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없는 생물체에게 배우는 것들
남편과 나는 다른 곳이 참 많은 부부다.
일단 시니컬한 구석이 있는 나와 달리, 남편은 우리 집안의 실없는 웃음 제조기이다.
대충 어떤 웃음이냐 물으신다면, 목욕하고 나오면 내가 벗어 둔 옷가지들이 거실바닥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한 조형물이 되어있다던가,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내게 딸기를 씻어서 그릇에 담아 주는데 손만 뻗어서 먹다보면 그 중 하나가 방울토마토라든가. (내가 방울토마토 집어먹고응? 뭐지? 할때까지 모르는 척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아이들 옷 좀 입혀달라 하면 맨투맨티를 머리위에 씌우고 얼굴만 꺼낸채로 라바(애벌레) 라며 남자 넷이 거실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다던가,
내가 찾는 옷가지(주로 속옷류)는 꼭 머리에 뒤집어쓰고 엉덩이춤을 추며 나타난다던가.
…..쓰다보니 진짜 실없군.
나는 이 사람과 스물아홉살에 결혼을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삶이란 진지하고 진중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해야할 것도 알아가야 할 것도 많은 세상은 어렵기만 했고, 적어도 우리 부모님은 집에서 엉덩이춤을 추시는 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웃음) 내 눈에 남편은 참 ‘단순하고 실없는 생물’이었다.
그 단순하고 실없는 생물과 결혼을 해 어느덧 14년차. 지금도 여전히 내게 세상은 어렵지만 지금의 난 유치한 웃음의 순간들이 만들어 주는 삶의 여유를 알게 되었다.
남편의 별 시덥잖은 유머에 어이가 없어져 피식 웃다보면, 너무 잘 하려고, 누군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힘을 꽉 주고 있던 내 마음이 누그러진다.
이 사람도 나도, 다른 그 누구도,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진 우리 삶이 조금쯤 어설프거나 부족하더라도,
뜻대로, 욕심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건강한 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계절을 느끼며
함께 소리내어 웃을 수 있다면,
괜찮겠다,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