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고양이는 살찌고

by 배준현

볕 잘 드는 오후, 습도도 적당하고 온도도 알맞고 고양이는 잘 자고 나도 편안하고. 그런데 하고자 했던 일에 진척이 없다. 오늘까지는 마무리해야 하는데. 갑자기 출출하다. 플레인 요거트에 귤을 몽창 까넣는다. 꿀도 한 숟가락 넣는다. 달다. 짠 게 당긴다. 스낵류 한 봉지를 까먹는다. 매콤한 게 당긴다. 가장 칼로리가 낮은 매운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곧 저녁 시간. 그래도 끼니는 챙겨야 하기에 배는 부르지만 밥 한 공기를 이어 먹는다. 후식은 뭐가 있을까? 아이스크림, 견과류, 과일. 고민하다가 더 먹는 건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일단 접는다. 어두운 밤. 평소 마시지 않던 막걸리 한 병을 연다. 이것저것 해서 두어 잔 마신다. 애초 한 병은 내게 너무 많다. 배 부른데 산책이나 한 번? 온도를 확인한다. 영하다. 그럼 집에서 잠깐 서 있는 것으로 대체. 고양이가 칭얼댄다. 좋아하는 간식을 주고 야식도 준다. 나도 자고 고양이도 잔다. 하루 끝. 너무나 평온한 하루지만 생산성은 가히 제로 수준이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이 평온함은 내 삶의 릴랙스를 가져오지만 자극과 채근의 효과는 거의 없다. 그래서 나태해지려면 한없이 나태해질 수 있다. 장소를 옮겨야 하나? 공간이 바뀌면 사람도 달라진다는데. 슈필라움의 힘을 믿어봐야 하나? 영역 동물인 고양이와 함께 살다 보니 나도 어째 닮아가는 것 같다. 점점 더.


겨울철. 안 그래도 움직임이 덜한데 요 며칠은 더 했다. 낮에도 영하다. 일상 활동 외에는 이렇다 할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날씨 핑계로 셀프 설득은 매우 쉽다. 그래서 좀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집을 나선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쇼핑몰로 향한다. 지하상가를 거쳐 따뜻한 몰 한 바퀴 돌면 그래도 어느 정도 운동효과가 있겠지. 허접한 복장으로 쇼핑몰에 간다. 부와 명예. 둘 다 이룬 건 없지만, 아니 둘 다 이룰 수는 없지만, 아니 아니 둘 다 못 이뤄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편안한 복장으로 몰에 갈 때면 가끔 내가 부유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착각을 한다. 유치한 생각이지만 한껏 꾸민 사람들이 몰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자유로운 내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특히 명품샵 앞에 줄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내 집처럼 드나드는 내 모습에서 공간에 대한 익숙한 태도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기서 많은 걸 소비하지 않는다. 소소하게만 가끔 뭘 산다. 자주 방문해서 그런지 익숙함과 편안함은 있지만 역으로 쇼핑의 설렘이나 기대, 자잘한 흥분 같은 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도파민 분출이 낮은 것이다. 그래서 지출 금액도 적다. 반면 집 앞 보다 규모도 작고 입점 브랜드도 훨씬 적은 아울렛이나 몰에 가면 내 지갑이 더 크게 더 자주 열린다. 그런 곳은 공간 자체가 낯설고 재미있기 때문에 호기심을 앞세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 매장이나 마트에서 배열과 진열에 더 큰 신경을 쓰는 것 같다. 특히 SPA 브랜드들.) 어쨌든 쇼핑몰에 대한 나의 공간적 경험이 내 쇼핑의 행태를 좌우한다. 그래서 여행 가면 그 고유의 낯섦이 주는 각성 때문에 사람들이 재지 않고 이것저것 뭘 사나 싶기도 하다. 환경과 장소의 중요성을 다시 또 깨닫는다.


