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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Dec 22. 2023

제11회 브런치 공모전 당선 작품을 보며

#1

브런치 공모전 탈락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 더 아쉬울 건 없었다. 다만, 어떤 의문이 하나 들긴 했다.


'나 어쩌면 열심히 헛물켜고 있는 거 아닌가?'


그건 몇몇 당선작과 출판사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당선작 선정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이의제기는 아니다. 당선 작품들은 정말 책으로 출판하고 싶겠다 싶은 글들이었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 듯 모를 듯하니 내가 아직 안 되는 것이리라.


내 실력과 별개로 '헛물켜고 있다' 생각이 드는 이유를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기분은 나쁘지 않다. 어떤 방향을 찾는 분석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다.


#2

11회 브런치 공모전에서 '작은 스타트업 마케팅 팀장 이야기'를 선정한 한빛미디어라는 출판사를 보자. 이 출판사는 10회 브런치 공모전에도 참여했는데, 당시 '새로운 시대의 디자인'이라는 작품을 선정했다. 한빛미디어는 왜 이 두 작품이 마음에 들었을까? 해당 출판사는 어떤 곳인지 홈페이지의 브랜드 소개를 보자.


"한빛미디어(주)는 ‘책으로 여는 IT'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IT 세상의 주역은 ‘우리’ 입니다. 한빛미디어(주)는 IT 세상의 주역들을 위한 프로그래밍, 컴퓨터공학, IT 에세이, Make, 리얼타임(전자책), OA, 그래픽, 나와 내 아이를 위한 실용 등 다양한 분야의 책으로 IT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에 예시를 들었다. 'IT 전문서'와 'IT 활용서'라고.


한빛미디어가 10회 브런치북 공모전에서 출판해야겠다고 선정한 '새로운 시대의 디자인'은 여러 디자인 중 UX 디자인 등을 다루었다. 출판사는 11회 공모전에서 '작은 스타트업 마케팅 팀장 이야기'를 선정했는데, SNS 광고 마케팅 관련 내용을 다룬 브런치북이었다. 뭔가 한빛미디어의 색깔과 크게 어긋나는 주제는 아닌 느낌이다.


따라서 '임신, 육아, 결혼, 살림, 이혼 등'의 이야기로 공모전을 응모하면 적어도 한빛미디어는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나의 병원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이미 10개의 자리 중 하나는 없이 시작하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이건 '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가 한빛미디어에 뽑히고 싶다면 아마 요즘 의료계에서 핫하다는 Medical AI를 주제로 도전하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주제를 출판사에 맞춘다고 된다는 보장은 없다. 브런치 공모전 결과 공지글을 보자. 브런치는 11회 공모전의 키워드로 AI와 ChatGPT를 말했다. 그만큼 IT 관련 브런치북이 매우 많았다는 것이다. 한빛미디어가 '기타 주제'를 다 쳐냈을 거라고 해도 작품 선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3

11회 공모전 당선작인 '시골 여자 축구'를 봤을 때 딱 들었던 생각은 9회 공모전 당선작인 '여자야구 입문기'였다. 당연히 같은 출판사일 거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자 + 스포츠 (특히 아직 남자가 major라고 여겨지는 종목) + 아마추어' 조합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찾아보니 출판사는 달랐다. 출판사는 9회 공모전부터 꾸준히 참여 중인 흐름출판. 얼핏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선택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다양한 주제의 책을 출판하는 곳이다. 대체로 힐링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듯하다.


나도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가끔 느끼나, 그걸 글에 잘 담는 건 역시 어렵다(내 MBTI 성향에도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아마 흐름출판은 날 뽑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4

한빛미디어가 특정 주제 선호 성향이 강해서 눈에 띄었을 뿐, 다른 출판사는 사실 잘 모르겠다. 흐름출판이나 창비처럼 뭔가 출판사가 좋아하는 주제가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내가 그걸 못 맞춰서 선택을 못 받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니 출판사가 성향이 있는 게 새삼 이상한 차별도 아닌 듯하다. 다들 이미 그걸 알고 어딘가 날 좋아해 줄 출판사가 있길 바라면서 공모전에 응모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만 그걸 아직 몰라 '브런치는 자리가 10개 있다고 하지만, 실은 10개가 아닌 것 같아'라고 너무 당연한 얘기를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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