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과 유튜브에서'인문학 강의'를 검색하면 TV에서 낯익은 스타 강사들의 강의가 모니터를 도배를 한다.
관심 있는 주제의 방송을 보면 굉장히 재미있고 설득력이 있으며 논점의 비유를 공감이 가는 예를 들어 이해하기도 쉽다.
대부분 유명 강사들의 강의는 주제의 핵심을 화제가 되는 사회적 이슈와 접목시켜 그들의 해석으로 시청자에게 어필을 하고 듣다 보면 강의에 쉽게 빠지게 된다.
스타 강사들의 공통적 특징이라면 어려운 주제도 재미있게 해석을 하고 유머러스한 비유가 많다.
시청자가 모르던 내용을 강사의 각도로 이끌고 흥미를 더하는 진행이 계속되고 다 듣고 나면 강사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는데 일단은 재미가 있기 때문에 시청률은 당연히 높다.
그러나 전문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역사적, 과학적 사실에 대한 해석 보다 강사의 색채가 너무 짙은 편향된 흥미 위주의 내용도 있기 때문에 '♡좋아요'도 많지만 비판적 댓글 또한 적지 않다.
'인문학'이란 사상, 종교학, 철학, 역사, 언어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자연과학과는 반대되는 학문이며 인간을 중심으로 철학과 사상이 기본을 이루는 학문으로 인간의 가치와 인간의 활동 영역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탐구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자연과학이 과학적 사실과 객관적 자연현상을 연구하는데 비해 1+1=2, 2×2=4처럼 명확한 정답과 오답이 없는 개념으로 하나의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분야가 인문학이다.
물론 역사적 사실과 오랜 기간을 통해 연구하고 정립된 사실에 근거한 학문임은 틀림이 없지만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다르고 고전과 근대, 현대가 차이가 나는 것처럼 모든 사실에는 명백히 다른 부분이 있지만 인문학의 범위와 내용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영역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학문이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일치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분야도 많다.
증명할 수 있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 외에 철학, 종교학, 문학, 예술 등은 통합된 정의가 어려운 학문이며 이것은 마치 서양화와 동양화, 클래식과 팝처럼 같은 예술의 영역이지만 관점과 해석이 다른 장르이므로 포괄적인 명확한 개념으로 정의하긴 어려운 학문이다.
최근 들어 '인문학의 대중화'란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그러나 엄밀하게 파악하자면 인문학이란 '대중화'의 물결로 절대 흡수할 수 없는 학문이며 학문의 주체와 대상이 동일할 수 없는 부문이므로 사고와 행동양식에서 차이가 많고 대립되는 부분 또한 포함되기 때문에 결코 대중화시키기엔 불가능한 학문이기도 하다.
종교, 사상, 문학, 예술이 다를 수밖에 없듯 인문학은 장르에 따라 흡수하는 대상도 나누어지는데 이러한 학문 자체를 대중의 영역으로 흡수시킨다는 '대중화'라는 말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물론 시대가 바뀌고 교육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대중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상향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해한다는 것과 대중화의 개념은 동일할 수 없는 뜻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대중화한다는 노력은 인문학이란 이름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노력이고 희망사항이 아닐까 싶다.
사전에서 정의하듯 대중이란 지위, 계급, 학력, 재산을 초월한 불특정 다수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대다수의 사람을 뜻하며 서로 다른 개체가 모여 사회를 구성한 대규모의 범주를 말한다.
대중적이란 의미는 평범하고 부담이 없고 쉽게 접할 있는 것들을 말하고 독창적이거나 전문적인 분야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대중의 개념이다
그리고 인문학은 전문성이 결여되어서는 안 되는 학문이며 채택된 하나의 장르를 논한다 해도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학문이므로 인문학을 강의하는 사람도 전문적이어야 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으며 배우는 입장에서도 가볍게 재미로 본다는 흥미 위주의 유희가 아니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TV나 유튜브에서 인문학 강의가 유행처럼 늘어나고 많은 시청자에게 유익한 지식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증가하는 현상은 무척이나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일이지만 강의란 어떤 과목이든 지식의 전달이 목적이자 전부이므로 전문가에게 배우는 수업이 다름 아닌 강의이다.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인기와 시청률을 노린 강의를 전문가가 아닌 인기 방송인이 강의를 하며 인문학이라 포장하는 것은 이미 인문학 이전에 강의란 제목조차 붙일 수 없는 프로그램일 뿐이다.
어찌 보면 인문학을 대중화하자는 노력 자체는 가상하고 긍정적이며 지식의 확산이란 측면으로는 마땅히 환영할 일이지만 전문적 지식을 대중 전체를 대상으로 확산한다는 것은 무리수이며 그 강의를 흡수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의 보편적인 공통된 입장이 아니라면 결코 대중화가 될 수 없다.
특정한 부분의 단일화된 학문을 다수에게 전달하는 것도 대중적이지 않다면 대중화가 아니며 잘못 생각해서 하나의 장르에 국한된 지식이나 기술을 인문학으로 이해하는 것 또한 크나큰 오산이며 인문학은 인간 중심의 근원적 고찰이 배제되어서는 안 되는 학문이다.
방송을 통해 인문학 강의란 타이틀로 방송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현상이 인지적 오류를 낳게 되는 원인이고 시청률만을 의식한 스타 강사의 방송이 계속 제작되는 세태가 인문학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문학은 흥미 위주의 과목이 아니며 수박 겉핥기식 요약된 해설은학문과는거리가 먼 상식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문제는 인기 강사가 너무 많은 세상이고 인기 강사는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유튜브를 통해 인기가 상승하면 공영 방송에 데뷔를 하고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 스타가 된다
그러나 스타강사의 강의가 어떤 주제의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는 없는 것이며 강의에 대한 견해는 언제나 찬반 의견이 있기 마련이지만 인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교수나 박사의 강의와 인기 강사의 유쾌한 강의는 그 깊이에서 매우 큰 차이가 나타나는 사실을 첨예하게 느낄 수 있다.
