠음

(4) 전체 코스웍은 2년 안에 마쳐야 함.

(5) 공부를 마친 후 최소 2년은 우리 회사에서 근무해야 함

(6) 공부를 마치면 title을 Sample assistant에서 Junior Electrical engineer로 바꾸고 그에 합당한 salary를 지급함 (hourly pay 인 근로 조건을 annual salary + bonus로 바꾸겠다는 의미. Hourly pay보다 salary를 받는 경우 일반적으로 좀 더 job security가 높고 total compensation이 좋다.)


마침 우리 회사는 Electrical engineer가, 특히 Junior level의 인력이 필요했는데 만일 J가 기초적인 electrical engineering을 익히게 되면 바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을 HR 디렉터가 떠올렸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나는 말할 것도 없고 CEO도 흔쾌히 승인했다.


그렇게 해서 산출된 연간 지원 비용은 대략 3만 달러. 향후 2년간 총 6~7만 달러 정도의 투자를 회사에서 하기로 했다. 갓 스무 살이 된 J는 기쁘게 그 계약서에 sign 했고 어제 아침 팀의 VP인 내가 최종 sign을 했다.


어쩌면 J는 최고의 스무 살 생일 선물을 받은 셈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성실한, 그리고 성장하는 직원과 좀 더 오래 일 할 수 있게 됐다는 소득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논의 과정에서 J를 도와주고 싶다는 회사 구성원들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회사의 몇몇 엔지니어들은 그에게 모르는 것이나 숙제를 도와주겠다고 했으며 다른 엔지니어는 지금부터 오실로스코프 사용법 등 조금씩 실무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J의 매니저는 부족해질 근무시간을 위해 그가 좀 더 업무를 가져가겠다고 했고 CEO와 재무 담당자는 이 정도 투자는 그와 회사의 미래를 위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줬다. 


이로써 최소 6년은 이 젊은 직원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게 됐다. 내가 이 회사에 계속 근무한다는 가정이 필요하겠지만.




* Cover image: BMystic Art Desig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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