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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Nov 15. 2024

4시간의 잠

수능 전날

수능 전날
준비물을 챙기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시험이 어려우면 나만 어려운 게 아니야
시험이 쉬우면 실수하지 말자
하고 생각해


그거 엄청 중요해
딸은 짐을 챙기다 말고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얼른 자자. 벌써 10시 반이야. 굿 나잇


깜빡 잠이 들었을 때 방문이 삐걱 열리고 딸이 들어왔다.


잠이 안 와.


어떡해...


시간은 벌써 12시를 넘겼는데.


이불속으로 들어온 딸의 조그만 얼굴을 안았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볼에 입을 두 번 맞추고 머리칼을 쓰다 듬었다. 내가 밤새 빚은 따뜻함이 너를 데워 달콤한 잠 속으로 데려가길 아무 신께 빌었다.


잠이 안 와.


아직도?


간절한 기도가 너무 뜨거웠나 안고 있던 팔 하나를 치우고 팔베개만 남겼다.

딸의 숨소리가 새근새근 커졌다.

우리 딸 드디어 잠들었구나.


잠이 안 와.


자야 되는데.


새벽을 향해 달리는 시간이 원망스럽다.

아직 잘 시간이 더 필요한데.


딸을 다시 안고 자장가를 부르며 딸의 등을 덮고 있는 이불을 토닥였다. 

이불마저 재우려는 듯이.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노래를 부르다 소리가 점점 사라졌다.

토닥임도 가늘어졌다.


쌔액쌔액


아까보다 커진 숨소리.

이번엔 진짜 잠들었구나.
안심이 됐는지 나도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쯤 지나고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내 코에서 나는 소리.

엄마 코 고는 소리에 우리 딸 귀한  잠이 달아날까.

잠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눈을 고 잠들지 않는 건 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새벽 5시 반.
자고 있는 딸아이를 두고 살며시 주방으로 나갔다.
그래도 4시간은 잤어.

그만하면 괜찮아.

다행이야.
4시간의 잠이 이렇게 고마운 적은 처음이었다.


잠에서 깬 딸에게 말했다.


수능 전날 잠이 안 오는 건 당연해.

우리 뇌가 중요한 일을 위해 준비하느라 그런 거니까.

그러니까 다 잘될 거야.



딸아이 수능이 어제 끝났네요.

수능 전날 긴장감에 잠 못 들던 두 모녀의 모습을

시 같은 산문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올해 수능을 마친 수험생과 그들을 뒷바라지한 부모님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 줄 요약 : 중요한 일이 있기 전날 잠이 안 오는 건 당연하다. 우리 뇌가 얼마나 중요한 일이 있을지 준비하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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