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S의 인턴후기
Q. 인턴을 시작했던 당시를 돌이켜보면 어땠었나요?
Int. S : 모든 것이 막막했어요. 인생 처음 경험하는 직장생활이자 의사로서 내딛는 첫 발자국이었으니까요.
경험해 보지 못한 병원, 시스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참 걱정이 많았죠.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적응은 할 수 있을지, 좋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잘 지낼 수 있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잘 할 수는 있을지 말이에요
전산 시스템 교육을 받았지만 실제로 처방은 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단순한 일이지만 처음에는 참 많이도 버벅거렸어요. 간단한 처방을 하나 낼 때도 몇 번씩 확인했고, 조금이라도 헷갈리는 게 있으면 간호사 선생님께 여쭤보면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세상 모든 일이 그런 것 같아요. 미지에서 오는 두려움으로 처음에는 두렵다가도 적응이 되면 금세 괜찮아지더라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함께하는 동기들의 도움이 컸어요.
동기 사랑 나라사랑이라는 말이 괜히 속담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게 아니었죠. 동기들의 도움 덕분에 지난 1년을 잘 버텨올 수 있었어요.
Q.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이 있나요?
Int. S : 첫날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선명해요.
저는 3월에 흉부외과에서 근무를 했어요. 심지어 근무 첫날인 3월 1일 당직이었죠. 난생처음 해보는 인턴업무로 해가 질 때까지 밥도 거르며 일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밤이 되었는데 갑자기 응급수술이 생겼다며 동의서를 받아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우리 병원 흉부외과는 전공의 선생님들이 안 계셔서 동의서의 일부분은 인턴이 받아야 했거든요.
동의서를 받기 전, 그동안 배웠던 모든 지식들을 총동원해서 환자와 보호자분들에게 설명할 내용들을 숙지했어요. 응급수술인 만큼 환자와 보호자분들도 당황스러운 상황일 테고 궁금한 것들이 많을 테니까요.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동의서 패드를 들고 환자분에게 갔더니 교수님께서 환자와 보호자분께 중요한 내용들을 직접 설명하고 계셨어요. 커튼 밖에서 조용히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소생 가능성이 50%가 안된다고 설명을 하시고 계셨어요. 그 설명을 듣고 있자니 저도 덩달아 긴장이 되었죠. 교수님께서 자리를 떠나시고 나머지 동의서를 받는데 최대한 조심스럽게 동의서를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다행히도 그 환자분은 한 달 뒤 걸어서 퇴원하셨어요. 정말 잊지 못할 기억이네요.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는 휴가를 가기 전주였어요.
인턴은 한번 휴가를 가면 1주일씩 병원을 비워요. 하지만 한 달에 근무해야 할 당직 수는 그대로라 나머지 3주 동안 당직을 많이 서야 해요. 그러다 보니 휴가를 제외하고 나머지 한 달 동안은 대부분 36시간 근무-12시간 휴식을 반복했었어요. 36시간 근무도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거의 없는 36시간 근무였죠.
체력적으로 지치니까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어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던데 저는 정 반대의 한 달을 보냈었죠. 지친 신체에는 지친 정신이 깃들더라고요.
휴가차 떠났었던 템플스테이, 목욕재계할 수 있었던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휴가로 몸과 마음을 비우며 다행히 잘 회복했지만 그 3주는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환자분들에게 욕을 들었을 때는 정신적으로 참 힘들었네요.
여러 시술이 필요했던 한 환자분이 계셨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 번 얼굴을 뵈며 시술들에 대해 설명을 하고 동의서를 받았죠. 동의서를 받고 시술을 하고, 또 동의서를 받고 시술을 하고 가 반복되니까 환자분도 많이 답답하셨나 봐요. 본인도 검사와 시술을 계속 받으니 건강에 대해 걱정이 많이 되셨겠죠.
본인의 화에 못 이겨 저에게 언제까지 검사를 할 거냐며 욕을 하고 화를 내셨는데, 저로서는 굉장히 억울했어요.
인턴은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존재인데 말이죠. 환자분께서 병원의 시스템을 모두 아실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또 환자분의 상황이 그랬던걸 아니까 이해는 하지만 참 속상했어요.
Q. 좋았던 기억은 무엇이 있나요?
Int. S : 퇴근하고 친한 동기들과 함께 술을 한잔 기울이며 맛있는 걸 먹을 때가 정말 행복했어요.
아직도 함께 가던 고깃집과 훠궈 집이 생각이 나네요. 참 맛있었어요.
상반기에 근무했던 병원은 특히나 인턴 수가 적어서 인턴 한 명 한 명이 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인턴 일이 힘든 편이었어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퇴근하고 마시는 맥주 한 잔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죠.
병원 안에서 근무하며 좋았던 기억은 환자와 보호자분께서 저에게 감사를 표현해 주셨을 때요.
한 달의 근무를 마치고 다른 과로 턴하기 전날, 보호자분이 환자분을 잘 봐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하셨거든요. 비록 힘들었지만 정말 기뻤어요.
그때는 제가 처음으로 주치의로 일하던 시기였는데, 첫 주치의 업무로 모르는 것도 많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많아서 참 힘들었지만 간단한 감사의 말씀 한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이런게 의사로써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과를 지원할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나요?
