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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 May 24. 2021

그렇게 난 기쁨을 마주했다.

그날 아침, 난 또 그렇게 다시 기쁨을 마주했다.



2016년, 5월의 늦은 금요일 밤, 불 꺼진 집.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고, 신학생이었다.

당시엔 지방에서 자취하며 학교를 다니고,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와 사역을 해야 했기에 특별히 별 다른 일 없어도 일주일이 항상 정신없게 흘러가던 때였다.


그날 역시 난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고, 늦은 밤이 되어서 귀가했다. 

행여 누가 깨기라도 할까 최대한 조용히 집으로 들어와 방으로 향하는데 부엌에 지난주까지만 해도 없었던 강아지 펜스가 쳐져있었다.

그리고 그 넓게 쳐진 강아지 펜스 안에 강아지 인형이 한 마리 놓여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이렇게 시위를 하는구나.' 

한 달 전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난리를 쳤던 늦둥이 동생이었기에 이 황당한 장면이 단번에 이해됐다.

 

강아지 아니면 토끼를 꼭 키우고 싶다는 동생과 안된다는 부모님의 팽배한 대립.

그 결과가 강아지 펜스 속 강아지 인형이라니. 

웃음 나오는 상황에 사진을 찍으려는데 인형이 살짝 움직인 것처럼 보였다.

어? 

당황함에 펜스를 넘어갔더니 이번엔 확실히 움직였다.


어? 설마?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인형을 만지는데 낑- 하고 소리를 낸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결국엔 동생이 이긴 것이다.

인형이 아니라, 진짜 강아지였다.

처음 보는 거대한 남자의 등장에 얼어붙은 작디작은 생명체.

아직 짖는 법도 몰라 낑낑 되기만 조그마한 푸들이었다.

반가운 내 맘과 달리 벌벌 떠는 생명체의 떨림에 다시 펜스를 넘어가 한참을 바라보았다.

5월의 늦은 금요일 밤, 그렇게 난 그 녀석과 어둠 속에서 처음 마주했다.

어둠 속에서 마주했던 이 녀석은 정말 인형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이미 조금은 집에 적응했는지 엄마 품에 안겨있는 녀석은 어젯밤 어둠 속에서 볼 때보다 더 작아 보였다.

엄마 품에 안겨 있는 녀석의 이름은 '기쁨이'었다.

아빠가 지었다는데 그 이름이 썩 맘에 들었다.

엄마는 한 번 안아보라고 했지만, 저 조그마한 생명체가 행여 다칠까 새끼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어 보는 것이 전부였다.

마치, 늦둥이 동생을 처음 봤을 때처럼 말이다.


내가 열여섯 살 때, 여동생이 태어났다.

처음 동생을 봤을 때, 참 저 작은 게 언제 클까? 했는데 어느새 요란하게도 크더니 자기를 닮은 새로운 동생을 데리고 온 셈이다.


작은 몸집에 이름조차 없었던 강아지.

그 강아지가 우리 가족이 된 지 벌써 5년의 세월이 지났다.

조그마한 녀석의 몸짓이 커진 만큼, 우리 집안의 기쁨도 함께 커졌다.


처음엔 짖는 법도 몰라 낑낑대던 녀석은 사람 기척만 들리면 집 안이 쩌렁쩌렁하게 짖어 온 가족을 고생시켰고,

아빤, 녀석에게 혼자 자는 법을 훈련시키려 했지만, 이번에도 결국 부모님은 자식에게 져버려 침대를 함께 쓰게 됐다.


기쁨인 여느 집안의 강아지처럼 엄마를 제일 잘 따른다.

아빤 그런 기쁨이를 품에 앉혀놓고 널 데리고 온 게 누군지 잘 생각해보라며 귀여운 질투를 하시기도 한다.

그리고 아빤 매일 아침을 기쁨이와 산책을 나가신다.

그래도 기쁨인 엄마를 가장 좋아하기에 아빤 잘해줘 봐야 소용없다고 하지만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기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신다.


집에 들어올 때면, 가족 모두는 기쁨이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온다.

아빠도, 엄마도, 동생도, 나도 예외는 없다.

아무도 그러자고 약속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집에 오며 기쁨이를 찾는다.

그리고 이미 우리 집의 기쁨은 소리를 듣고 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



난 이제 출가하여 제주도에 혼자 살기에, 퇴근 후 작은 기쁨도, 가족과의 일상도 마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에 짧게 집에 갔을 때, 난 어김없이 기쁨이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웠던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마나 짖어대던지 섭섭하기까지 했다.


오늘은 형이랑 자자며 개껌까지 주며 설득했지만, 녀석은 안방으로 쏙 들어가 자기 자리에 앉아 개껌만 맛있게 씹어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내 허벅지를 베고 자고 있는 녀석.

형이랑 같이 제주도 가서 살까?


하품하더니 다시금 눈을 감아버리는 녀석.

그날 아침, 난 또 그렇게 다시 기쁨을 마주했다.

어느새 부쩍 사람답게 커버린 기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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