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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물젤리 Jul 22. 2023

눈물은 사랑의 증거?

여섯 살 미남이

미남이는 엄청 활동적인 녀석이다.

걷는 걸 좋아하고 자전거도 킥보드도 또래에 비해 꽤 수준급

이고   무엇보다 집 밖에서 노는 게 진심인 아이다.

지칠 만큼 열심히 놀고(실제로 지친 적은 없지만) 친구도 아주 좋아한다.

숫기가 있어 모르는 사람한테  먼저 다가가는 말 거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궁금한 것도 많으니 오지랖도 넓다.


이런 성향이라면 마음도 여물고  단단해 언제나 씩씩할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우리 미남이는 더욱 그렇지가 않다.


비 온 뒤  책길에 지렁이 새끼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궁금해하는 미남이에게 땅속이 젖어서 따뜻한 곳 찾아

나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순 엉터리 답을 했다.

여섯 살 왜 왜 환자에겐 백과사전도 못 당한다.

그리고 백과사전에도 없는 질문이 절반이다.

그래서 오늘 같이 순 엉터리 답을 하면서도 이 대답정도면 됐지, 이것도 어디냐 내 순발력이나 되니까,

로  오답에 대한 위로를 삼는다.


"불쌍해요"

시무룩하다.

"그러게"

두 눈을 꿈뻑꿈뻑하면서 마음보다 먼저 터진  눈물을 밀어 넣으려 애쓴다.

눈물을 감추고 싶어 하는 미남이 나한테 또 들켰다.


드라마를 보는데 엄마도 다음에 죽는 거냐고 물었다.

나이가 아주 많으면 누구나 죽는다고  했다.

금세 또 두 눈을 끔뻑거린다.

뱉어낸 말처럼 이미 맺힌 눈물도 다시 담을 곳이 없다.



녀석은 눈물  자판기다.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

엄마를 봐도 아빠를 봐도 이런 여린 감성은 아닌데 말이다.



이틀 전, 늦은 시간에 미남이 동영상이 한 개 도착했다.


가운데 재생 표시가 된 영상에는 얇은 여름 내복을 입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미남이가 보였다.

녀석이 보이자 비 젖은 낙엽처럼 아래로 처져있던 내 입꼬리가 순식간에 위쪽으로 방향을 튼다.


꾹, 재생을 눌렀다.


""미남아, 미남이는 엄마가 내일 자고 일어났는데 바퀴벌레가 되어 있으면 어떻게 할 거야?""

"왜?"

"아니, 만약에 그럼 어떡할 거냐고"

"그래도 엄마랑 같이 놀아야지"

"사람들이 바퀴벌레라고 엄마를 잡으려고 할 텐데?"

"엄마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어야지"

이미 울먹울먹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콧잔등이 빨개진다.

눈물을 들키기 싫어하는 미남이가 얼굴을 숙이고 엄마품으로 파고든다.


'어디서 이딴 걸 보고 와서 애를 울리고 난리냐'고 영상 끝나기 무섭게 다다다다 카톡을 보냈다.

'가뜩이나 마음 여린 애한테.....,'

한 줄 더 덧댄다.

<**을 하고 있네>도 적으려다 말 줄임표 안에 구겨 넣는다.



어제 오후,

미남이 목욕 중이었다.

이마에 캡을 씌우고 물질 문질 머리를 감기고 있었다.

거품 장난을 좋아하는 아이라 머리 감을 때 나는 거품을 쭉

짜내서 미남이에게 건네니 두 손바닥을 펴서 거품을 받는다.

후후 불면서 거품 장난을 하는 아이를 보다가 전날 봤던 바퀴벌레 영상이 생각났다.


갑자기 미남이 엄마와 묘한 경쟁심이 발동을 했다.

나도 적어도 그 정도의 반응을 기대해 본다.



"미남아, 할머니가 갑자기 뱀으로 변하면 미남이는 어떻게

할 거야?"

"당연히 할머니랑 놀아야죠"

불과 하루 전  이미 마딱트렸던  상황이라

전혀 긴장한 표정 없이 손바닥 비누질에만 눈길이 가 있다.


강펀치를 날렸다.

"엄마 아빠가 할머니가 뱀으로 변하면 무섭다고 미남이랑

못 놀게 하겠지?"


비누놀이로 문질거리던 손이 느려지는가 싶더니

내 허벅지에 얼굴을 대면서 두 팔로 꼭 껴안는다.

"어, 어, 비누 할머니 바지에 다 묻네"

아이를 밀쳐보니 눈이랑 콧잔등이 벌써 빨갛다.


눈물을 들킨 미남이는 울었냐고 묻는 나에게

눈을 힘껏  감았다 뜨더니

"아니요 안 울었어요" 굵은 침을 꿀꺽 삼킨다.


"그렇구나, 머리 감아서 그런 건데 할머니는 우리 미남이가

우는 줄 알았네"

모른 척해준다.

역시 우리 미남이 할머니 사랑은 찐찐찐찐 찐이야

빵빵한 풍선처럼 마음이 부풀었다.


"그래도 할머니뱀이랑 놀아준다고 해서 고마워"


"그런데 사람이 뱀으로는 절대로 바뀔수 없으니까

 우리 미남이 걱정 안해도 돼 "



퇴근해 온 미남이 엄마에게 뱀 이야기를 해주었다.

미남이가 눈이 벌겋도록 울먹거렸다고 잔뜩 거들먹 거리면서 말이다.


"이모, 그래서 좋았어?"

"말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니

애한테

아, 진짜 젠장 **할 짓을  했다.


늦은 밤

창문을 때리는 바람이 수상하다.

많은 비를 데려올것 같다.


내일 얼마전 새로 산 노란색 비옷을 챙겨 마중가야 겠다.


물에 젖은 미끄럼틀은 내려오는 속도가 몇 배나 빠르다.

"아아악~~~!!!!"

웃음으로  범벅이   녀석의 고함 소리가 벌써 귀를 찢는다.

창을 때리는  바람 소리도 잡아먹을 기세다.


함께 쓴 까만 우산 속에서

비는 왜 예쁜 소리가 나냐고 묻던 녀석이 보고 싶다.

날이 빨리 밝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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