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중 한 명은
바로 터키에서 온 친구였습니다.
또래 친구들보다 유독 영어를 잘했던
터키 친구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모두 참여했지만
친구들끼리 따로 가는 레스토랑엔
잘 가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레스토랑보다는 마트에 가서 장을 주로 보던
터키 친구에게
터키 여행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역시나 착했던 그 친구는
이스탄불을 포함해서
자신의 고향 동네까지 친절히 설명해줬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내가 비행기 왕복 표를 낼테니,
일주일간 터키 가이드가 되어달라.“
여기서 내가 말한 터키행 왕복표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지만,
터키 친구에겐 몹시 큰 돈이었고,
일주이산 터키 가이드의 난이도는
내게 다소 귀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터키 친구에겐 터키에서 가장 자랑하는 문화 중 하나 였습니다.
그 문화는 바로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었고,
일주일 간 저는 왕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터키 친구의 집은 이스탄불이 아니었지만,
나같은 여행객이 지내기에는 이스탄불을 추천해줬고, 마침 친척집이 이스탄불이었기에 방 한 칸을 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터키의 5월은 라마단 기간이었습니다.
해가 떠있을 때는 물도 마시지 않는다는 터키 친구는 양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터키 친구 말로는 양치할 때 물로 헹구면서 혹여나 마시게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터키 친구는
제게 매일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을 받아줬습니다.
터키 친구를 포함한 친척들은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간단한 요기를 했지만, 제게는 삼시세끼 식사를 정성껏 챙겨줬습니다.
일주일 중 5일차 되던 날,
터키 친구의 온 친척이 모인 날이 있었습니다.
테라스에서 가족식사를 했고,
저도 그 식사에 초대받았습니다.
아, 그 당시 저는 왕이었기 때문에
‘초대’를 받았다는 표현보다는
저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였다고 할까요.
거의 자정이 될 때까지 가족식사는 이어졌습니다.
와중에 제게 쏟아진 질문 세례는
저를 기쁘게 함과 동시에 부끄럽게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경제, 정치에 무척 관심이 많았습니다.
역사에도 물론이었습니다.
다음 날 이스탄불의 중심지에 있는 한국과 터키의 수교 기념비에 들르기도 했습니다.
저도 영어를 못했지만,
터키 친구들의 친척들도 영어를 잘 못했습니다.
그 중심에서 터키 친구는
영어와 터키어로 모두의 외교관이 되어줬습니다.
왕으로 모셔줬던 일주일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100을 해줬기 때문이겠거니와 동시에
다른 이들이 120을 해준다 하더라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손님이었기에 잘해준다는 느낌보다
형제로서, 친구로서, 아들로서 대해줬던
환대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무언가 최선을 다해줬다기 보단
그들이 최선을 다하는 게
애초에 묻어나 있었다고나 표현할까요.
터키에 있었던 일주일 간 저는 왕으로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