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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Sep 06. 2021

대학병원은 지금 파업 중

우리 편(?)이 파업하니 신기할 정도로 잠잠한 여론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 일부이긴 하지만 지금 대학병원이 파업 중이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보건의료노조 파업이에요. 대략 돌아가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요약하자면 병원에 의사밖에 없는 겁니다. 병원에 의사가 없어도 돌아가지 않지만, 의사밖에 없어도 마찬가지로 운영이 되지 않겠지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보건의료노조 파업을 보며 느낀 점을 정리해봅니다. 현장에 안 계시면 이게 어떤 느낌일지 잘 공감이 안 가실 것 같지만 최대한 잘 써볼게요.




우선 여러분은 혹시 9월 2일부터 보건의료노조가 파업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보건의료노조는 말하자면 "의사를 제외한" 모든 병원 근로자 (단! 정규직...)들의 노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에 소속된 조직이에요. 의사는 파업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이 분들은 그동안 여러 번의 파업을 하셨어요.


저는 파업 자체는 찬성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모든 병원 근로자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즉 "참을 만큼 참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명분'이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번 파업은 작년 '의사 파업'과 비교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요.


자 우선 노-정 협상은 합의되었다네요? 사실 알고 보면 서로 잇속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라고 해도 어쨌든 '총파업 철회'라고 했어요.

극적인 협상 타결로 모두가 한숨을 돌리고 코로나19 유행 속 의료 공백 위기를 피하게 됐다.


아니 그럼 지금 파업 중인 병원은 뭔가요? 무슨 일인가요...


아...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전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보건의료노조와 한 몸이 되어 일단 정부와 협상의 이득은 취해 놓고선 떨어져 나와서 '보건의료노조의 책임이 아닌' 개별 행동으로 파업은 파업대로 계속하겠다는 건가요?


이건 마치 지난 의사 파업 때 정부와 의협이 (비록 서로 불만이었을진 몰라도) 합의를 했는데도 전공의라든지 일부 의사들이 '개별 파업'하겠다고 하는 거랑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의사 파업 때 이랬음 의사협회가 불탔을 텐데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합니다.


전 이게 정말 신기했어요. 어쩜 이렇게 조용하죠? 왜냐면 환자들은 "또" 입원을 못 하고 있거든요.


지난 의사 파업 시 의사들이 너무 순진했다고 생각했던 점은 '실제 진료는 볼 수 있게 하면 사람들이 이해해주겠지' 였던 것 같아요. 언론에선 무슨 병원 문이 닫혀서 진료를 못 보고 사람들이 다 죽을 것처럼 공포를 조장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외래엔 환자분들이 와서 진료를 보고 있었죠. 환자들은 '의사가 파업한다고 해서 진료가 안 되는 줄 알았더니 아니네?'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리곤 나가면서 로비에서 피켓을 들고 있던 전공의 선생님에게 욕을 하면서 침을 뱉었죠. 네... 실제 있었던 일이에요. 그분이 실제로 진료를 못 보고 손해를 본 건 없었는데도 말이에요. 전 그걸 보며 '세상이 참 무섭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더구나 응급실, 수술실은 진료 인력을 최소한으로 남겨놓았기 때문에 정말 급한 환자들이 길거리에서 죽는 일은 없었어요. 왜냐고요? 응급 후송 시스템이 그럴 수가 없거든요. 병원은 항상 열려 있었고, 의사들도 응급 수술을 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서 그런 일이 있었다 카던 걸 봤는데?'라고 알고 계시다면 이 글을 보세요.


(※ 글쓴이의 정치 성향이 불편하실 수 있으니 내용만 보세요. 실제 환자도 아닌 사람들, 의료인도 아닌 사람들이 특정 목적만 가지고 싸구려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이걸로도 선동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정치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에요.)


다만 환자들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본 것은 진료의 '지연'이었어요. 상대적으로 급하 않은 입원과 수술들이 연기가 되었죠. 그럼에도 환자분들의 불만은 폭발했어요. 특히 암환자 같은 경우는 최대한 배려해서 지연되지 않게 해드린다고 해도 그랬지요. 환자분의 입장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여론의 질타는 많이 받았어요. 저도 국민의 뜻이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요. 불편함을 초래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요. 그땐 여론이 순수한 국민의 목소리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지금은 간호사와 의료기사 선생님이 없어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수술실은 운영이 안 되어서 응급 수술 빼곤 못 한다고 하고,

병동엔 간호사가 전부 나갔고,

따라서 일부 남은 간호사만으론 환자들을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입원을 줄여야 한다고 해요.

그리고 이로 인해

이미 수술을 받은 환자는 예정 퇴원일보다 일찍 퇴원해야 했고,

원래 입원 예정이었던 환자들마저 입원이 갑자기 취소되었어요.


환자분들도 뉴스를 보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노-정 합의 타결되었다던데요!? 그런데 왜 입원이 안 돼요?"


"그러게요... 의사는 있는데, 다른 분들이 아직 파업 중이라... 죄송합니다."




그런데 진짜 소름 돋는 건 뭔지 아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환자가 치료를 못 받아서 죽었다네 하는 도시전설이 하나도 없고, 언론이 진짜 조용하다는 거예요. 이건 민주노총마저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노조가 파업을 예고하자 지난달 28일 일제히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과거 같으면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한다고 난리 쳤을 텐데, 이번엔 좀 양상이 다르다.

