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꼈던 적이 있는가?
난 보통 "그래도 감사한 거지."라는 태도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정말로 행복해서 감사한 것도 있지만
보통은 감사할 수 있기에, 그래도 만족할 수 있기에 행복한 거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목회자의 직업적인 특성이 반영된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신혼여행은 정말로 행복한 감정 그 자체였다.
정말로 행복해서, 돌아보니 또 역시 감사뿐인.
결혼식이 감사한 기억이라면, 신혼여행은 정말로 행복한 기억이다.
이를 더 잘 표현할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 신혼여행지는 파리였다.
보통 유럽 쪽으로 간다면, 출장이 아닌 이상 한 도시만을 가는 것이 드물지만 우린 파리에만 머물렀다.
신혼여행 기간이 워낙 짧았고, 신혼여행 말고도 결혼 관련해서 준비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난 유럽 쪽을 가는 것보단 가깝고 싼 동남아를 가길 원했지만, 아내는 꼭 파리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낭만의 도시.. 파리! 좋지. 다만 현실은 또 그렇지 않다고 하던데.
난 유럽, 그중에서도 파리에 대한 환상보다는 현실적인 면을 더 많이 들어왔기에 크게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뿐인 신혼여행에서 꼭 가고 싶다는 장소가 있다고 하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파리로 여행지를 정했고, 그렇게 향했다.
많은 기대를 한 쪽은 아내였지만, 현지에 도착해 더 신난 것은 오히려 나였다.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피곤하고 긴장되었기에 별다른 느낌이 없었으나, 택시를 타고 파리 시내로 들어오던 순간과 거대한 개선문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단숨에 파리에 매료되었다.
그저 독립문 정도를 생각했다가 거대한 개선문이 눈앞을 가득 메우니 금세 마음이 들떴다.
반대로 계속 신나 있던 아내는 그제야 지쳤는지, 첫날 저녁을 먹을 땐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그것이 파리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날과 귀국일에만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디즈니랜드를 가는 길에서도, 개선문을 보러 갔을 때도, 에펠탑을 방문했을 때도 계속해서 비를 맞으며 다녔다.
귀국 날 공항으로 픽업해 준 한인 택시 기사분은 파리 날씨가 원래 이렇지 않은데 정말 이상하다며 우리 여행 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린 점을 안타까워했다.
"신혼여행인데 계속 비가 와서 속상했겠어요." 기사분이 오히려 안타까워했지만, 사실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물론 비가 와서 조금 더 힘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날씨 때문에 우울하거나 슬프진 않았다.
우린 에펠탑 배경으로 스냅사진을 찍을 때도 비가 왔다.
폭우가 쏟아져 촬영을 잠시 중단할 정도였다.
잠시 촬영이 멈춘 동안, 사진작가는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사실 전 타임 분들은 비가 와서 우울하셨는지, 표정이 별로 안 좋았는데, 두 분은 오히려 즐기고 계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언제 비 내리는 파리에서 이렇게 사진을 찍어보겠어요?" 웃었고, 작가분도 함께 웃었다.
비가 와도, 그 비를 맞으면서도 걱정되거나 안 좋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뭐가 제일 좋았어요?" 지인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냥 정말로 모든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약간의 아쉬움마저 그리운 기억이라니. 이 얼마나 소중한 행복감이란 말인가.
사실 난 그다지 긍적이거나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걱정이 많고 긴장도 자주 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파리에선 뭐가 날 그렇게 들뜨게 하고, 만족스럽게 했는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를 정리하며 난 메모장에 '낭만 아닐까?'라고 적어두었다.
그래. 사실 난 그때 우산이 아닌 낭만을 쓰고 함께 파리의 거리를 걸은 것 아닐까 회상해 본다.
우리의 신혼집 거실엔 파리에서 찍었던 사진들이 걸려있다.
유일하게 집 인테리어에서 내가 신경 쓴 부분이다.
가끔 사진들이 시선을 잡을 때면, 언제 또 그 낭만 속으로 갈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낭만의 도시, 파리.
나의 낭만도, 우리의 낭만도 조금 보태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