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고 있는 배에서 가만히 있는 게 더 이상한 것
'또'라고 할 수 있겠는데, 29일은 보건의료 노동자가 총파업을 예고했다. 주로 간호사가 주축이 되고 민주노총이 뒷배가 되어주는 파업이다.
표면상으론 현 의정 갈등 때문에 파업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어 언론사는 간호사'도' 파업한다고 말하고 있다. 간호사도 이미지 손상을 우려해서인지 "우리 파업은 의새들이 하는 '불법' 파업과는 다릅니다"라고 여러 커뮤에서 말하고 있던데, 여러모로 씁쓸한 기분이 든다. 어차피 망해가는 의료계에서 펼쳐지는 개싸움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① 간호사: 우리는 불법 파업이 아닙니다.
맞다. 간호사에겐 파업권이 있기 때문이다. 즉 부당한 처우에 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마저 없는 게 의사이다.
그러나 현 의정 갈등 상황을 의사의 불법 '파업'으로 보는 건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 한 것이다. 전공의는 '파업'이 아니라 '퇴사'한 거다.
간호사는 '합법적'으로 월급은 다 챙기면서 파업한다. 즉, 직장 자체는 그만두고 싶지 않고 실리는 더 챙기고 싶은 것이다. 전공의는 의사를 파업한 게 아니라 대학병원에서 퇴사한 거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이유를 잃어버린 건데, 퇴사해서 장롱 면허가 된 간호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젊은 간호사가 대학병원을 나오는 건 너무 힘들거나, 기분이 엿같아서이지, 좋은 이유로 나오는 경우는 잘 없다. 따라서 우린 시스템을 욕하지, 퇴사한 간호사를 욕하진 않는다. 그런데 우습게도 퇴사한 전공의는 무슨 동네 똥개처럼 너도나도 한 번씩 발길질하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그러면서 얼른 복귀하라는 모순... 내가 볼 땐 이미 시기를 놓쳐버린 것 같다.
② 간호사: 우리는 환자를 위해 파업하지, 의새처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파업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6.4%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다. 8월 27일 간호법을 얻은 것도 엄청난 이득인데, 이건 본격적으로 파업하지도 않고 냠냠했다. '파업권'이라는 권리부터가 엄청난 힘이고 오늘날에 와선 일부 노조의 기득권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은 사실상 연례행사다. 내가 대학병원에 근무하면서 봐도 거의 해마다 하곤 해서 이젠 무슨 축제 같은 느낌이던데, 주된 이유는 연봉협상과 정치적 이슈 (민주노총) 때문이다. '합법'으로 파업하는 것이 '옳음'과 동의어는 아닐 것이다.
③ 간호사: 의사들은 엄청난 연봉을 받고도 불법 파업하는데, 우린 아닙니다.
요즘은 좀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근무했던 병원은 동일 연차라면 전공의나 간호사나 월급이 비슷했다. 장기 근속하는 간호사면 전공의보다 훨씬 월급이 더 많다는 것이다. 물론 전공의는 인턴 포함 겨우(?) 5년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래서 돈 많이 번다더라 하는 전문의가 파업했냐는 거다. 당장 나부터도 (젊은 의사는 욕할지 모르겠으나) 파업이고 나발이고 평소처럼 일하고 있다. 애당초 의사는 파업할 수 없게 판이 짜여있는데, 이젠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부분부터 무너지고 있는 현상일 뿐이다. 즉, 각자도생이 심화하고 있다.
새벽에 산모 분만을 받고 피곤한데 잠은 안 와서 주절주절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