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시간, 강남역이나 을지로 근처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을 제외하면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녀를 보기 힘들다.
요즘은 대기업에서 업무에 따라 고객을 응대하지 않는 부서는 평일에도 정장을 입지 않는 사원이 많다.
1990년대 광교와 소공동에 즐비하던 양복점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싸고 다양한 대기업의 패션에 밀려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맞춤복을 입는 사람은 장년에서 노년층의 고정 고객뿐이라고 남아있는 업계에서는 입을 모은다.
대학을 입학한 아들에게 양복을 맞춰주던 문화는 사라지고 백화점에서 양복을 사 주는 시대이며 격식을 지켜야 할 자리가 아니라면 불편한 정장을 고집하던 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세대가 바뀌고 문화가 변하면 패션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까닭에 다양한 캐주얼 패션의 민감한 변화는 유행을 따르기조차 바쁘지만 포멀(formal) 한 정장 상품은 재고가 쌓여서인지 100만 원에 가까운 최고급 국내산 순모 정장을 저렴한 가격으로 3벌씩 묶어서 판매하는 홈 쇼핑을 자주 보게 된다.
예전에는 외국 유명 브랜드 청바지의 소재가 대부분 면이었지만 요즘엔 면 100% 소재의 청바지는 출시도 하지 않고 편안한 신축성 소재와 계절에 맞게 입을 수 있는 여러 재질의 청바지가 다양하다.
편한 것이 대세인 시대에는 패션 제품도 멋과 실용성을 함께 겸비하지 않으면 상품으로의 가치가 없는 게 오늘의 유행이고 쇼핑 호스트의 광고는 실용성과 소재의 신축성을 강조하려고 모델이 운동을 하듯 여러 포즈를 보여주는 장면은 홈 쇼핑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뉴스에서 보듯 청와대 고위 공무원들의 노타이 차림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이고 주말에 정장을 갖춰 입으면 결혼식에 가냐고 물어보는 시대가 어느새 강산이 두 번은 족히지난 것 같다.
과거 신분제도가 존재하던 시대의 의복은 신분을 나타내는 계급의 상징이었고 양반들의 실크로 만든 전통 의관은 혼자 입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까다로웠으며 이러한 의복을 입는 관례는 서양의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대가 변해도 1990년 대까지 공무원과 대기업 사원은 정장을 입어야 했으며 사내 규칙이 아니더라도 남들이 다 입고 출근하는 정장을 거부하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에 기업에서 캐주얼 차림의 출퇴근은 현장 근무 외에는 흔하지 않았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글로벌 세상은 자유와 개성의 물결이 국경을 넘나들며 지구촌은 가까운 이웃이 되었고 한국 역시 글로벌 기류를 환영이라도 하듯 모든 생활과 문화가 급속하게 변하였다.
특별한 문화의 두드러진 부분 없이 전반적인 모든 문화가 눈에 띄게 달라진 현상은 가장 기본적인의, 식, 주의 변화에서 피부로 다가왔다.
정장 차림의 출퇴근 모습이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캐주얼 패션은 다양해졌고 혼밥. 혼술 문화가 대중화되었으며 기성세대의 숙원 사업이었던 내 집 마련의 계획이 노선을 달리하게 되었다.
물론 내 집 마련의 꿈이 좌절된 현실은 한국 부동산 시장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정책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임대는 가진 것이 없어서 빌린다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소유의 개념보다 필요에 의한 대여가 당연한 생활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이며 문화와 생활방식의 급속한 변화를 무소유의 합리화로 스스로 위안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소유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실종된 주체의식이 한몫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점차 증가하는 편익의 혜택과 함께 그릇된 개인주의, 이기주의는 갈수록 만연하고 경제적 여유가 없다 해도 삶의 질은 나날이 상승하는데 한 번 올라간 눈높이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현상은 사회적인 불균형이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수입에 비해 과도한 소비가 늘어나는 세태가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 부채를 양산하는 부정적 현상이지만 오늘날 대다수의 생활방식은 개인부채마저 필연적이고 당연하다는 그릇된 사고가 이미 대중화된 세상이다.
