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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Mar 06. 2024

아들의 거짓말

엄마도 성장 중입니다.

작년부터 1년간 다녔던 유치원에서 아이는 온전히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다른 집 애들은 잘만다니던데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아니면 우리 아이가 문제인가 고민의 연속인 나날이었다.


입학초기에는 처음이라 그렇겠거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완강히 떼 부리고 울던 시기를 지나,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잘 다니는가 싶더니

잊을만하면 아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


"엄마 나 유치원 가기 힘들어요. 오늘 집에서 쉬고 싶어요."


어르고 달래 보기도 하고, 결국은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인내심이 바닥나 무섭게 다그쳐보기도 했지만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아이의 고집을 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체중이 20kg를 넘어가는 데다 울며불며 버티는 아이를 힘으로 제압했다간 기어이 누구 하나 다칠 노릇이라 강제로 유치원 앞까지 끌고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있고 며칠이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유치원을 잘 다니다가, 별안간 유치원 가기를 거부하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선생님과 여러 차례 면담도 해보고, 주변에 선배엄마들에게 조언도 들어보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도 마음을 열거라고 다독여 주셨지만 예측할 수도 없는 아이의 행동에 하루하루 애가 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기분 좋게 유치원 갈 준비를 하던 아이가 또 별안간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대체 어쩌란 말이냐 싶은 생각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이성을 잃고 무섭게 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대체 왜 가기 싫은데 응? 너 어제까지도 엄마가 유치원 가서 재밌었냐고 물어보면 재밌었다며. 누구누구랑 놀고, 너무 신났다며 근데 왜 오늘은 가기 싫다는 건데? 그렇게 싫으면 유치원 다니지 마!"


잔뜩 날 선 나의 물음에 아이도 지지 않고 소리 지르며

"그건 엄마가 맨날 재밌었냐 물어보잖아요. 엄마 기분 좋으라고 그런 거에요. 사실 하나도 안 재밌었다고!!"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 얘가 나 기분 좋으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대체 왜?'


이제 겨우 5살 된 아이가 엄마 기분 좋으라고 그동안 괜찮은 척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니... 미안함과 죄책감 후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정신이 아득해졌다.


시간이 흐르고 조금 진정이 된 다음 아이를 품에 안고 물었다.


"네가 거짓말하면 엄마가 기분 좋을 줄 알았어?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하니

"몰라 엄마가 맨날 물어보니까. 그냥 그렇게 말했어요..." 라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흐린다.


그동안 나의 모든 신경은 아이의 유치원 적응에 가있었다.


하원길에 유치원이 재밌었다고 하면 "우와 다행이네" 하고 안도하며 웃고,

유치원에서 조금 힘들었거나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하면 왜? 누가? 무슨 일? 하고 아이에게 연달아 질문했다.


아이는 자신의 말 한마디에 달라지는 엄마의 표정과 마음을 읽었을 테지...

내가 좋았다고 하면 엄마가 좋아하고, 내가 힘들었다고 하면 엄마가 걱정하는구나 하고.

그러니 어느 날부터는 대충 둘러댔을 것이다. 재밌었다고, 좋았다고.


아이의 하루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잘 보내고 돌아왔으니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마음 편하게 안아줄 걸,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였을까... 나의 그런 걱정과 불안이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게 했구나, 우리 아이의 이 맑고 동그란 눈은 언제나 나만 보고 있었구나. 내가 훨씬 더 아이를 생각하고 아이만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진짜 어려움과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구나. 후회의 마음이 몰려왔다.


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봄이가 엄마 때문에 그런 거짓말했다는 것이 엄만 너무 놀랍고 마음이 아파. 그리고 봄이 마음을 엄마가 잘 몰랐던 것 같아. 정말 미안해. 그래도 이제 그런 거짓말은 하지 말아 줘. 그냥 사실대로 힘들다고 엄마한테 말해줄래? 그러면 엄마도 얼른 알아차려볼게."

"네 그럴게요 엄마! 사랑해요!" 하며 내 목을 꽉 끌어안는다.


그날 이후

오늘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아이가 그날일을 먼저 기분 좋게 이야기해 주면 아 그랬어?라고 반응해 주고

그게 아니라면 그저 아이를 보자마자 너무 수고했다고, 많이 보고 싶었다고 몸이 부서져라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러면 나도 엄마가 보고 싶었다며 아이는 싱긋 웃어 보였다.


정 힘들다면 다른 유치원이나 기관에 다닐지도 물어봤지만, 아이가 그냥 여기 그냥 다녀볼래라고 이야기를 하기에 그날 일이 있은 이후에도 등원거부와 등원을 반복하며 아이의 1년이 마무리되었다.


1년을 돌아보면 참 어렵고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도 나도 그 안에서 성장을 한 한해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엄마가 대신 다 해달라던 아이는 혼자 화장실도 다녀오고, 옷과 가방정리도 스스로 한다. 엄마아빠가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먼저 말한마디 하지 않던 아이는 선생님의 주말 안부를 물을 만큼 수다쟁이가 되었다. 좋아하는 대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듯 삐뚤삐뚤 자기 이름도 쓸 줄 알게 되었다.

그 안에서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며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첫 유치원에서의 1년을 마치고, 새로운 곳에서 2년을 보내게 되었다.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랄 것이다. 그때마다 아이를 믿는 구석으로 역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어본다.


"아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래. 더 많이 믿고 응원해 줄게. 이제 그런 거짓말은 하지 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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