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39
그러던 중 문득 고등학교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음악시간에 실행됐던 악기시험은 단 한 명의 열외 없이 모든 학생들이 치러야 했는데 그중 한 명이 클라리넷을 연주했던 일을 기억해 냈다. 사실 '연주'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겨우 소리만 내는 정도로 낙제를 간신히 모면했던 친구였다. 그 친구의 성격으로 미뤄 짐작해 봤을 때 클라리넷은 분명 녀석의 집 어딘가에서 먼지와 함께 뒹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곧바로 친구에게 연락해 거의 빼앗다시피 그것을 가져왔다.
하지만 나 역시 클라리넷을 손에 넣었다 해도 곧바로 배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악기를 배우기 위해선 배우고 연습할만한 시간과 레슨비, 그리고 민원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연습할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중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나는 방 한켠에 클라리넷을 신당처럼 모셔놓고 적절한 때가 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클라리넷의 신세는 친구네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녀석은 여기저기에 먼지와 함께 뒹굴었다. 분명 신당처럼 모셔놨지만 나도 모르게 이리저리 발에 차이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클라리넷 가방을 열어 조립해 본 건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뒤였다. 드디어 모든 것이 갖춰진 때가 비로소 찾아온 것이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에 클라리넷 강좌를 발견했다. 수영을 신청하면서 알게 된 강좌다. 고급악기를 대단히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느껴졌다. 집은 옥탑이었고 새벽시간에 수영을 시작하면서 아침시간에 연습할 틈이 생겼다. 모든 것이 운명처럼 순식간에 퍼즐이 완성됐다.
수강신청기간이 시작하자마자 냅다 클라리넷 강좌를 등록했다. 다행히도 성공이었다. 다행히도 악기를 배우는 수업은 수영처럼 경쟁률이 치열하지 않았다.
그렇게 첫 강의시간이 왔다.
이미 십 년 이상 숙성기간을 지낸 친구표 클라리넷을 들고 교실에 당당하게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