물론 수입이 적은 사람이 값비싼 상품을 사지 말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지만 나라의 GNP가 상승하면 함께 증가하는 소비의 불균형을 결코 정상적인 문화라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내일이 불투명하다고 체념한 일부 젊은이들의 일탈과 같은 소비 형태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것으로 캐나다에서 건너온 욜로(YOLO) 문화가 한국 젊은이들을 감염시킨지는 벌써 여러 해가 지났으며 언제나 무분별한 소비를 부추기는 매스미디어를 통한 광고가 인터넷, TV를 통해 넘쳐나고 감성 마케팅의 유혹을 외면하지 못하는 고객들이 증가하는 데서 변화된 소비패턴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소비 문화는 오늘만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증가하는 데 원인을 찾을 수 있고 무분별한 카드 사용이 증가하는 사유는 내일이 없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많은 까닭과 케세라세라(Queserasera)와 같은 맥락인 한 번밖에 못 산다(You live only once)라는 욜로 문화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성인이 되면 정장 한 두벌은 있어야 한다는 문화가 요즘에는 세대와 관계없이 명품 한 두벌은 있어야 한다로 바뀌었는데 한국 사람들의 해외 명품 패션에 대한 애착은 세계 1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늘 보게 되는 해외 탑 브랜드 할인 광고는 면세점과 백화점 명품관을 넘어 가정으로 영업 타깃을 옮기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쇼핑 호스트의 "이런 기회 다시는 없습니다." "이 가격에 안 사시면 두고두고 후회하십니다."라는 솔깃한 유혹에 끌려 '구매하기' 버튼을 누르게 된다.
해외 탑 브랜드 명품의 인기에 힘입어 짝퉁 산업에 기여한 한국 젊은이들은 무척이나 많고 A급 짝퉁은 예약을 하고 몇 십만 원을 줘야 살 수 있다고 하니 탑 브랜드 인지도의 마력은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무슨 옷을 입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브랜드를 입고 다니는지에 사람의 위치가 달라지는 시대이고 상품의 질 보다 브랜드 가치를 우선으로 선택하는 쇼핑문화는 정착이 되었다.
그렇다면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명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째, 소재가 엄선된 천연소재이며 실크와 부드러운 100% 모직이 주로 사용되고 신소재 외에 합성 혼방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고유한 디자인은 큰 변화는 없지만 디자이너의 절제되고 세련된 라인이 공통적이며 유행이라면 전체 유럽 패션의 흐름을 따르면서 여유가 있거나 타이트하거나 최근 경향을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소화하고 눈에 보이는 차이라면 카라와 어깨가 넓거나 좁거나 유행을 따른다는 것이다.
셋째, 공정 과정이 모두 수작업이며 한 땀, 한 땀 전문가가 소재와 꼭 같은 실을 사용한 섬세한 바느질을 볼 수 있고 상품 전체에 빈틈이 없으며 안감과 내장재도 대부분 천연소재이고 단추나 부속품도 장인이 만드는 주문 상품이다.
명품 옷을 처음 입는 사람도 부드러운 감촉과 고급스러운 디자인, 가벼운 소재의 착용감을 누구라도 느낄 수 있으며 반짝이지 않는 소재의 은은한 광택은 모든 명품 옷의 동일한 특징이다.
그러나 탑 브랜드 상품의 가격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국내산 최고 브랜드의 정장, 백화점 판매 가격의 3~5배 정도의 고가이며 수입 명품은 세일을 해도 20%가 최고이고 해외 직구의 할인 폭이 높은 상품은 구매하기 전 의심을 먼저 해야 한다.
소재와 디자이너의 로열티, 유통과 광고, 인건비를 감안하면 지나친 할인율은 불가능하고 이월 상품이나 블랙 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할인을 많이 하지만 잘 알려진 유명한 대형 쇼핑몰이 아니면 쇼핑을 피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의류 상품인 경우 자주 애용하는 브랜드에 항상 입던 사이즈라 해도 유행에 따라 해마다 사이즈 변화가 있고 특히 세일 품목으로 판매하는 상품은 교환과 환불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갑과 핸드백, 벨트 외에는 해외 의류 상품의 직구는 피하는 게 현명하다.
가격에서 보듯 유명 디자이너의 탑 브랜드 상품은 원래 소수의 부호가 고객층이며 할리우드 스타가 광고를 한 상품이 유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부자들을 위해 제작, 판매하는 상품이 탑 브랜드이고 1990년대에 한국은 해외여행이 자율화되면서 면세점에서 한 두벌 구입하던 외국 명품을 우리나라의 부유층이 선호하며 증가하기 시작했고 대를 이은 취향이 확대되면서 일부에서 시작된 명품 문화가 이제는 TV 홈 쇼핑에서까지 주력 상품이 되었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내 돈 주고 비싼 명품 사는 걸 뭐라 할 사람은 없고 남의 소비패턴에 간섭할 사람도 없지만 명품 옷, 명품 악세사리를 신분의 과시로 착각하는 허영심에 빠진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
그 사치 문화가 대를 이어 확산되는 현상이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고 양극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며 우려해야 할 사실은 일부 수입이 넉넉하지 못한 젊은 사람들이 졸부들의 문화를 답습하려고 빚내서라도 명품을 구입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하는 현상이다.
