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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Feb 28. 2024

스타벅스에서 나만의 레시피 찾기가 목표입니다.

엄마도 성장 중입니다.

10년 전쯤 알게 된 동생 A 이야기.


A는 나보다 7살 정도 어렸는데,

그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늘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부러움 반 불편함 반

부러움은 그 아이의 자존감, 당당함, 솔직함, 배려심, 사랑스러움 같은 모습이었고,

내 마음속의 불편함은 내가 가지지 못한 그 아이의 모습 부러운 때문이었으리라.


A는 소위0 부유한 집에서 귀하게 자란 아이였다.

부유한 집에서 자랐다고 좋은 면만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

드러내지 않아도 귀티와 사랑받은 티가 흐르는 사람이었다.

A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은지를 알고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일이라면 아주 당차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기만의 세계에만 갇혀 사는 것도 아니었다.

상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가 척척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센스까지 겸비한 솔직 당당하지만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랑스러운 아이.


한 번은 A와 스타벅스에 갔다.

나는 고민 없이 늘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 한잔"이요.

하고 말하는데

A는 한 번도 주문을 고민해 본 적도 없는 메뉴를 고르더니  

“우유는 두유로 ~ 시럽은 한번 더, 휘핑은 빼주시고 어쩌고 저쩌고... ”

하며 자신만의 메뉴를 척척 주문하였다.


그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그걸 다 기억하고 주문하는 거야?" 하니

A는 웃으며

"사실 저도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거예요. 

그러다 저한테 딱 맞는 음료가 나오면 좋잖아요."

하고 배시시 웃는다.


 사실 그 모습을 보기 전까지 나는 스타벅스에서 그렇게 주문을 해도 되는 건지 조차 몰랐다.

메뉴판에 아무리 많은 음료가 있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만 마실 줄 알고, 다른 음료는 도전도 해볼 생각을 안 한 나와 달리, A는 실패할 확률은 물론 있지만 계속 도전하며 자신의 취향을 찾아갈 줄 아는 사람.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A가 가방에서 빗을 꺼내서 머리를 빗고 있었는데, 그 빗이 참 특이하면서도 예뻐 보였다.

그래서 내가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보고 있으니

"언니 이거 진짜 좋아요. 한번 써볼래요? "

하면서 내게 빗을 내밀었다.


빗이 그냥 빗이지 뭐 하면서 슥슥 빗어보니,

예상과는 달리 정말 좋았다.


내가 늘 쓰던 200원짜리 꼬리빗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빗으면 한 움큼 뽑히기 마련인데, 이 빗은 신기하게도 헝클어진 머리도 쉽게 빗어질 뿐 아니라, 머릿결도 훨씬 정돈되고 좋았다. 참 신기했다.


"오 이거 진짜 좋다. 어디서 샀어? 얼마야?" 했더니

"이거 만원 정도 해요. 올리브영에 가면 있어요!"

하는 A의 대답


순간 나도 모르게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무슨 빗을 만원이나 주고사니, 마음이 불쑥 올라 오고 말았다.

그 이후에 올리브영에 가도 A가 쓰던 그 빗을 들어다 놨다 몇 번을 했던 것 같다.


남에게 만 원짜리 밥은 고민없이 잘 사지만,

나에게 쓰는 만원은 어려운 나였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 걸까?


얼마 후 내 생일에 A가 선물이라며

그때 그 빗을 내게 내밀었다.

"언니 그때 이거 맘에 들어했잖아요. 선물이에요!"

좋으면서도 한껏 나의 작아진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민망해졌지만,

"고마워 잘 쓸게!"

하고 애써 웃으며 그 마음을 받아 보았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빗은 아주 잘 쓰고 있다.




A와의 시간을 떠올리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하며 나를 표현하기보단 언제나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는 것, 그리고 상대가 알아주지 않을 때 혼자 상처받고 돌아서는 편이었다. 언제나 사람이 그립고 외로웠지만, 그렇게 맺는 다소 일방적인 관계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올해는

스타벅스에 가서 내 입맛에 딱 맞는 레시피 하나쯤은 만나봐야겠다.

가성비만 따지는 것이 아닌 내 삶의 질을 올려주는 나를 위한 물건도 기꺼이 사봐야겠다.


남에게만 친절한 사람이 아닌,

나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질문도 해보고, 이것저것 시도도 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를 귀하게 여기고 대접하는 일도 기꺼이 해보아야겠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날이면,

 "언니 ~" 하고 사랑스럽게 웃는 A를

떠올려 보아야겠다.


그리고 그 아이의 삶을 대하는 대하는 태도를 기억해야지.


 각자 생활이 많이 달라져서, 자연스레 A와의 연락은 끊어졌지만, 여전히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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