공간이 곧 그 사람이라고도 한다. 당연한 말이다. 안전 욕구가 강한 사람은 커튼과 창문, 잠금장치에 신경을 쓰고,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은 실내외 장식에 돈을 쓴다. 그래서 단단한 현관과 창문, 최첨단 도어록과 원격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울리지도 않은 추상화를 집안 곳곳에 걸어두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그들의 내밀한 무의식을 반영한다. 특히 연예인들의 집에 전시돼 있는 피겨, 그림, 각종 디자이너 가구를 볼 때면 그 사람의 취향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전혀 매칭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의 욕구가 반영된 인테리어가 아니라 마치 인테리어를 위한 인테리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집은 꼭 주인 없는 집 같다. 자기 집을 갤러리로 꾸미고 싶다는 말은 이해하지만 큐레이션 없는 전시회 같아서 정돈이 안 된 느낌이다. 아무튼. 요즘은 행여라도 고흐나 피카소 같은 전설적 화가의 그림을 걸기라도 한다면 촌스러움의 레전드를 찍는다. (마티스의 드로잉은 미니멀리즘 열풍으로 인기가 꾸준하다.) 심지어 마크 로스코의 그림도 클리셰처럼 취급된다. 적어도 로낭 부홀렉 정도는 걸어둬야 세련됐다나 뭐라나. 이해도 가지만 자기 집에서까지 사회적 시선을 배치한 사람들을 볼 때면 휴식은 어디서 취하나 싶다. (이런 공간은 손님이 없으면 쓸쓸하다.) 취향보다 평가를 우선시하는 실내 공간은 모던한 맛은 있지만 편안함은 덜하다. 보이지 않는 타자들의 눈이 CCTV처럼 사방에 배치돼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숨을 공간이 없다. 흔히 말하는 아늑한 공간(Querencia)의 맛이 떨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집을 제3의 피부라고도 한다. 내 피부, 옷 그리고 집이 마지막 피부라는 것이다. 이 피부는 외부의 환경과 날씨, 온도, 습도를 방어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밖에서 지친 나를 보호해 주고 리프레시해 주는 역할도 함께 맡고 있다. 마치 나를 감싸주는 보드라운 천처럼. 그래서 안전과 인정, 두 욕구 모두 중요하지만 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정'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심신 모두의 안정,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아니 고양이도.


나는 여전히 내 공간에 정박 중이지만 주변에 이동수가 생겼다. 진이 이사 간다. 같은 건물 20층에서 24층으로 옮긴다. 크기도 같고, 구조도 같지만 월세는 오른다. 고작 4층 올라간다고 집세가 오르는 건가? 부동산 업자들이 집주인들에게 건물 내 가장 높은 월세를 알려주면서 모두 합심하듯 올린 것 같다. (이럴 땐 손발이 척척 맞다.) 보증금과 월세가 커지면 중개수수료도 늘어나니까. "수수료 장사는 부가가치 창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니까." 내가 말한다. 대충 보니 큰 짐은 대략 정리했고, 자잘한 것들만 옮기면 되겠다. 인정은 밖에서 충분히 받고 사는 진에게 집은 휴식과 편안함 즉, 안정이 제1 과제일 것이다. 그래서 조명도 모두 아늑한 전구색이고, 매트리스도 충분히 폭신하다. 다만 대로 앞이라 그런지 좀 시끄럽다. 새로 갈 곳에는 흡음률 좋은 커튼과 촉감 좋은 이불이 필요해 보인다. "이불은 내가 사줄게." 이사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달력을 본다. 손 없는 날들이 잔뜩 표시돼 있다. 시답잖은 농담과 재채기는 때를 놓쳐선 안된다는 생각에 얼른 한 마디 한다. "손 있는 날에 해야 더 쉽게 옮기지 않나?" 수준 낮은 농담에 진도 반응한다. "걔네는 손이 없어." 손 없는 날이지만 다른 손님은 많다. 이것저것 정산하고 계산하는 사람들이 끝없이 방문한다. 자잘하게 요구하는 추가금이 생각보다 많다. (다들 남의 돈은 참 쉽다.) 어쨌든 같은 건물, 같은 공간이지만 진에게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구조는 같아도 배열과 진열의 재배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커튼도, 가구도, 가전도 변화를 주면 익숙해서 다소 지루했을 공간이 다채로운 장소가 될 수 있다. 내 공간은 아직 크게 변화가 없다. 고양이 위주로 세팅된 공간에 원하는 식물도 제대로 키울 수 없다. 그 작고 소중했던 올리브 화분을 우걱우걱 먹어치우는 걸 보면 식물은 이제 웬만해서는 들일 엄두도 안 난다. 이런저런 핑계로 나와 고양이 모두 점점 게을러진다. 활동량도 떨어진다. 식욕만 늘어간다. 하늘은 춥고 고양이는 살찌는 이 계절, 그래도 적잖은 공간 변화를 모색해야겠다. 따뜻한 나라로 여행이라도 가야 하나. 음.


하늘은 춥고 고양이는 살찌고: 천한묘비(天寒猫肥) 끝.



이전 20화참조 사회와 그 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