품질이 최고인 고가의 해외 상품을 입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샐러리맨이 구입하기에는 가격 부담이 너무 크고, 굳이 해외 브랜드가 아니어도 좋은 소재로 만든 멋있는 국내산 제품도 엄청나게 많다.
어찌 보면 이러한 사치풍조는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 미제와 일제라면 무조건 최고로 여기던 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고 '남들 다하는데 나는 왜 못해?'라는 허영심이 작용을 하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비싼 명품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사람이 많다.
예전에 'sex and the city'라는 미국 드라마가 장기간 인기를 끌면서 미국 중산층은 드라마처럼 옷을 입고 화려한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사는 미국 사람은 연봉이 100만 달러 이상을 버는 부자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분 미국 시민들은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어 있고 세일 기간만을 이용하는 문화는 정착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처럼 탑 브랜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1990년대에 상업으로 성공한 한국 교포 사장님들이 코리안 타운을 건설했고 슈퍼마켓과 세탁업, 도소매업에서 대규모 상권을 형성했다.
고생, 고생해서 이룬 성과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지만 한인 사장님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18k 롤렉스 시계에 벤츠와 BMW 고가의 승용차를 유행처럼 소유하고 값 비싼 탑 브랜드를 애용하는 취향이 공통적이다.
물론 지난날, 힘들었던 과거의 보상심리가 생활에 작용을 하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기가 번 돈 자기가 쓰는 것을 비판할 사람도 없다.
그러나 미국 주류사회(main stream) 사람들이 미국 내 한국 상인을 보는 반응은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이 많았고 흥행에 성공한 몇 편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 상인들을 비하하는 대사가 있어 교포 사회는 물론 국내에서도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세계 모든 나라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며 지금 한국은 치솟는 물가를 감당할 길이 없고 미국 중앙은행의 자이언트 스텝에 이어 국내에서도 금리 인상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이며 한국경제는 그야말로 위기 상황이다.
그런데도 TV와 유튜브에서는 먹방과 관련된 음식 프로그램은 넘쳐나고 스포츠 채널이 아니어도 연예인들의 골프 방송은 인기 프로그램이다.
우리 엄마들은 높은 물가에 삼겹살이나 채소 사는 것도 망설이는 현실에서 홈 쇼핑에서는 해외 명품을 파는 방송이 경쟁하듯 채널마다 성황이다.
취직 준비를 하는 노량진 고시생들이 수입차를 타고, 대책 없이 카드 빚내면서라도 갖고 싶은 명품은 사야 마음이 편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이런 한국의 대중문화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수입이 일정한 사람이 명절 때나 블랙 프라이데이에 갖고 싶었던 탑 브랜드 상품 하나쯤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은 연말을 맞아 자신에게 스스로 주는 보상이며 그런 쇼핑을 과소비라고 비판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젊은 사람들의 문화도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듣게 되면 정상적인 시각으로는 말 문이 막힐 따름이다.
물론 대다수 젊은 사람들의 공통적 현상은 아니라 해도 부정적 사고가 핫한 유행을 따르게 되면 전염성이 강한 전반적인 사회의 모순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고 쉽게 인지적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1997년 한국에 불어닥친 IMF 금융위기는 예정된 고난이었음을 많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으며 학자들과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지금 한국의 경제 현실을 '초대형 복합위기상황(perfect storm)'이라 지적하고 있는 오늘을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되며 이미 익숙해진 안전불감증에서 깨어나야 한다.
문화와 삶의 질이 상승하는 것은 지적 성숙이 없다면 불가능하고 경제적 안정은 성실하고 현명한 사람들이 누리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입장을 잘 아는 사람이며 사회의 변화를 결코 도외시하지 않는 사람이다.
'영웅 숭배론'을 쓴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토마스 칼라일의 '의상철학'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는 처지도 다르고 나이도 다른 수많은 인간의 물결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당신은 아십니까? 영원에서 와서 영원으로 갑니다.
이들은 모두 유령이요. 환영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을 가진 영혼들이지만 곧 그것을 잃고 허공으로 사라질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걷는 단단한 길은 영상에 지나지 않고 그들은 허공의 한 복판을 걷고 있습니다. 그들의 앞에도 뒤에도 있는 것이라고는 공허한 시간뿐입니다.
저기 붉고 노란 옷을 걸치고 걷는 사람, 구두 뒤꿈치에 박차를 달고 머리 꼭대기에 깃을 꽂은 채 한껏 멋을 부린 저 사람에게는 오직 오늘만 있을 뿐 어제도 내일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친구여 여기서 당신은 모든 존재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짠, 역사라고 부르는 살아 움직이는 직물의 고리 하나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그것은 곧 당신을 스쳐 지나갈 것이고 그리고 다시는 눈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