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25
저마다 가지고 있는 옥탑방의 로망이나 판타지는 고사하고 막상 내가 이곳에 살아보니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옥탑이라는 공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 이사 왔을 당시에도 이미 겨울의 문턱이었다. 추운 날씨덕에 옥탑은 첫날을 제외하고는 구경조차 하지 않았다.
따뜻한 봄이 찾아왔음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황사와 미세먼지의 습격을 정통으로 받아들이는 곳이야 말로 옥탑이었다. 먼지가 달라붙을까봐 빨래조차 널어놓어 놓을 수 없었다.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가도 상쾌함은 없었다.
여름에는 태풍이나 장마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집 바로 옆에는 아주 작은 공원이 하나 붙어 있는데 옥탑보다도 키가큰 커다란 나무들이 몇 그루 자라고 있다. 행여나 바람이 불어 나무의 잎이 배수구를 막는 날에는 물이 차오르면서 순식간에 워터파크가 된다.
그리고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데, 옥상 바닥이 녹아내리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혹독하게 끓어오른다. 이 시즌은 일면식도 없는 옥탑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을 정도로 바닥이 달궈진다. 태양빛을 가려줄 만한 파라솔 같은 장치도 없었기 때문에 한여름의 옥탑이란 고비사막 같은 느낌이 든다.
그나마 가을은 좀 괜찮았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선선했지만 여기에도 복병이 하나 있다. 모기의 공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다. 그리고 일교차도 커서 낮에는 선선하지만 밤이 되면 순식간에 서늘하다 못해 추위가 감돈다. 그렇게 다시 겨울이 오면 또 한 번 봉인의 시간이 찾아온다.
가장 황당한 건 이 모든 것을 감수한다 하더라도 나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며 수차례 파티도 했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요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음악을 틀어놓아도 대로변이라 그런지 소음 때문에 민원이 들어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커다란 장비를 구입해 가구를 만들어 좁은 방안에 꾸역꾸역 채워 넣기도 했었다. 전기기계의 소음이나 작업에 발생하는 먼지들은 옥탑에서만큼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야 말로 옥탑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던 로망은 어쨌든 다 이룬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