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해
"고마워. 그리고 훌륭한 너희에게 박수를 보내."
똑같은 말을 네 번 했다. 방학이다. 어제 방학식 했고 오늘부터 방학인데 방과후 수업 듣겠다고 8시 39분부터 온 아이들에게 한 번. 9시 50분에 시작하는 두 번째 시간에 한 번, 10시 40분부터 시작하는 수업 시간에도 한 번, 11시 30분에 시작하는 수업 시간에 또 한 번. 진심이다. 방학인데도 이렇게 온 너희는 참 멋지다. 방학을 기다렸고, 방학이라 늦잠도 자고 싶고, 방학이라 뭔가 기대감도 컸을 텐데 방학하자마자 이게 무슨 방학이냐고 할 법도 한데 이 시간에 여기 있는 너희는 훌륭하다. 누구는 스스로 왔고, 또 누구는 엄마가 가라고 하니 억지로 왔다 하더라도 너희가 훌륭하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없다. 왜냐하면, 너희 표정이 지금 신난 얼굴이거든. 눈빛이 지금 모두 선생님을 향해 있잖아. 지금 이 순간 너희는 이 수업에 진심이라는 뜻이니까. 그래서 너희에게 고맙고, 훌륭한 너희들에게 박수를 보내. 선생이 씩씩하게 손뼉 치자 아이들 표정이 좀 더 환해지면서 함께 서로를 향한 박수를 보낸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목울대가 아프도록 울컥 감동스럽다니. 자칫 우스운 풍경이 만들어질 뻔했다. 솔직한 마음을 순간 표현했을 뿐인데, 표현하고 나니 눈물이 핑 돌게 하는, 감동이라는 녀석.
수업은 9시 시작인데 아이들은 발랄하고 유쾌하게 교실로 들어섰고 1등이라고 기뻐하며, 순간 약속한 것도 아닌데 제각각 자리 정해 숨는다. 아직 오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는 방식이다. 유쾌한 아이들을 보며 가볍지 않았던 출근이 단박에 즐거워졌다. 더위 따위 아랑곳없이 방학 첫날 학교 온다는 억울함도 없이 마냥 즐거운 아이들이다. 읽은 책을 마인드맵으로 함께 정리했다. 네 가지 키워드를 정하고 키워드에 들어갈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이다. 투발루에서 자연스럽게 지구온난화로 이야기가 이어졌고, 왜 지구온난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유까지 설명했다. 집중하는 순간이 만들어내는 몰입감을 함께 느끼는 어린아이들 표정을 보는 일은 행복하다. 수업 마무리하면서 다음 시간에 올 때는 ‘지구온난화가 더 이상 심각하게 진행되지 않게 하려면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와서 이야기 나누자고 했다. 마치면 교실 빠져나가기 바쁜 아이도 있고 선생에게 와서 질문하는 아이도 있다. 오늘은 이웃 학교 학부모가 확진되면서 같은 학원에 다닌 친구들 결석이 많은 날이라 친구들 안부가 궁금한 모양이다. 코로나가 턱밑까지 와있다.
6학년 수업 시간이다. 지난주 학교 대표로 남북평화통일 토크 경연 대회에 나갔던 이야기가 궁금해 물었다. 준비를 시작한 이야기부터 어떻게 준비했는지, 당일은 어떠했는지 현장감 있게 듣다가 혹여 다음 시간에 시연해봐 줄 수 있느냐 물으니 흔쾌히 그러마한다. 역시나 멋진 아이들이다. 내가 왜 너희에게 어벤저스 팀이라고 하는지 알겠냐며 많은 말을 웃음으로 대신했다. 이런 오글거리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덧붙여 너희 의견을 물을 일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너희가 알다시피 선생님은 일기를 즐겨 쓰는 사람인데, 일기 속에서야 너희 실명이 거론되어도 상관이 없겠지만 혹여 타인이 읽는 글 속에서 너희 존재가 드러나도 괜찮겠느냐. 내게 어벤저스 팀인 너희 이야기를 아니 쓸 수 없어서 꼭 한 번은 진지하게 묻고 싶었다. 너희 이야기를 쓰다 보니 자주 쓰게 되는 표현이 어린 너희에게 어른인 내가 배운다는 말이더라는 설명을 곁들이면서, 너희 이야기가 쓰일 글의 카테고리는 <나의 어린 스승>이라는 것까지 밝혔다. 마땅히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일이다. 가명을 쓸까 하는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기록하는 힘이 빠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기꺼이 괜찮다고 했다. 표정이 너무 예뻐서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너무 오버스러워 내 망막에만 순간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