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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Jul 07. 2023

여름 냄새


여름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코끝에 수박향이 났거든요

비록 수박을 먹은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나지만

기억 속 수박향이 여름이 왔음을 알려주네요 



여름이 왔다. 본격적인 여름.

과학적 검증의 기반과 사회적 합의로 이뤄진 절기로써 여름의 시작을 알 수 있지만 이와 별개로 본격적으로 여름이 왔음을 느끼는 건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다. 각 계절이 지니는 고유의 냄새. 그 냄새가 진하게 올라올 때 나는 “아, 또 하나의 계절이 왔구나” 한다.     


여름하면 달아오른 아스팔트 냄새, 시원한 계곡 냄새, 장마철의 눅진 냄새 등 여러 냄새가 있지만 첫째는 단연 수박 냄새다. 몸통만한 수박을 커다란 칼로 쑥쑥 세모 모양으로 썰어 쟁반 한가득 담아주던 엄마. 동생과 나는 신문지를 거실에 잔뜩 깔고 양손에 진득한 수박물을 묻히며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입에서 흐른 수박물이 손을 타고 밑에 깔린 신문지에 뚝뚝 떨어지면 묘한 냄새가 났다. 수박물의 달콤한 향에 종이와 잉크 냄새가 절묘하게 섞인 냄새. 이것이 나의 수박 냄새다.      


이제 신문을 깔지 않고도 흐르는 수박물을 컨트롤하며 깔끔하게 먹을 나이가 되었지만 수박만 보면 나의 기억이 어렸을 적 수박냄새를 떠올린다(실제로 어른이 되어 수박 단독 개체의 냄새를 맡아 보았지만 무향에 가까울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혼자 살면서 수박을 사먹은 게 언젠지 기억도 없지만 선풍기를 쐬며 TV를 보는데 문득 기억 속 수박 냄새가 스쳐갔다. 여름이 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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