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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Jul 11. 2023

신생아에서 졸업하는 날 엄마도 성장했다

지나친 결연함은 그 무언가를 이겨내고자 하는 것과 같다.

이는, 들여다보면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그 무언가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굳이 과하게 단단해질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출산을 하러 병원에 향하던 날, 나의 마음가짐은 참전용사 급이었다.

‘결단코 흐트러지지 않으리.’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승모근은 바싹 올라있었다.

온갖 책과 강의 속에서 일러 산후 우울증, 건망증 등을 한 톨도 허용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치열한 명상과 깨어있음으로 한 놈이라도 스멀스멀 들어오려 하거든

초강력 펀치를 날려주겠다며, 꿈에서도 24시간 경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TV는 켜지 않았고, 새벽에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개고 곧바로 성경일독부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나면 회복을 위해 복도를 걸었고 시간이 나면 책을 읽었다.

360도 카멜레온 눈을 하고 경비를 서는 군인의 마음가짐이었다.     


실은 이 모든 것이,

내가 지치고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의식한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쏴아 쏴아 세차게 비가 내린다.

아기가 태어난 지 오늘로 30일이 되었고,

이틀 동안 배앓이를 하던 아기는 아침에 시원하게 변을 보았다.

평온한 아기의 표정을 보니 그것이 얼마나 기쁜지

내 마음속까지 깨끗하게 비워진 기분이다.

     

시원한 빗소리를 듣자니, 오늘 내 마음은 햇살 밝은 날과 다름이 없다.

오히려 더 상쾌하고 마치 숲의 한가운데 들어와 숨을 쉬는 것 같다.

‘시련’이 다가오는 것을 표현할 때 ‘비바람이 불어온다’라는 관용구를 쓰게 되는데,

문득, 비와 바람이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날이 이렇게나 좋은데.

바람 부는 날도 낭만적일 수 있는데 말이다.      


아기가 신생아에서 영아로 거듭난 오늘.

엄마도 조금은 성장을 한 것 같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하던 엄마가

드디어 꽉 쥔 손에 힘을 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몸이 아프고 쑤시면 기를 쓰고 이겨내려 하지 말

그에 맞추어 좀 쉬어도 보련다.

멜랑꼴리 씨가 똑똑하고 문을 두드리면,

게 물러 섰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셨소." 하고 여유롭게 맞이하며 그 친구 이야기도 좀 들어주고 싶어졌다.

 

르르 졸졸졸-

    

세차게 내린 빗물이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유유자적 흘러간다.

내 마음 길에 종이배를 띄워 그 위에 누워 본다.



신생아 졸업을 축하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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