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의 난동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인턴
바로 오늘 있었던 일이다.
치매 기저력이 있는 80대 여성 환자가 비위관(L-tube)을 Self-remove했다며 다시 삽입해달라는 콜이 왔다.
비위관(L-tube)의 self-remove
나도 환자도 고생해가며 비위관을 열심히 삽입했는데 그 모든 노력이 무색하게 환자가 손으로 비위관을 주-욱 빼어버렸던 것이다.
사실 인턴으로 근무하다 보면 비위관 Self-remove는 정말 수도 없이 마주치는 일이다.
인턴 입장에서 이렇게 무의미한 일도 없다. 필요에 의해서 여러 번 반복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돌발행동으로 똑같은 일을 계속해서 수도 없이 해야 하니까
나는 하루에 똑같은 환자에게 비위관을 6번까지 껴본 적이 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환자분들은 비위관을 왜 끼워야 하는지 설명드리면 이해한다. 이해를 했으니 삽관 과정도 수월하다. 비위관이 콧구멍, 비인두, 후인두를 넘어 식도로 넘어가는 그 타이밍에 정확히 꿀꺽 침을 삼켜주시는데, 일이 잘 풀리면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통 2-3번의 시도만에 삽관에 성공하고, 그 이후에도 목구멍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비록 불편하더라도 치료의 일환이겠거니 하고 잘 견뎌주신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거나 치매 또는 섬망이 있는경우에는 비위관 삽관의 난이도는 극악으로 치닫는다.
우선 환자분들에게 왜 비위관을 넣어야 하는지 설명을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를 거부한다.
왼쪽 귀로 들어온 나의 말이 오른쪽 귀로 그대로 흘러나오는 게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옆에 계신 보호자분께 설명을 하고, 튜브 끝에 젤을 발라 콧구멍에 넣는다. 콧구멍에 무언가를 닿는 순간 환자는 온 힘을 다해 몸을 뒤틀고 머리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옆에 계신 보호자와, 환자분의 비명을 듣고 쏜살같이 달려온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머리를, 팔을, 다리를 꽉 잡고 발버둥 치는 몸을 어떻게든 붙잡아달라고 부탁드린 채 나는 환자의 콧구멍, 비인두, 구인두로 이어지는 길로 재빠르게 튜브를 넣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식도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환자분은 결코 꿀꺽 침을 삼켜주지 않는다.
식도로 넘어가지 않으면 대부분 입으로 나오는데 입으로 나온 튜브를 확인하고 다시 비위관을 밖으로 빼서 다시 넣어야 한다. 그런데 튜브가 나왔는지 어쨌는지 확인도 못하게 턱이 부서지도록 입을 꽉 다문다. 그러면 난 혹여나 이나 턱이 다칠까 봐 강제로 입을 벌릴 수도 없다.
그때면 우선 70cm 정도 넣어보고 비위관 특유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넣는다.
이때 갑자기 귀에 꽂히는 환자의 한마디
"이 개새끼야! 네가 뭔데 나한테 그래! 당장 놔 이 씨발새끼야!"
욕설을 한 바가지 퍼부은 환자는 그로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카아아악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 느낌이 쎄하다. 이거 분명 나한테 가래를 뱉으려고 하나보다
그 순간 비위관 삽입을 멈추고 손으로 가까스로 환자의 입을 막았다.
"이 좆같은새끼! 카아아아악 퉤"
내 오른손 묻는 침섞인 노란 가래. 잠시 멍하니 오른손을 바라보다가 다시 비위관을 넣기 시작했다.
가래 지옥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2초간에 모아지던 가래가 잘 안 모아지는지 카아아악이 5초, 6초 점차 늘어났다. 그렇게 한 열 번 정도 카악 퉤를 반복하더니 제풀에 지쳐 그만두었다.
1년간 길러온 인내심으로 끝없이 시도한 끝에 결국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는 뽑지 못하도록 신체 보호대를 철저히 채우고 비위관을 이마에 붙여놓았다.
이 사건을 겪으며 난 깜짝 놀랐다. 환자의 그런 행동에 놀란 게 아니라 이런 일을 당하고도 감정에 아무런 동요가 없는 나 자신에 놀랐다.
사실 인턴을 하며 이런 경험을 여러 번 겪어왔다.
중심중맥관이나 피그테일을 제거하다가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남도록 환자에게 꼬집힌 적도 있다.
중환자실에서 이성을 잃고 몸부림치던 환자의 심전도를 찍다가 "이거 풀어 이 개새끼야. 얼굴 다 봐뒀어. 내가 너 고소한다 이 새끼야!!!"라며 귀 터지도록 욕도 들었다.
응급실에서 소변줄을 끼다가 "이 돈만 처 밝히는 의사 새끼들, 아는 것도 하나 없는 이 돌팔이 새끼들이, 나보다 뭐 잘났다고 나한테 이래? 내가 집안이 조금만 좋았어도 너같은 새끼들은 나 쳐다도 못봤어!" 하는 일갈까지.
처음 이런 일들을 당할 때는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지금 내가 누구를 위해 이러고 있는데 나한테 욕을 하는 거지? 이렇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이 환자를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욕하지 마세요, 치료하려고 하는 거예요, 어디가 그렇게 불편하세요?"라고 달래보았으나 전혀 소용없었다. 그럴 때면 그저 한숨을 쉬며 탄산음료 한 잔으로 부글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도 점차 익숙해져갔다.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다.
'저분들도 자기가 욕하고 침을 뱉는 걸 모르고 있겠지. 안타까운 분들이야'라며 이해하려 한다.
1년간의 인턴생활은 나에게 일터에서 감정을 분리하는 법을 가르쳤다.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을 따로 떼어놓는 법을 말이다.
환자들에게 꼬집히고 욕먹고 침을 맞더라도 그런 억울함을 풀 시간도, 그럴 상황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감정을 삼키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다시 기분이 다시 나아지곤 한다.
사실 감정을 분리한다는 뜻은 어떻게 보면 그 상황을 해결하기를 포기한다는 것 일 수도 있다.
지금은 그저 상황을 포기하고, 수용하고, 내 할 일을 제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이런 일 하나하나에 힘을 쏟기엔 일이 너무 많고, 에너지 소모가 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