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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Nov 30. 2023

<몇 줄의 문장과 몇 푼의 돈>

조각난 마음을 잇는 글쓰기의 힘


<희석 지음, 발코니, 2021.>



글 쓰는 사람의 작은 에세이집이다. 제목이 참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어봐도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글쟁이의 이야기다. 


나도 글쓰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은 돈벌이와 무관하다. 정체되지 않으려는, 지나간 후 이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위로하기 위한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의 기록들이다. 잘 쓰지도 못하고 허접하기 그지없지만,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다 보면 뭉텅 흘려보낸 많은 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들었다는 서글픔이 덜 할지도 모른다.



밥벌이에 대한 부담도 없건만, 지극히 내 만족을 위해서 쓰면서도 글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의욕에 차서 매일 무슨 내용이든 쓰겠다고 덤벼드는 날도 있지만, 꾸준히 글을 쓰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없는 내용을 쥐어짜서 쓰는 날들이 태반이다. 더구나 가족들이 모두 있는 주말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날은 밤에 혼자 있을 때 써보겠다는 결연한 마음도 잠시, 돌봄에 지쳐 잠들기 일쑤라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쓰는 행위의 지속성을 확보하기만 어려운 게 아니다. 내용은 두말할 것도 없다. 잘 써야만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쓰다 보면 잘 쓰게 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으면서도 매번 한계에 부딪치는 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글쓰기는 그만큼 어렵다.



그런 글쓰기가 밥벌이 수단이 되면 어떨까? 솔직히, 상상은 많이 해 봤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어느 날인가엔 책도 내고 작가라는 직함으로 불리는 상상.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읽어주지 않아도, 아직도 글로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게 부끄러운 초보 글쟁이지만 상상이야 뭔들 못할까.




저자는 1인 출판사 대표이자 작가다. 지방 사립대 출신의 젊은이가 야심도 품었다가 자격지심에도 시달렸다가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게 된 이야기다. 몇 줄의 문장을 쓰는 것은 쉬울 수도 있으나,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현란한 수식 없이, 겪은 바를 담담히 풀어내는 저자의 솔직한 글 속에서 현실감이 느껴진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그가 글쓰기와 책 만들기를 계속할 수 있는 건 젊은 패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철저한 분석도 있었을 것이고, 불안한 미래와 고달픈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해 볼 때는 '그냥' 해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 일에 미래가 있는지, 시작하기에 늦진 않았는지, 내 능력과 어울리는지,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것인지 다 따지다 보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중략)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걸을 때 '저길 내가 어떻게 지나가지?'라며 미리 걱정하기보다는 '저길 내가 어떻게 지나온 거지?' 하며 무모했던 과거를 돌이켜보는 게 더 나았다. (<몇 줄의 문장과 몇 푼의 돈>, p. 155.)



청년 시절을 돌아보니 나도 힘들기는 했다. 나 자신에 대한 불만과, 현실의 높은 기준과, 보이지 않지만 견고한 차별들이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었다. 어찌어찌 잘 버티고 나이가 드니 지금은 소박해도 궁하지는 않은 일상을 누릴만한 여유가 생겼다. 그럼에도 아직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더 많이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치열하게 살지 못한 나약한 젊은 날에 대한 후회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백그라운드 없이 성실히 살아온 저자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일면식도 없는 남인데 저자의 출판사가 그의 노력만큼 잘 되기를 바라게 된다. 


출판계의 현실과 글쟁이로서의 고민도 공감이 간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고달픔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숙명일지도 모른다. 뜬구름만 잡기보다 저자의 말처럼 '조각난 마음을 잘 붙들고 다음을 위해 꿰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모양새가 되었든 이 조각보가 필요한 곳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이에 굴복하지 않고 조각난 내 마음을 하나씩 이어 붙이다 보면 몇 푼의 돈에 연연하지 않고 몇 줄의 문장에 만족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누군가의 개인적인 독백이 나에게 힘이 되는 것, 그것이 에세이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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