(중략. 대략 이번 우리 파업엔 언론이 조용했다는 내용)

언론이 보건의료노조가 파업을 내걸었는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에게 당장 필요한 게 뭔지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민주노총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라고 하다니... 이 부분은 일단 넘어가도록 하고요. 의사 파업 때 민주노총의 입장은 음... 예상되는 반응이었죠.


이게 의사가 노조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의사가 노조가 있었다면 (= 민주노총 소속이었다면) 파업이 정당화되고 각종 비난도 안 나왔을지도 몰라요. 그것이 실소가 나오는 포인트지요. 소름 돋는 일이기도 하고요.


한 때 의사들이 파업한다고 '국민'들이 만들었다는 '보이콧 호스피탈'이라는 사이트가 있었습니다.

파업에 참가했던 병원이랑 의사 이름을 공유하며 조리돌림 하던 사이트인데요... 사실 주요 병원들이 다 포함이 되어서 안 가진 못 했을 겁니다.


전 이번 파업도 환자들이 겪는 불편은 비슷하기 때문에 당연히 병원 이름이 올라올 줄 알았는데요. 음 사이트가 접속이 안 되는군요. 이 사이트를 만든 개발자 또한 '사람'이고 어떤 정치 성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의사가 욕을 먹고 말고를 떠나서 그냥... 모두가 이리와 승냥이이고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잡아 먹힌다는 것이 씁쓸할 뿐이에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그저... (가능한) 중립국.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중립국."

- 최인훈의 소설 광장 중




한편 의사 파업은 생각해볼거리가 많아요. 의사 욕부터 먼저 뱉기 전에요. 핵심은 '의사는 노동자인가?'예요.


아니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의사도 일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게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던 겁니다.

의사 파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런 여론몰이가 필자는 무척 못마땅하다. 무엇보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처절했던 순간들이 여지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80년대, 90년대에 지하철과 철도노동자의 파업은 ‘시민을 볼모로 이익을’ 추구하므로 불법이었다. 병원노동자는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한다고 해서 그때도 비난받았고 노동자는 감옥에 가야 했다. 많은 공공부문 사업장의 파업은 필수공익사업으로 분류돼 최근까지도 불법이었다. 또 조선과 자동차 등 민간 제조업 노동자의 파업은 ‘국가경쟁력을 좀먹고 경제 위기를 불러온다’는 이유로 불법이었고, 조종사 파업은 ‘고임금이므로 불법’이어야 했다. 물론 공무원·교원의 파업도 ‘국가의 안위와 백년대계 교육’을 책임지는 공적 임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불법이었다. 수백, 수천 명이 감옥에 갔다. 그보다 수십 배나 많은 이들이 이런 여론 앞에서 해고됐음은 물론이다. 상당수의 노동자는 그 때문에 희생됐다.


이번 사태의 성격 규정과 관련, 의사협회는 '총파업'이라고 밝혔지만 정부는 '집단 휴진'으로 규정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6일 정부 대응 기조를 밝히는 브리핑에서 '파업'이라는 용어를 일체 쓰지 않고 '의사단체의 집단휴진'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브리핑에서 "개원의를 포함한 의료기관의 집단휴진을 계획·추진한 의사협회를 카르텔 등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신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사업자단체는 해당 단체 소속 각 사업자의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할 수 없게 돼 있는데 의협이 1·2차 집단휴진을 결정하고 이를 시행한 것은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부당한 제한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의사협회를 노조가 아닌 일종의 이익단체로 간주하는 인식하에, 이번 사안에 노동조합법이 아니라 독점금지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적용한 것이다.

의사협회 김대하 대변인은 이번 집단휴진을 '총파업'으로 표현한 배경과 관련한 연합뉴스의 질의에 "우리도 이번 파업이 노동법에서 말하는 파업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의사 직역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노동자인 의사들이 사실상 파업이라고 집단행동을 통해 정당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라고 평가해주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언뜻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노동자'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조'가 있는 사람만이 '노동자'였던 것이죠.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처절하게 싸워왔고, 민주노총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에 비하면 의사는 제대로 싸워본 적도 없는 셈이죠. 의사는 지금의 권리(?)를 "쟁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킬 힘도 없었던 거예요. 이 부분도 '왜?'라고 파고들면 굉장히 재미있어요.


언제 또 다룰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하게 살펴보면 서양 의학은 근대의학과 근대적 의사 집단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스스로 입증했다고 해요. 영국과 미국의 의사들은 '자발적 결사체'로 한국 의사랑은 차원이 달라요. 그게 환자들에게 꼭 좋은 건 아닐지라도요.


반면 한국은 갑자기 서양 의학이 '도입'된 거죠. 따라서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한의사를 '도입' (1951년)하고, 약사를 키우고 (1960년대) 해도 의사는 자신들의 지위를 지킬 내실이 없었습니다. 이후 의사도 전문의제도 도입 (1960년) 등 여러모로 성장하긴 하였으나 힘은 계속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건 의사가 당연히 힘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그동안 선배 의사들이 멋도 모르고 과분하게 (나도 모르는) 꿀을 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와서 후배 의사가 주체적인 권리를 주장하려니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뿐입니다.


그러나 싸움에 몇 번 졌다고 무기력하게 있기엔 앞으로도 싸울 일이 산적해 있습니다. 권력을 '쟁취'한 그들은 이제 새로운 갑이 되어 지속적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여기엔 누가 정의라는 건 없는 겁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의사 집단을 옹호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똑같은 피해를 입히는데 누구는 욕을 대차게 먹고, 누구는 파업하는지도 모르게 조용한 걸 보며 세상이 참 무섭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여론'이라는 게 정말 국민의 목소리인지, 특정 집단의 목소리인지도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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