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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Aug 03. 2023

엄마의 작은 방


"이안이 좀 더 크면 혼자 어디 여행 다녀올래?"

불현듯 남편이 말했다.


나는 웃으며


"아유 됐어."


라고 말했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자유로운 마음으로 배낭 하나 들고 훨훨 떠나는 것이 묘미인데, 심장을 집에 두고 굳이 애태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안타깝게도) '여행 다녀올래?' 하는 한마디면 밤샘 육아로 인해 솟아오른 승모근이 금세 녹아버리는, (가성비좋은) 그런 사람이었다.


다만, 말이 나온 김에 여행에 비등는 혜택을 고를 수 있다면 = 작은 나만의 공간에 앉아 있을 시간에 대한 자유. 그거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잠들고 아기의 숨소리가 메트로놈처럼 새근새근 일정해지면, 슬그머니 방으로 향해 찰칵 불을 켠다. 조심조심 책장을 넘기면서 런던 시내도 걷고 기가 막힌 논문 발표 현장도 들러보노라면 심장이 쿵쿵. 필사를 하며 내 숨결로 한번 내쉬어보고,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에 강의안을 다듬다 보면 이미 나는, 혼자 어디 좀 다녀온 사람이 되어 있다.


잠시 외출 후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톤이 높아지고 입꼬리가 쓰윽 올라가듯, 이렇게 나의 작은 방에 다녀오고 나면 아기를 안고 토닥이는 손사위도 한껏 흥겨워진다.


이따금 동화 작가도 되어본다.


"옛날 옛날 은하수 별나라에 춤을 좋아하는 아기별이 살고 있었어요. 별님은 간절히 소원을 빌어 지구별로 날아왔답니다. 아기는 춤을 추고 싶을 때마다 '응애!'하고 힘껏 외쳤대요. 그럼 엄마가 호다닥 달려와 밤새 춤을 추게 해 주었거든요. 두 사람은 심장을 맞대어 왈츠도 추었고요. 펑키한 음악에 신나게 들썩이며 까르르 웃기도 했답니다. 아기는 엄마와 춤을 추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어요. 은하수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시간도 떠올랐고요. 엄마의 별빛 눈동자가 그리울 때면 아기는 울고 또 울며 엄마를 애타게 불렀답니다. 응애! 으응-애애-! (엄마 춤춰요! 우리 또 춤춰요!)"


새벽 어느 날 이 동화를 떠올리고부터는 아기가 나를 부를 때마다 발걸음이 벼워졌다. 정말 아기가 나와 춤을 추고 싶어 불러준다는 생각이 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아기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함께 춤을 추다 보면,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란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책과 노트와 노트북과 펜이 함께하는 엄마의 작은 방은 나의 여행지이자, 꿈다락방이자, 안식처이다. 그리고 이곳은 또 하나의 '나' 이기도 하다. 이번 여름휴가가 퍽 즐겁고 낭만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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