데모 현장, 집회 현장만 쫓아다니며 선동적 강의만 하던 코미디언이 유명 강사로 성공을 하고 방송마다 자주 출연하다 급기야는 국영 방송의 정치 토론 프로그램의 MC까지 맡아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 코미디언을 자격이 있는 전문가로 인정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코미디언이 소속된 정당을 지지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강의에 박수를 보내고 그 코미디언이 쓴 책이 많이 팔린 것은 사실이지만 인기에 영합했던 그 코미디언 강사의 수명은 사람들의 뭇매와 함께 얼마 되지 않아 끝나 버렸다
그리고 요즘 인문학의 열풍에 힘을 얻었는지 언제부터인가 '클래식의 대중화'란 얘기도 여기 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클래식 음악은 번역 그대로 고전 음악이고 서양의 클래식은 궁중 음악으로 소비의 주체는 왕족과 귀족뿐이었다.
유럽의 최상위층만을 위해 제작되고 연주하던 음악이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 전문적 음악 공부를 통해 예술가의 혼과 열정으로 탄생한 음악이 클래식이며 최고의 교육을 마친 엄선된 전문 연주자들만이 궁중에서 연주할 자격이 주어졌으며 국왕을 위해 제작된 음악이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 사유로 인해 고전 음악의 종주국인 유럽에서도 클래식 음악이 대중으로 전파되었던 시기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시작되었을 정도이니 클래식 음악의 진정한 가치는 말로 형용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표현이 결코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클래식 음악이 최초로 상륙한 시기는 홍난파가 활동하던 일제 강점기였고 당연히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최상위 계층이었으며 그것도 희귀하고 구하기 어려웠던 고가의 축음기를 소유한 부유층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를 볼 때 가난했던 한국에서 소수의 클래식 애호가는 극히 소수의 부유층이었으며 당시의 애호가들로 시작된 클래식 음악이 사람들에게 전파된 역사 또한 급박했던 한국의 경제 성장기와 나이를 함께 했다. 그런 연유로 소수의 클래식 애호가들 중에도 진정 서양 음악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애호층이 소수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클래식 음악의 장르는 대중음악과는 차원이 다른 음악적 상식이 선행되어야 클래식 음악의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서 2000년 초기까지는 한국의 클래식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고 시즌 별로 춘추 가곡의 밤, 가을맞이 가곡의 밤 등 교향악단과 오페라 공연도 정기적으로 공연되었었다.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했던 한국의 클래식은 뮤지컬의 호황으로 밀려나더니 쇠퇴의 길을 걷고 말았으며 트로트의 열풍으로 클래식 공연은 자취를 감추다시피했다.
문체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 예술계의 티켓 판매량은 코로나 사태 이전 뮤지컬 티켓 판매량 3000억 원에서 코로나 이후 30억으로 감소했고 클래식 티켓 판매량은 오페라 62억 원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고작 2600만 원의 티켓 판매량을 나타내어 사실상 붕괴 상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방송 출연료와 CF 수익, 비대면 공연으로 억대의 수익을 올리는 트로트 가수가 활동하고 있으며 현대 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방탄소년단 BTS의 소속사인 빅 히트의 기업가치는 1조 2800억에서 2조 2800억으로 평가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공연이 금지되자 클래식 연주자들의 생활고는 극에 달했고 지속된 생활고에 겹친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예술인도 발생했으며 인터넷 뉴스에서나 가슴 아픈 사연을 접할 수 있었지만 정부의 예술인을 위한 지원책은 아무런 혜택도 주지 못하는 명분 상의 정책뿐이었다. 이러 한 상황에서 거리 두기 제한이 풀리고 공연이 허가되면서 인문학 강의가 유행을 하자 '인문학의 대중화'에 이어 클래식 연주자들의 자구책인 '클래식의 대중화'도 등장한 것이다.
21세기의 예술은 천부적 영감과 고된 연마의 과정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는다 해도 대중의 호평이 없다면 예술로서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놀이로 즐길 수 있는 예술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놀이가 문화로 형성된 원초적 예술의 개념을 대중이 이해한다는 것으로 언제나문화 소비의 주체는 대중이며 문화의 주인이 대중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통해 모든 예술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표현의 자유와 아티스트의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라 해도 예술의 궁극적 기능인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대다수의 욕망은 과거 고전 예술이 번영하던 시대와 변함이 없고 인기와 유행을 제조하는 문화 또한 질적 가치의 향상이 없다면 대중에게 어필이 불가능한 것이 오늘날의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기 차트에 의해 대중을 사로잡는 음악과 박스 오피스 순위의 영화는 이제 거대한 경제 영역으로 자리를 잡았고 변화무쌍한 유행과 함께 문화를 형성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본이 문화를 만들고 방송이 대중문화를 주도한다 해도 한 나라의 문화는 국가와 국민의 수준을 나타내고 교양은 인격을 대변하는 법이다.
먹방과 트로트가 장악한 한국 문화의 현실 속에 인문학의 대중화와 클래식의 대중화는 문화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일부의 바람이지만 문화적 가치란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것이며 고귀한 문화는 멋 보다 맛을 아는 예술을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하는 소비주체가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