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의사를 대체할 거로 보는 분위기 속에서
"AI가 의사를 대체한다. 곧 대체할 거다. 대체 했으면 좋겠다."
등 말은 엄청 많고 먼 미래에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당장은 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기술의 발전은 늘 상상 초월이지만 말이다.
사실 의료 개혁으로 혼란한 틈을 타 '한국형 AI 의사'가 등장했었다. 다만,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금방 사라져 아마 모르는 의사도 많을 것 같다. 어쨌든 AI로 의사 진료를 대체하겠다는 아이디어가 벌써 현실화하여 나왔다는 게 꽤 충격적이어서 얼른 시험해 봤는데, 소감은 다소 애매했다.
#1 이게 꼭 AI가 필요했던 걸까?
'최초'라는 타이틀이 그렇듯 완벽할 순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AI하곤 좀 거리가 있었다.
우선 증상을 물어보는 첫 번째 질문은 개방형이기 때문에, 자연어로 된 대답을 잘 인지하고 '무슨 과' 문제일 거로 연결하는 부분은 꽤 '인공지능'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이후부턴 AI가 폐쇄형 질문으로 계속 물어보기 때문에 스무고개 식으로 범위를 좁혀나가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의학 교과서엔 질환을 유추해 나가는 알고리즘이 있기 때문에 사실 이를 그대로 따르면 될 문제이다. 예를 들면
환자: 배가 아파요
↓
AI: 얼마나 아파요?
↓
환자: 많이 아파요
↓
AI: 어디가 아파요?
↓
환자: 오른쪽 아래요
↓
AI: 당신은 급성 충수염일 가능성 70%, 요로결석일 가능성 20%, 급성 위장염일 가능성이 10%입니다
같은 식인데, 이 정도는 의대생도 읊을 수 있는 수준이라 큰 의미가 있나 싶었다. 다만 포장이 그럴싸하게 잘 되어 있었을 뿐.
#2 여러 법적인 문제점들
① 여러 의원의 진료 사례를 무단 수집하여 학습함
해당 AI는 의원급 환자를 보는 의사의 사고 흐름을 흉내 내기 위해 진료 차트를 학습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그건 환자의 개인 정보이자 의원의 자료 아닌가. 그게 어떻게 아무런 법적 문제 없이 (심지어 보건복지부의 지원도 받은 모양이다) 유출되어 학습에 사용될 수 있었지? 사실이면 매우 큰 문제고, 거짓말이면 몇천 사례를 학습시켰다는 홍보는 사기이다. 어느 쪽이든 참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난 진료 사례를 학습시켰다는 홍보가 사기라고 예상한다. 왜냐하면 병원에서 차트를 복사해 보면 알 텐데, 의사 차트엔 뭘 학습 시킬만한 양질의 정보가 잘 기록되어 있지 않다. 글씨도 너무 못 써서 알아볼 수 있다면 다행인 정도라...
② '면허 대여'라는 위법 소지
AI 의사는 진단 뿐 아니라 약 처방도 해줬다. 이건 진짜 처방전들로 학습한 거겠지. 그러나, 아무리 그래봤자 의료법상 약 처방은 의사에게 받아야 한다. 그래서 AI 의사는 이후 단계에서 특정 의원을 연결해 줬다. 언뜻 보기엔 요즘 유행하는 원격진료 플랫폼과 유사한 것 같지만, 해석에 따라선 위법의 여지가 있다.
일단 결국 의사에게 다시 진료를 받는다면 AI 의사의 역할은 사실 플랫폼의 미끼밖에 안 되는 것이고, 그건 그거대로 참 껍데기 같은 느낌이다.
한편, 정말 그 의사가 AI 의사가 하라는 대로 처방한다면 그건 전문가로서 자존심도 없는 것뿐만 아니라 의료법상 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플랫폼에선 결국 의사 면허 쪼가리만 필요한 셈인데, 그걸 의료법은 '면허 대여'라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의사면허 취소사유다!
③ 특정 제약사의 의약품 몰아주기
따라서 사실상 그 AI 의사 플랫폼은 연결된 의원의 의사 선생님이 만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추정되는데, 그럼 또 하나 문제가 더 발생한다.
AI 의사가 추천하는 약 종류가 한정되어 있고 환자는 이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AI 의사는 학습(?)된 대로 꽤 구체적으로 약을 처방해 주는데, 안정성 여부를 떠나 특정 약 몰아주기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의사 선생님마다 익숙하고 선호하는 약이 있기 마련이지만, AI 의사는 이걸 전국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이라 심히 우려스럽다.
④ 특정 약을 처방받을 수 있도록 AI 의사를 유도하기
설마 마약류 의약품이 이렇게 허술하게 뚫리지 않겠지만, 특정 약을 오남용하고자 마음먹으면 AI 의사를 쉽게 속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원격의료의 큰 우려 사항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건 어쨌든 의사가 면허증을 들고 아슬아슬하게 방어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원격의료조차 '꿀팁'이라며 각종 이상한 술수가 공유되고 있어 골치 아픈데, AI 의사는 인간의 악의를 어떻게 감당하려나 걱정된다.
#3 정보가 넘쳐난다는 건 사실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일단 '한국 최초의 AI 의사'는 서비스 종료되었다...고 알고 있다. 위의 단점을 개선해서 다음 버전의 AI 의사가 또 나올지도 모르지. 어쨌든 비슷한 시도는 계속 나올 것이다.
근데 요즘 의료 개혁으로 박살 난 의료계를 보니 AI고 자시고 간에 뭐가 진실인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게 매우 큰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혼란한 틈을 타 한의사들은 자신도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자처한다. 약을 열심히 부정하고 한약 먹으라 하더니 갑자기 의사가 되겠다면 뭘 처방하겠다는 건가? 이들이 만든 블로그며 유튜브가 넘쳐난다. 어디 한의사만 문제인가? 이상한 의사도 너무 많으며 그들이 생산하는 유튜브도 이에 못지않게 많다. 거기에 약사도 약의 전문가라며 한마디씩 거들고 있으며, 간호사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게다가 취미로 의학을 공부한다는 일반인도 넘쳐나니 바야흐로 각종 사이비 이론의 춘추전국시대이다. 여기에 AI까지 가세하겠다는 건데, 도대체 뭘 믿을 수 있겠냐는 거다.
따라서 난 결국 돌고 돌고 돌아 바이탈 전문의의 가치가 다시 인정받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집단 전체가 망해버려서 상대적으로 인정받게 되든). 오랜 세월 생명에 직결되는 일을 하면서도 돌아오는 건 '어떻게 하면 더 싼 값에 이용할 수 있을까'라는 취급만 당해왔던 이들이다. 안 그래도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었지만, 이번 사태로 그 명맥조차 끊겨 앞으로는 정말 돈과 인맥 없으면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도 없어 헛돈 쓰다 죽겠구나라는 두려움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