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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Jul 24. 2024

맛이 난다 맛이나 너와 이야기 할 맛이

아이의 말을 수집하고 기록합니다.

오늘 아침 있었던 이야기 


등원차량을 타고 나가는 길에 아이가 

"엄마 혹시 비가 올지 모르니까 우산 들고나가요." 한다.

오래간만에 하늘이 이렇게나 화창한데 비라니, 솔직히 못 이기는 척 들고나갈 수도 있지만 들고 돌아오는 건 나의 몫이라 요즘같이 덥고 습한 날엔 그마저도 하고 싶지 않다.

"밖에 이렇게 날씨 좋은데 모. 비 안 와 그냥 가자~"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오니

정말 거짓말처럼 우리 집 현관 앞에만 비가 쏟아진다

".... 미안. 우산 가지러 가자."

"거봐 내 말 맞죠? 내가 우산 가지고 가자고 했잖아요. 엄마는 정말 못 말린다니까"



또 다른 어느 날의 이야기


잠자리에 누워 아이 발을 조물조물 주무르고 있는데 아이가 

"엄마. 엄마는 왜 엄마 이야기를 안 해요? 오늘 속상한 일 없었어요?"

"응? 글쎼 엄마 속상한 일 없었던 것 같은데. 엄마 이야기가 궁금해?"

"네! 엄마는 맨날 나한테 물어보기만 하잖아요. 나도 엄마가 궁금해요."


그랬구나.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너의 일상이 궁금하기만 해서 질문만 했지, 먼저 내 이야기를 하진 않았네.

고마워. 다정하게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나의 작은 친구.



엄마 없이 난생처음으로 할머니와 단둘이 저녁시간을 보내게 된 아이


양치까지 마치고 잘 준비를 마쳤는데 무심코 할머니가 간식을 건네신다.

"할머니 저 양치해서 지금 못 먹어요. 엄마가 늦은 밤에 먹으면 안 된댔어요. 내일 먹을래요"


샤워 후 반팔, 반바지를 입히려고 하자

"할머니 에어컨 틀고 자야 해서, 엄마가 긴 옷 입고 자야 한다고 했어요. 긴 옷 입혀 주세요."


엄마 없이 잠을 자려니 영 어색한지 한참을 뒤척이다

"할머니, 혹시 엄마가 내일 오는 건 아니겠죠? 엄마는 언제 올까요? 엄마 보고 싶은데..." 라며 시무룩해한다.

"엄마 곧 온다고 했어, 밖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늦는대 자고 있으면 올 거야."

"네. 저 잘게요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당연히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릴 줄 알았던 아이는 벌써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다.

마냥 내 품속에 있는 어린아이인 줄 알았는데 저녁시간의 이야기를 들으니 의젓하다 못해 너무 커버린 네가 서운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잘하고 있는 아이를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너와 함께하는 이 순간들을 더욱 귀하게 여기고 잘 남겨두어야겠다고 다짐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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