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샘 Oct 02. 2024

14. 뻔한 이야기가 진리가 되는 순간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

모두가 영웅이 될 수는 없지만


머리로 이해한 것이 바로 삶에 적용되면 얼마나 좋을까? 동기부여가 팍팍되는 자기 계발서를 읽은 후 그 마음이 바로 내 일상에 적용이 된다면 나는 지금과 엄청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건강, 가족의 소중함, 유한한 인생, 당연하지 않은 평범함의 위대함... 뻔히 아는 것들이 내 것이 되지 못한 게 많다. 


내가 죽는 순간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죽을 걱정 없이 살아있는 지금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그런데 아무리 그런 생각을 해도 일상은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혼자 해야 하는 집안일에 짜증이 나고, 남편이 남의 편으로 보일 때도 많다. 이렇게 살다가 내가 덜컥 죽기라도 하면 저 어린아이들 데리고 어찌 살지 걱정이 되어 못 죽을 판이다. 삶의 진리라는 것들을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일상이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생각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아무리 좋은 공부를 하고 깨달음을 얻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같기가 어렵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다짐하고 실천하다 작심삼일로 돌아가는 일이 수없이 반복된다. 괜찮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지만 나름대로 잘살고 있다. 지행합일이 되는 경지까지는 아니어도 머리로 아는 것이 내 삶이 지향하는 목표가 되면 적어도 방향은 잃지 않는다. 모두가 대의를 실천하기 위해 난세에 뛰어드는 영웅이 되거나, 깨달음을 실천하며 세상을 이끄는 현자가 될 수는 없다.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작은 행동 하나라도 실천하려는 마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조차 못하는 사람도 넘치는 세상이니 말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사춘기 아이와 갱년기 엄마가 누가 더 힘든지 겨루면 누가 이길까?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대개는 갱년기 엄마가 져주는 것으로 겨루기는 끝나지 않을까 싶다. 갱년기도 신체적, 심리적으로 사춘기 못지않게 질풍노도를 겪는다. 나처럼 30대 중후반에 아이를 낳았다면 내 몸과 마음이 격동기를 지날 때 아이의 사춘기까지 겪어낼 가능성이 크다.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낼지는 나에게 달렸다. 


겪어보지 않은 일은 실제보다 더 겁이 나기 마련이다. 다행히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 나이를 겪은 인생 선배들의 조언이 있어 처음 겪는 갱년기, 처음 키우는 사춘기 아이의 마음을 받아 줄 수 있다. 조언을 건네는 이가 가까이 있다면 좋겠지만, 나와 닮은 삶을 살았던 친정 엄마도 없고 특별히 사교적이지도 않아 주변에 조언을 해줄 이가 별로 없는 나에게는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것은 책 읽기다. 가장 쉽고 편하며,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없고, 심지어 돈도 안 드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나는 날마다 인생을 배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침울해 있다가 어느 날부터 동네 도서관을 줄기차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죽고 사는 문제가 너무 감당하기 어려워서 죽음에 대한 책을 팠다. 사람은 아무리 잘나거나 못나도 결국 죽는데 지금의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답을 찾아 헤맸다. 정답은 없었지만 엄마의 죽음도, 언젠가 겪을 나의 죽음도 두렵지만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지금의 나’에게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내가 누구인지 말하기가 어렵다. 착한 아이로 자라면서 겪지 않았던 심리적 방황을 마흔 고개의 정점을 넘어가면서 오롯이 다시 겪는 중이다. 그러면서 내가 찾지 못한 꿈과 돌보지 못한 몸과 남의 시선에 휘둘리며 살았던 마음을 안쓰러워했다. 유예된 정체성을 다시 만들기 위해 매일 한 줄이라도 읽고 썼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진짜 나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으면 억울할 것 같아서 나를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책 읽기로 인생을 공부한 덕이다. 


제대로 살아보자고 마음먹으니 해야 할 일들이 자꾸만 생겼다. 읽어야 할 책도 많고, 몸 건강도 챙겨야겠고, 어차피 해야 할 일상의 일들을 조금 더 살뜰하게 살펴야겠다는 마음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다. 궁하면 통한다 했다. 자투리 시간들을 붙잡아 작은 루틴을 만들었다.

밥과 찌개가 끓는 동안 젖은 손을 잠시 닦고 선걸음으로 책을 한두 쪽씩 읽었다. 운동으로 인생이 달라졌다는 이들의 에세이부터 의사나 한의사 같은 전문가의 식생활 개선과 관련된 책은 저녁 준비할 때 가볍게 읽기 좋았다. 잠들기 전에는 작은 램프를 켜고 마음을 돌보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읽다 졸리면 바로 책을 덮고 불을 끈 후 눈을 감았다. 길면 이삼십 분, 짧으면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읽은 페이지는 한 장씩 늘었다. 

