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과 점심 사이, 소위 공백의 시간의 숨멎는 고요.
눈은 이런 고요함마저 찍어 누르듯 내렸다.
한송이 한송이가 거대한 바위가 되어 이 세상의 모든 영혼을 눌러 죽이듯,
난 고요의 시간, 길 위에서 세상의 종말을 예견했다.
그러나 며칠 뒤, 바닥에 깔린 눈은 어느새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칙칙한 아스팔트 위에 덮인 하얀 눈은 햇빛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고,
미끄러운 길 위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과 평소에는 귀여움이라곤 찾아보긴 힘든 인생에 찌든 어른들까지 종종 걸음으로 웃음짓게 만들었다.
눈 덕분에 더 많은 빛이 흘렀고, 세상이 조금 느려졌다. 사람도, 차도, 시간도, 햇살도.
고요하고도 느린 눈의 세상.
유독 눈이 많은 이번 겨울. 세상이 조금 여유로워 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