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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 Jul 14. 2024

드디어 여동생이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신혼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내 여동생.

이렇게 같이 살기 전까진, 난 여동생과 그리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게 사실이다.

워낙에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군대를 시작으로 학교 생활 그리고 직장생활까지 모두 집 밖에서 했기 때문에 떨어져 있는 시간이 워낙 길었다.

또한, 마음을 잘 내비치지 않고, 과묵한 나의 성격이 동생에겐 조금 어려웠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진 않다.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늦둥이 여동생이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해줘야 할지 잘 몰랐다.

그래서 생일이나, 어린이날이면 부모님이 사주지 않을 법한 비싼 선물에 마음을 담아 무심한 척 건네주었다.

같이 살게 된 올해 초반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식사시간이 되면 말없이 밥을 차려주고, 가볍게 오늘 하루 뭐 했는지 정도만 간단하게 물어보는 정도였다.

여동생이 어렵다는 표현은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여동생을 대하는 게 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동생도 그러한 오빠가 당연히 어렵고 또 조금은 무서웠을 것이다.

마치 학교에 한 명씩 있는 선생님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동생을 알고 함께한 기간은 얼마 안 되었지만, 정말 편하게 대했다.

심지어 집으로 놀러 온 동생 친구들과도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이야기하며 놀 정도니 MBTI에서 말하는 대문자 E(극도로 외향형 인간을 말한다.)이다.

극도로 내향형은 나와는 정반대이다.

그리고 동생은 그렇게 밝고 또 장난도 쳐주는 언니를 무척이나 따르며 좋아한다.


 이렇게 우리 셋이서 살아간 지도 벌써 6개월이나 지났다.

그리고 처음과 달리 동생도, 나도 조금씩 서로가 편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셋이서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고, 장도 같이 보고, 간혹 게임도 하고, 또 공부도 같이 하며 자연스럽게 서로가 편해진 것이다.

동생은 여전히 아내가 없이 나와 둘이 있을 땐, 자기 방과 우리 집을 오가며 생활하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끔은 재잘재잘 거리며 말해준다. 그리고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우리 집 쪽으로 아예 넘어와 나갈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그런 동생에게 아내는 성악 연습은 했는지, 공부는 했는지 물으며 안 했으면 빨리 가서 하고 오라고 하지만 언니가 너무 편해진 것인지 아니면, 언니랑 조금 더 있고 싶은 것인지 아내의 말은 잘 듣지 않는다.

꼭 그럴 때면 아내는 큰소리로 "오빠~ 동생 좀 혼내. 이제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해." 나 들으라고 말한다.

그럼 난 그제야 "빨리 좀 하고 와라. 맨날 밤늦게 이게 뭐니?"라고 말하면, 동생은 속상한 듯 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연습이나 공부를 하고 오곤 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내 말도 잘 안 듣는다.

나쁘게 말하면 대들기 시작한 것이고, 좋게 말해도 투정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난 이 투정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보았는데,  그만큼 우리가 가까워진 거라 생각했다.

학생들이 호랑이 선생님에겐 감히 대들지 못하듯이, 이전의 동생은 내 말엔 토도 달지 않고, 알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젠 정말로 더 편해졌나 보다! 아니면 내가 전보다 동생이 편해졌는지, 잔소리를 많이 해서 면역이 생겨버린 걸까?

어떤 쪽이든 서로 편해진 것이니 오빠의 입장에선 조금 과장해서 감격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절대적으로 아내의 몫이 컸다.

아내는 동생도 편하게 해 주었지만, 그에 앞서 나를 편하게 해주는 존재이다.

그래서 난 집에서 아내와 있을 땐, 몸은 좀 귀찮고, 불편할지라도 마음은 늘 편하다.

그렇기에 나 역시 아내에게 이것저것 재잘재잘 말하기도 하고, 유치한 장난도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당연히 동생도 보았고, 함께 낄낄거리며 웃다 보니 우린 신혼집엔 자연스레 크게 웃을 일이 많아졌다.

이것이 일상적인 우리 신혼집의 작지 않은 행복이다.

아내가 없었더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난 불편한 것이 싫어 다 혼자 하려고 했을 것이고, 그럼 동생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 당연히 서로를 통해 웃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제도 난 동생에게 잔소리를 했다.

그럼 이젠 동생은 내 말에도 토도 달고, 내일 하면 안 되냐고. 투정 부리는 모습에 정말 얘는 왜 저럴까? 싶기도 하지만, 동생을 둔 오빠의 흔한 고민과 걱정 아니겠는가.

여전히 우린 한 집에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또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그 과정 속엔 여러 가지 감정들과 마음이 담겨있지만, 그 끝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안도'이다.

너무 어렵기만 한 오빠로 남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

몇 년 전, 동생이 내 생일에 편지를 써준 적이 있다.

그 편지 속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마지막 말이 있는데,

꼭 같이 여행도 많이 하고 가까워지자!라는 말이다.

실제 동생이 쓴 편지

참 내가 어려운 오빠이구나. 싶어서 미안함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에라도 어려운 오빠가 아니라, 귀찮게 잔소리하는 오빠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난 정말로 감사할 뿐이다.


 이 글을 보면 아내는 그럼 나만 또 나쁜 사람이냐며, 날 괴롭히겠지만 그럴 리가!

나에게도 동생에게도 아내는 참 좋은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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