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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l 09. 2024

낭만에 대하여

젊은 날의 감성

우연히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듣다가 가사에 '도라지 위스키'가 들려 도라지 위스키에 대해 물었다.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 다방에서도 잔술로 팔았던 위스키이당시 수입 위스키는 가격이 비싸고 판매가 금지된 품목이기 때문에 일본 토리스 위스키에 향료와 색소를 넣어 저렴한 가격에 팔았던 국산 위스키가 도라지 위스키라는 것을 나이 지긋한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탱고 풍의 옛 노래가 좋게 들리는 사유는 중년을 넘긴 내 나이의 정서가 무르익은 탓이라 여겨지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FM 라디오의 팝 음악과 발라드를 들으며 젊은 시절을 보냈던 나의 음악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 노래였다.

나이가 들면 정서도 감성도 달라진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돌았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아마 며칠 전 술자리에서 나이 든 지인이 이 노래를 부르신 적이 있어 그때 기억의 영향이었겠거니 하고 말았다.

돌아보면 나의 젊은 시절은 얼마  지난 아도 바쁘게 앞만 보고 살아온 길은 슬픔과 기쁨의 교차로를 수 없이 넘나들며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좋은 일 보다 힘겨운 일이 많은 시간이었지만 오늘의 나를 만들어   세월이었기에 결코 후회도 미련도 다.

젊은 날의 철없는 방황은 생각해 보면 인생의 자산 되었고 많았던 방황은 옳고 그름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되었다.

젊은 시절의 열정은 때론 이성을 가리기도 했으나 반면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는 에너지를 제공했고 오르막 내리막을 수 없이 반복하는 추진력이 되었다.

열정이란 고통도 치유할 수 있는 묘약이고  애절한 슬픔마저 낭만으로 만드는 마력이다.

그러기에 젊은 날의 감성은 한계가 없는 것이며 젊은 날의 시간은 오류도 허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연유였을까?

 '이제 와 세상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 '라는 가사가 유독 뇌리에 맴돌았던 것 같았다.

그러낭만이란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아니거니와  과거의 회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회상 속의 낭만은 추억의  로맨스이고 지난 미련이 남는 까닭에 더욱  낭만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가 낭만이 사라졌다는 것은 결코 아니며 어쩌면 한층 원숙해진 안목과 함께 무르익은 낭만이야 말로 진정한 풍미의 로맨스가 아닐까 싶다.

물론 젊을 때의 감성은 낭만을 향유하기엔 거리낄 것이 없겠지만 낭만이란 감상적인 심리 상태이므로 나이와 시대가 따로 없는 감정이다.

낭만이란 어떤 상황을 대하는 공감각적 심정이므로 때론 시상이 되기도 하고 상대에 따라 사랑일 수 있는 감정이다.
즉 현실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은 기분이 낭만인데 공감각적 변화에 반응하는 게 낭만이라면 나이에 따라 변하는 것은 당연하고 옛날의 감상은 아니어도 또 다른 느낌의 감미로운 로맨스는 나이가 들어도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낭만이란 단어는 옛날 노래의 가사나 흑백 영화에 등장하는 말이지 요즘 세대와는 동떨어진 용어이며 뉘앙스가 현대적이지는 않다.

낭만주의(romanticism)는 18~19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사상으로 문학, 미술, 음악, 건축등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과 즉흥적 감성을 주장하는 예술사조로 고전주의에 반기를 들은 사상이다.

낭만주의는 19세기 산업혁명과 자연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계몽주의와도 반대되는 사상이며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보는 낭만주의자들은 지적으로 자연을 연구하는 19세기의 과학이 자연을 파괴하고 죽이는 것이라 주장했고  당시 정치적 상황과 산업의 성장에 염증을 느꼈다. 

그들은 시적 상상력을 통해 자연을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특히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과 철학이 발전한 독일에서 낭만주의는 크게 일어 났다.

 시대의 작품으로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등이 있으며  윌리엄 워즈워즈, 빅토르 위고, 바이런도  시대의 작가이다.

낭만파 음악가(romantic musician)는  슈베르트, 슈만, 쇼팽, 리스트와 브람스 등이 유명한 대가이다.

정통과 이성을 반대하는 낭만주의에서 낭만은 현실을 벗어난 감성이므로 예나 지금이나 기존의 틀과 형식을 잠시나마  떠난 순수한 감정이다.

누구나 일상의 진지함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금세 이성적 판단이 일장춘몽을 깨뜨리는 상황을 경험한다.

바쁘게 사노라면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주역이 다름 아닌 이 시대의 중년이다.

설사 불륜일지라도 순수한 로맨스를 느꼈다면 그것은 분명 낭만이고 자연에서 사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멈춰 설 수 있다면 그것도 낭만이며 잊고 살았던 옛 친구와 거리낌 없이 술잔을 나누는 것 또한 낭만이다.

아무리 바쁘고 각박한 세상이라 해도 사람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고 주위 사람과의 교감과 정서적 교류 없이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의타의등 소통을 통해 관계를 맺고 싫은 사람과도 일을 하는 게 우리네 모습이며 바쁜 일상에서 잠시라도 낭만을 느끼며 산다는 것은 일상의 산소와 같은 힐링이고 축복이다.

신은 인간에게 기쁨과 함께 고통도 주셨지만 인간이 스스로 견딜 수 있는 고통만을 주셨다.

인간의 일생에서 행복은 힘든 시간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평생을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은 없으며 밤이 아무리 깊어도 새벽은 오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게 인생이자 자연의 섭리이다.

18세기 낭만주의자처럼 인간과 자연을 동일하게 여긴다면 오늘날 지구는 신음하고 있지만 자연은 인간의 맥박이 멈추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백호의 노래처럼 궂은비 내리는 날엔 친구와 갓 부쳐 낸 파전에 술 한잔 기울이는 낭만을 향유하는 것도 운치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낭만!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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