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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문의 Jan 19. 2024

[병원인턴] 인턴들의 속마음 (Int.H)

인턴 H의 인턴후기

Q. 인턴을 막 시작했을 당시를 돌이켜보면, 그때는 어땠었나요?

Int. H : 막막함. 그래요 그저 막막했어요. 

지방에서 올라와 처음 하는 서울 생활에 인생 첫 직장 생활이었으니까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직장이다. 나는 이제 사회인이다'라는 생각에 꽤 많은 부담을 가졌어요

더 이상 학교와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냉혹한 사회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다.

어쩌면 '인턴'의 신분보다 '사회 초년생'의 신분이 더 무거웠을지도 몰라요.

의사로서의 인생이 시작된다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었죠.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TV에서 보던 의사들처럼 멋지고 똑똑하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해서 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하긴 했는데 제가 의사가 되었대요.

그냥 평소처럼 시험을 준비하고, 시험을 보았고, 통과를 했을 뿐인데 갑자기 신분이 바뀐 거죠

의사가 되었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았어요. 시험이 끝나고 방학을 즐긴 뒤 3월부터 또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거나 병원실습을 해야 할 것만 같았죠.



Q. 제일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Int. H: 저는 내과 인턴을 했을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거든요.

첫 내과 주말 당직, 아침 5시 30분부터 밤 11시 30분까지 단 1초도 쉬지 못하고 일했어요.

식사도 휴게실에서 처방을 내면서 먹었고, 밥 먹는 중에 급한 콜이 있으면 밥을 입에 욱여넣고 곧바로 병동으로 향했죠.

3월에 소아과를 돌아서 술기를 많이 못 해본 터라, 4월에 내과를 시작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그때의 저에게는 뭐하나 쉬운 술기가 없었죠. 요령이 없어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준비물을 한 번에 다 못 챙겨가서 병실과 준비실을 계속 왔다 갔다 했고요.

지금이라면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는 일들도, 그때는 참 부담스럽고 버거웠네요.

첫 주말 당직의 자정, 깜깜한 병동 밖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그때가 아직도 생각나요.

갑갑한 속을 어떻게든 풀어보고자 산 콜라를 마시며 '아 이게 인턴이구나.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게 눈앞에 선하네요.

단연코 제 생애 가장 바쁘고, 가장 힘든 날이었어요



Q. 인턴을 하며 어떤 좋은 기억들이 있나요?

Int. H : 좋은 기억은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마음 따뜻했던 기억들은 역시 환자분들과의 일화들이죠.

내과에는 장기입원 환자분들이 꽤 많이 계세요. 그러다 보면 거의 한 달 내내 보게 되는 환자분들도 계시기 마련이죠.

종양내과에 입원해 계시던 장기 환자분이 유독 떠오르네요.

그분의 서랍 속은 간식 창고였어요. 비닐봉지 하나에 핫 브레이크 하나씩 넣어서 산더미처럼 넣어두셨죠.

제가 그분의 상처를 소독해 드릴 때마다 늘 '고맙습니다' 하시면서 핫 브레이크를 하나씩 주셨어요.

껍질을 깐 것도 아닌데, 조금이라도 더 깨끗하게 주기 위해 하나하나 일회용 비닐봉지에 핫 브레이크를 넣으셨을 모습을 생각하니 참 뭉클하더라고요.



Q. 과를 지원할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나요?

Int. H : 저는 제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과를 골랐어요. 

저는 인턴을 수료할 만큼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과를 가든 결국에는 다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 시절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외과가 서 잘할 사람이 이비인후과 간다고 해서 못하겠냐, 또 안과 가서 잘할 사람이 피부과 간다고 못하겠냐. 결국은 다 적응하고 시간이 지나면 잘하게 된다'

그래서 PK 때 실습을 하며, 그리고 인턴 때 일을 하며 제 마음에 집중했어요.

이 과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한지, 자신감이 생기는지, 잘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는지 말이에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이유가 있지는 않아요. 그냥 제 마음을 따라서 간 거죠

위험천만할 수 있지만 한번사는 인생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하하



Q. 훌륭한 인턴이란 어떤 인턴인 것 같나요? 

Int. H : 사고 치지 않는 인턴이요. 

12개월 동안 인턴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사고를 치지 않기는 정말 쉽지가 않아요.

눈에 띄게 일을 잘하는 소위 에이스들만 훌륭한 인턴이 아니라, 사고를 안 치는 인턴들 역시 훌륭한 인턴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인턴을 마친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왜 이런 실수를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부터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여러 사건 사고들이 있을 거예요.

사람이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고 하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칠 수도 있거든요

'잘하려고 하지 말고 사고만 치지 말자' 훌륭한 인턴생활의 지침이라고 생각합니다.



Q. 순환근무는 어땠어요?

Int. H : 장단점이 명확한 것 같아요. 

장점은 우선 새로운 지역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게 제일 커요. 고향이나 학교의 위치를 떠나 어딘가에서 오랫동안 생활한다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거든요.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새로운 생각도 할 수 있고, 그런 환경에 적응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어요. 저는 순환근무를 하며 제 인생이 조금은 더 다채로워졌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같은 일을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좋은 점도 있지만, 타성에 젖을 수도 있어요. 고이게 될 수 있죠.

순환근무는 그럴 기미가 보이기도 전에 강제로 순환을 시켜버리니까 늘 새롭고 고일 수가 없죠.

단점은 한 병원에 적응을 하고 사람들에게 정이 생길만하면 이동을 해야 한다는 점이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건 생각처럼 단순하지가 않더라고요. 그저 앞으로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근무 병원이 겹치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집 구하는 것도 단점이죠. 6개월마다 순환을 해서 계약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에요. 물론 좋은 기숙사를 무상 제공해 주지만 본인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점 역시 큰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인턴을 마무리하는 지금,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Int. H : 인턴을 수료하는 건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학생 때처럼 그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학년이 높아지는 게 전혀 아니더라고요

대부분의 인턴들이 끝까지 버틴 끝에 수료한다고 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모두가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하지만 함께 버텨가는 거죠.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정말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 동요

스스로가 대견해요




Q. 후배 인턴들에게 한마디를 해준다면?

Int.H: 스스로를 잘 돌보기를 바라요.

다른 직종과는 달리 우리 직종은 휴식시간이나 식사시간이 따로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간 밥도 굶으면서 일하기 십상이죠.

그렇게 건강이 상해가면서 일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몸 관리 잘 못한다는 소리 나 안 들으면 다행이죠.

일 사이사이 생기는 빈 시간들을 이용하는 게 아주 중요해요. 틈틈이 낮잠도 자고, 밥도 먹고 하며 본인을 잘 챙기길 바라요


고마워요 인턴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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