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건강하시고요. 무사고 운전하시고요.'
그래서 어쩌면 큰 사고 없이 운전하고 다니나 보다.
영식 님은 가끔 내게 카카오톡 전화로 안부를 묻는 센터 회원님이다. 그를 알게 된 것이 18년 차가 되어가니 이젠 함께 나이 들어간다. 그동안 영식 님은 꽤 야위었고 기능도 많이 쇠퇴해졌다. 내가
만나는 소수자들 중에 가장 순수하고 착하고 마음 한편이 짠 한 사람이다.
그는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유심히 보는 사람 중에 한 명으로 프사에 전시회 한다는 새로운 소식이 뜨면
'선생님 영식이예요. 축하드려요. 건강하시고요. 안전 운전하시고요.'
카카오톡 전화로 비슷한 내용을 전하곤 한다.
그를 떠올리면 몇 가지 일이 떠오른다.
하나는 벽화보조 아르바이트다. 가끔 내게 작은 벽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이 종종 들어오던 시기가 있었다. 대부분 어려운 시설에서 낡은 벽을 감추고 사람들의 쾌적함을 위하여 재료비, 밥 값 정도의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림은 나와 함께하던 봉사동아리 청소년들이 그리는데, 벽화를 그리려면 낡은 벽을 한번 청소하고 바탕색을 칠하는 것이 그리는 것보다 힘들었다. 그때마다 그 일을 부탁하는 두 명 중에 한 명이 영식 님으로 적은 금액으로 할 수 있으니 나도 좋고 영식 님은 일을 하고 돈도 조금 번다는 기쁨으로 밝아진다. 물론 일의 효율이라는 것은 찾기 어렵고 힘이 없어서 제대로 하지 못할 때도 많아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래도 '선생님 일 없어요?' 하고 종종 물었고 우린 다시 만날 기회를 기다리곤 하였다. 우리의 추억이 있는 벽화들이 군산 여기저기에 있다.
두 번째는 영식 님이 잠깐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 일이다. 센터에 새로 다니게 된 숙 님과 친구처럼 잘 지냈고 함께 귀가를 하기도 하고 프로그램 참여도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녀의 오빠가 장애가 있는 그를 원치 않았고, 그녀가 시설을 이동하고 말았다.
그 후 한동안 나는 그들의 메신저였다. 마침 그 두 시설의 회원들이 다 나에게 그림을 그리러 오던 시기였는데 숙 님에게는 영식 님의, 영식 님에게는 숙 님의 그리운 안부를 전하는 것이다.
최근 그의 새해 안부전화에서는 함께 살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알렸다. 그럼 그는 혼자 살게 된다.
'밥은 어떻게 해요? 반찬은?' 내가 물은 첫 번째 질문이다.
'저 밥도 하고 국도 끊여요.' 다행이다. 하지만 걱정되는 건 왜일까?
그래도 올 해는 멋지게 자립하길 바라며 그를 힘껏 응원해 본다. '힘내세요. 영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