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는 걸 인지하게 된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그러나 작년 오늘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나이 마흔 넘어 처음으로 가장 가까운 죽음을 맞이한 나는 시간이 멈춘 듯했고, 멈춰있는 시곗바늘을 어떻게 해서든 빨리 돌려버리고 싶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6개월만.
"엄마~ 시간이 딱 6개월만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장례식장에서 이틀째 되던 날 밤. 손님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텅 빈 조문실에 앉아 엄마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6개월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 내 눈물이 마를 시간.
장례를 치르는 내내 어디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숨어있다 나왔는지 모른다. 낮이든 밤이든, 손님이 있든 없든,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도, 혹은 혼자 멍하니 앉아 아빠의 영정사진을 보고 있다가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사흘 동안 끼니도 걸러가며 쉴 새 없이 울기만 해서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살 정도였다.
화장터에서 아빠를 뜨거운 불구덩이에 밀어 넣을 땐 가슴 찢어지는 아픔으로 통곡을 했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단 한순간도 앉지 못한 채 벽에 기대어 서서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우리 아빠 더운 거 싫어하는데. 내가 미쳤나 봐 아빠. 화장하지 말 걸. 할머니 곁으로 보내줄 걸. 내가 미쳤나 봐 아빠. 미안해~" 아빠의 죽음 앞에서 나는 대역죄인이었다.
아빠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그 사랑이 그리움이 된 건 결코 아니었다. 어떤 딸들은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 거라고 호언장담한다는데, 난 평생 아빠 같은 사람은 절대 안 만날 거라 다짐했다. 질릴 정도로 많이도 싸웠고, 죽을 만큼 미워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세상 누구보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모양새라니. 이제 와서 무슨 청승이냐며 스스로를 질타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워한 만큼 남는 게 후회뿐이어서 울어도 울어도 계속 눈물이 났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6개월을 넘기던 시점부터 내 눈물도 차츰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느덧 다시 10월 14일.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정확히 1년이 지났다.
며칠 전부터 피부에 닿는 가을바람에도, 코끝에 닿는 가을 냄새에도 자꾸만 울컥거린다. 출퇴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에 눈물이 흐르고, 아빠가 마지막까지 계시던 요양원 앞을 지날 때면 가슴이 요동친다. 손자 손녀 얼굴 한 번 보고 싶어 늘 앉아계시던 아파트 단지 벤치를 보고 있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밀고 올라온다.
이유 있는 울컥거림을 들킬까 두려워 '나 가을 타나 봐.' 했더니 남편은 "나이 먹으니 감수성만 늘어서는..."이라며 가볍게 웃어넘겼다. 애써 위로하지 않는 덤덤한 반응이 오히려 고마웠다. 그 순간 위로의 말을 한마디라도 건넸다면 분명 난 이때다 하고 1년 묵은 눈물샘을 빵 터뜨려버렸을 테니까.
애들 유치원 행사 때, 학교 졸업식 때 행여 오실까 봐 도둑처럼 몰래 다녀오는 길에 기다리고 계시던 아빠를 덜컥 만나 사진 한 장 대충 박은 일. 손자 손녀 준다고 하루 걸러 양 손 가득 과일박스 들고 현관 앞까지 오신 아빠, 문만 빼꼼 열고 과일만 받아 들고 들어온 일. 병원에 계실 때 그렇게도 집에 가고 싶어 하셨는데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느라 집에 한 번을 못 모시고 온 일. 그렇게 할 수 있었는데도 안 했던 일들이 여전히 미련과 후회로 남아 온 신경을 괴롭히고 있다. 조금만 덜 미워할 걸. 그렇게 외롭게 두지 말 걸.
10월의 가을 곳곳에 아빠가 묻어있다. 아빠는 왜 하필 이 아름다운 계절에 떠나서 마음을 더 아프게 할까. 이 순간에도 그리움이 원망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