Int. S : 저는 두 가지 기준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제가 과를 선택할 때도 이 두 가지 기준을 주로 고려했어요. 수술을 하는과냐 수술을 안 하는 과냐, 그리고 환자를 직접적으로 보느냐 안 보느냐
인턴을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수술하는 과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실습도 꽤 재미있게 돌았었고 주변에서 저와 잘 어울린다고 말도 많이 해주었고요.
하지만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해 보니까 저는 수술과가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술방 그 특유의 분위기가 저랑 안 맞았죠. 그 대신 병동을 다니며 환자분들과 이야기하고, 또 그분들에게 처치를 하는 게 좋았어요.
수술방보다는 병동에서 에너지가 생기고, 제가 좀 더 밝은 사람이 되는 걸 알게 되었죠.
무엇보다도 인턴으로 근무하며 경험했던 한 케이스가 제가 내과를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어요. 제가 주치의로 근무하던 어느 날 병실에 입원해있던 한 환자분이 심정지가 날뻔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늦지 않게 교수님께 노티를 드리고, 내과 전공의 선생님들께 연락드려서 기관삽관을 했죠. 그리고 빠르게 중환자실 베드를 어레인지하고 ABGA를 하고 승압제를 쓰는 등등 필요한 조치들을 하나하나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다행히 활력징후 (vital sign)가 회복되더라고요
그때 '아 나는 내과 의사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느꼈던, 뭐라 말과 글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다시 또 느끼고 싶어요.
Q. 우수한 인턴이란 어떤 인턴인 것 같나요?
Int. S : 빠르고 정확한 인턴이요.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죠.
급한 상황에서는 술기이든 동의서이든 금방금방 처리가 되어야만 하거든요.
인턴을 하다 보면 감이 오겠지만, 일이 많을 때 급한 일인지 아닌지 빠르게 판단하고 순서대로 처리하는 것이 인턴 생활의 핵심이에요. 검사 결과가 바로 필요한 술기부터, 또 응급시술 및 수술에 필요한 술기부터 빠르게 처리하는 인턴이 우수한 인터이죠.
그리고 일을 할 때는 정확하게 해야 해요. 즉 사고를 치지 않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다 보니 순서를 지켜서 조심조심 하기때문에 사고 날 일이 거의 없지만, 술기가 익숙해지면 마음이 풀어지기 마련이에요. 이때를 경계해야 합니다. '대충 빨리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제일 위험할 때죠. 등산도 올라갈 때보다 산에서 내려갈 때 더 많이 다친다고 하잖아요.
일을 하면서 잘 안되면,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주위 동기들에게 물어보거나 전공의 선생님께 노티 드리는 것이 좋아요.
조금 우둔해 보일지라도 사고 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Q. 순환근무는 어땠나요?
Int. S : 장단점이 명확해요. 다양한 배경의 선생님들과 일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또 그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이 정말 많아요. 인턴 동기들뿐만 아니라 전공의 선생님들도 포함해서요.
전공의가 되어서도 타과에 연락하거나 부탁할 일이 많아요. 이런 순환근무 덕분에 타교생들도 다양한 과의 전공의 선생님들을 만나고 친분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하지만 계속 근무지가 바뀐다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점은 있죠.
전산 시스템은 같더라도 병원마다 분위기와 시스템도 많이 달라서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새로 적응을 해야 해요.
집도 6개월 단위로 구해야 하는 등 업무이외에도 신경 쓸 것들이 꽤 많더라고요.
다른 병원들에서 근무할 경우 겪지 않아도 될 불편한 점들을 마주한다는 점이 스트레스죠.
Q. 인턴을 마무리하는 지금,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Int. S : 인턴생활이여, 만나서 반가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입니다. 하하
비록 일을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병원도 결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있고, 병원에서도 우리내 인생에서 겪는 것처럼 기쁜 일 슬픈 일 행복한 일 불행한 일을 모두 겪고 또 지나 보내니까요.
인턴생활 1년을 버틴 저 스스로가 자랑스럽습니다. 인턴 시절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하지만요.
Q. 곧 인턴을 하게 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Int. S : 잘 버텨내기를 바라요.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분명 올 텐데 눈 딱 감고 넘기려고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매달 근무하는 과가 바뀌기 때문에 소속감을 느끼기 힘들고, 인턴은 늘 평가받는 위치다 보니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되더라고요.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화내지 않고 일단은 참아보세요. 휴게실에 가서 동기들에게 서러움을 토로하던지, 최대한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하던지 폭발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화를 삭이는 게 중요해요.
인턴 성적이 나올 때까지는 죽었다 생각하시고 최대한 잘 버티려고 노력해 보세요. 인턴 성적 나올 때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니에요. 9달만 눈 딱 감고 버티다 보면 어느새 인턴 성적이 나왔다는 공지를 보게 될 거예요.
그리고 인턴 생활을 하면서 각자 원하는 과가 생기실 텐데, 어플라이과를 돌면서 전공의 선생님들께서 어떻게 일을 하고 계신지 눈여겨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장 내년에 선생님들의 모습이 될 테니까요.
후배님들의 인턴생활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