자잘한 생활 습관부터 살아가는 이유를 묻는 책, 뇌과학과 심리학 분야까지 두루 읽기 시작했다. 건성으로 살아온 탓인지 읽을 책이 차고 넘쳤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나에게 책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넓고 깊게 보기를 권했다.



내 인생을 구할 수는 있다


막연히 잘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대다가 지치면 대충 살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때로는 인생책이다 싶을 만큼 구구절절 마음에 쏙 와닿는 책을 만나기도 했다. 달라지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희망에 찼다가 도로 주저앉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계속 책을 읽었다. 엄마 잃은 상실감을 핑계로 말수가 줄고 혼자 책 속으로 침잠했지만, 그것은 내 변화의 일부였다. 아무도 내 마음의 소용돌이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나는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배움의 재미를 알았다. 무릎을 치며 혼자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리는 때는 그 벅찬 감정과 깨달음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졌다. 그럴 때는 없는 솜씨에 끄적끄적 글도 썼다. 살림도 하고 아이들도 키우면서 중년의 질풍노도를 겪어야 했기에 많은 책을 읽지 못했고, 읽은 책들도 좋기도 하고 그저 그렇기도 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더디고 돌아가도 읽은 책들이 무용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니 나를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에 절로 생각이 깊어진다. <미래의 나를 구하러 갑니다>(변지영 지음, 더퀘스트, 2023)라는 책은 그런 생각을 하던 때 눈에 띈 책이다.

제목 참 잘 지었다 싶다. 내가 다른 나이였다면 지금처럼 저 제목이 와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십 대는 사춘기 아이처럼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며 마음이 흔들린다. 아이들이 다 자라면 나는 어떤 모습일지, 반백 년도 더 살았을 그 나이에 집에서 애만 키우던 내가 남들처럼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 마음 한 자락을 붙잡고 미래의 나를 구하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저자는 심리학과 뇌과학의 다양한 지식들을 잘 버무려서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려준다. 계획만 세우고 실천하지 못하는 나같은 '프로결심러'에게 저자는 우리가 멋진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워놓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나를 내가 아닌 타인처럼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령 우리는 기부가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 싶지만 여유가 없어 못하는 선행'인 경우가 많다. 미래의 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미래의 나를 타인처럼 생각하기에 기부처럼 적극적이지 않다는 거다. 미래의 내가 남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미래의 내 모습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단다. 이지성 작가의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Vivid Dream)’이 떠오르지만, 그보다 좀더 과학적 논거를 제시한다.


심리학과 뇌과학 논문을 들이밀며 "당신이 달라지지 않는 것은 의지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니 지금껏 못다 이룬 계획이 많아도 마음의 부담이 준다. '게으른 뇌'를 잘 활용하기 위해 조금 더 치밀한 전략을 짜면 된다. '습관'이 의식하지 않고도 자동적으로 하게 되는 행동이니, 원하는 바를 습관으로 만들면 된다. 실패해도 좋다. 그 역시 성장하는 과정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설 용기만 있다면 괜찮다. 이 용기는 자기 효능감에서 나온다. 자기 효능감은 이미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잘할 수 있다는 자기에 대한 믿음'이다. 지금 내 꼴이 마뜩잖아도 달라질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정해 행동을 선택하면 더 효율적으로 목표나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자기계발서 <퓨처셀프>(벤저민 하디 지음, 최은아 옮김, 상상스퀘어, 2023)에 나오는 '지금 미래의 내가 돼라'와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어느 관점에서 보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느 책을 읽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문제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다 성공하지 않는 잘 사는 방법. 잘 살기란 참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자기 내면을 탐구하는 책이든 행동 변화를 강조하는 자기계발서든 돌고 돌아도 결국은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돌보는 것이 잘사는 비결인 듯싶다. 몸(뇌)과 마음(심리)을 다해 나를 어여삐 여기면 뭔들 이루지 못할까!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지만, 실제로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에 소원을 빌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바라는 건 많지만, 그 짧은 시간에 번뜩 떠오를 만큼 간절하게 품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들 중에 하나를 고를 때쯤이면 별똥별은 사라지고 없다. 20대 초반, 남해 금산 꼭대기에서 해뜨기를 기다리던 새벽녘에 생각지도 못한 별똥별을 본 적이 있다. 주룩주룩 별이 그린 선들이 아직 어두운 새벽하늘을 수놓았다. 설렌 마음으로 소원을 빌어야겠다 생각했지만, 너무 많은 생각들이 서로 자기가 먼저라며 아우성치는 바람에 정작 온 마음을 다해 빌었던 소원이 없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앞다투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많지만, 만약 별똥별을 본다면 분명하게 소원 하나는 빌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바라는 것들을 품고 있는 내가 진정한 나로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다.     

이전 14화 13. 평범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