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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너나들이
Nov 26. 2024
슬픈 민주주의에서 사는 사람의 도리
'소년이 온다'를 두 번 읽고
가슴이 죄어오고 답답하다. 차라리 목놓아 울고 싶지만 가슴에서부터 조여 오는 고통이 소리 내어 우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총을 맞고 바로 숨이 끊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소년의 형.
총을 맞고 죽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그 10일의 지옥. 그 후 평생 동안 가져가야 했던 또 다른 지옥.
어떤 페이지는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기가 고통스러워 눈을 감고 기다리다 또 한 줄을 읽어야 했다.
그래도 읽어야 했다.
읽기도 힘든 지옥 같은 고통을 겪은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읽어야 했다.
1980년 5월 18일.
아무것도 모르고 마당에서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을 내가
그 후 십여 년이 지나 대학 동아리 방에서 '다시 쓰는 현대
사'를 읽고 순간의 비극으로 스쳐 지나갔을 내가
가끔 마주하는 뉴스를 측은한 얼굴로 흘려듣던 내가
전라도는 항상 민주당만 뽑는다는 말을 듣고 자랐던 경상도 소녀였던 내가
소년을 만나고 고개를 숙였다.
무심했던 과거를
날조되었던 역사를
다시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은 이상 보상받지 못할 상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관자놀이를 망치로 꾹 누르고 있는 듯한 두통이 밀려온다.
목구멍은 침을 삼키기에도 부담스럽게 퉁퉁 부어오른 것 같다.
왜 수많은 소년과 소녀가 청년과 아버지와 어머니가 천금 같은 목숨을 허공에 날려버려야만 했을까.
차라리 죽여달라고 할 만큼 고통을 주며 살아도 죽은 나날을 보내게
만들었을까.
살아남은 이의 피 묻은 고통을 잊히게 만드는 방법은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불가능한 방법.
이들에게는 절망에 몰입하지 말라는 충고조차 폭력일지 모른다.
감히 그때의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다.
그때 알았던 사람들을 만날 수도, 이야기를 나눌 용기도 없다.
무참히 살해되고
버려지
고
찢기고 피
흘린 사람만 있을 뿐 참극을 저지른 사람의 사과는 없었다.
오히려 빨갱이라는 세 글자만 그들 주변에 웅성거릴 뿐이었다.
기억!
그날의 고통은 기억되어야 한다. 마약을 하던 그의 손자가 5.18 묘지를 방문했을 때 그의 코트를 벗어 묘비를 닦았을 때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죽고 없어진 그 대신 나타난 그의 손자의 사죄가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큼 위로해 줬을까.
소년이 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미하게 번지고 서로 스며들어서, 가볍디가벼운 한 몸이 돼서 오는 건지도 몰라.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소년이 온다-
소년을 기억하려 한다.
그날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의 머리 위에 촛불을 밝히던 소년.
놓아버린 정대의 손에 죄책감을 덧대 정대를 찾아다니던 소년.
그리고 그 소년 주변의 김진수와 형들, 누나들.
그들의 애국가와 태극기를 기억하려 한다.
그들은 폭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빨갱이도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고 싶었던 나라를 사랑했던 평범한 시민이었다.
양심선언을 한 군인은 살해협박과 동료들의 지탄에 시달려 가스총을 품고 살았다.
다른 누군가가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던 그들.
전남도청 벽에 난 410개의 탄흔 자국을 보고도 인정하지 않았던 그.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 없었던 그.
과거사를 사과하지 않는 일본과 무엇이 다른가.
역사는 평가해야 한다
평가하려면 알아야 한다.
알려면 읽어야 한다
읽고 기억해야 한다.
목숨을 건
희생으로
일구어낸
슬
픈 민주주의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도리다.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죽어간 소년을 기억한다.
한 줄 요약 : 소년을 기억하는 건
목숨을 건
희생으로 일구어낸
슬
픈 민주주의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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