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사회와 그 적들

by 배준현

기다리던 터키 여행. 여러 사이트를 통해 기본 정보 검색하고 유튜브 여행 채널로 맛집 지도도 완성했다. 준비 끝. 터키식 육개장이라는 베이란과 천상의 맛이라는 카이막, 오작바시와 아이란, 고등어 케밥까지 모두 섭렵하기 위해 터키로 떠났다. 현지 도착. 뙤약볕이 피부를 쪼지만 날은 좋다. 하늘도 푸르고 공기도 좋다. 첫날, 술탄아흐멧 역 근처 숙소에 짐을 풀고 갈라타타워 인근 케밥집으로 향한다. 각종 향신료 냄새가 풍기는 골목을 지나 케밥집 도착. 드디어 실물영접. 고물가에 시달리는 터키 상황에 맞게 달랑 케밥 두 개와 콜라 두 개에 거진 3만 원을 태운다. (물론 내가 시킨 건 고등어 패티 더블) 낯선 향신료의 거부감을 뚫고 드디어 크게 한 입. 음- 뭐랄까 맛은 있는데 부푼 기대감이 사악 꺼진다. 조금 짠가? 아니 많이 짠가? 아, 고등어케밥.. 자, 다음은 천상의 맛. 호기롭게 카이막 두 개를 시키고 레몬음료도 시킨다. 음^ 유제품이라 그런지 부드럽고 고소한데 꿀에 섞어 빵이랑 먹다 보니 또 금세 물린다. 그나마 베이란이 감칠맛을 채워준다. 오래된 유적지, 사람들 그리고 음식이 터키 여행의 빅쓰리 키워드였는데 음식에서 이렇게 빨리 한국 맛이 그리워질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프랑스, 독일, 이태리 심지어 네덜란드에서도 잘 버텼는데 미식의 천국이라 불리는 터키에서 내 입맛이 지쳐버렸다. 여행이 중반쯤 지났을 때 한국에서 가져간 라면을 뜯었다. 뽀글이나 해 먹어야지. 그런데 이것도 별 맛이 없다. 왜지? 파묵칼레가 석회지대라 물 맛이 별론가. 아님 물 조절을 잘못했나. 아니 절대 그럴 리 없다. 군대에서 해 먹은 게 몇 갠데. 미식의 나라 터키에서 나는 입맛을 잃었다. 기대가 크면 늘 즐거운 법이었는데, 이번 기대는 버블처럼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튜브를 너무 믿었나?


이번엔 책으로 터키를 공부한다.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가는 비행기는 이 순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서관이다. 개인등을 켜고 터키사와 이스탄불 유명 지역을 확인한다. 한국과의 관계도 차근차근 알아간다. 궐부터 6.25 참전, 영화 아일라로 이어지는 형제의 나라 터키. (터키는 이제 튀르키예로 불린다. 대한민국-한국처럼 사실 터키의 공식명칭은 '튀르키예 줌후리예티'다. 다만 이 글에서는 언어의 경제성을 위해 터키로 명명한다.) 행 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터키만큼 심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는 지구상 거의 없다. 실제로 책에서처럼 한국인을 형제처럼 아끼고 반길까? 작은 유대라도 쌓을 수 있을까 싶어 그들 말을 한글 음차로 몇 마디 외운다. '멜하바, 나슬슨', '콜라이겔신', '부네카다' '테세큘 에데렘' 이렇게 몇 가지 말을 익히고, 그렇게 친근하고 따뜻하다는 터키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 그런데 누가 터키인인지 분간조차 안된다. 탁심 광장 일대와 신시가지 주변은 다양한 관광객들로 붐비는 것을 넘어 넘쳐흐르고 있었다. '와, 사람 진짜 많다. 정말 다양하다.' 이스탄불 거리는 새벽까지 붐볐고,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만든 인파에 놀라고 환호하며 이스티크랄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우리로 치면 명동에 가까운 이 거리에서 한국어를 비롯해 중국어, 일본어 호객이 끝없이 어진다. '니하오, 곤니찌와', '안녕하세요' 처음에는 반가웠던 이 인사가 여독과 함께 피로감으로 다가온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비잔틴 역사가 숨 쉬는 지구상 최강 도시라는 이스탄불에서 최첨단 짝퉁과 숨이 머질 것 같은 단과자에 목이 멘다. '이스탄불 나랑 안 맞나? 책에는 평생 단 한 곳만 여행하라면 단연코 이스탄불이라고 했는데, 여기가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했는데 어째 역사의 향기보다 상인의 냄새만이 풍긴다. 형제의 나라에서 왔다며 반가움을 표해도 물건을 사지 않으면 금세 얼굴이 굳는다. 가격은 '형제 프리미엄'이 붙어 부르는 게 값이다. 택시는 미터기가 아닌 흥정을 요구하고, 실크로드의 종착지인 대시장(카팔르 차르시)은 인종마다, 나라마다 가격이 다 다르다. 중동? 까지는 아니지만 이슬람 문화의 양대산맥이라고 자부하던 이스탄불 여행에서 산만한 상업자본주의와 문화의 자본 목격한다. 거의 모든 문화유산에서 터키 자국민과 외국인의 입장료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난다. 차등 가격은 여행객에 적잖이 부담되는 요소지만 그보다 더 큰 부작용은 여행 의지를 꺾는다는데 있었다.정도 불가한 황당한 가격 책정 앞에 우리네 문화재 입장료 차등 심 기원하게 된다. "외국인 특히 유럽인은 경복궁 입장료 3만 원은 최소 받아야 해. 화장실 이용료도 외국인은 꼭 따로 받고." 이번 여행을 위해 이것저것 살펴보며 기대도 많이 했는데 아쉬움의 그늘이 점점 짙어 갔다. 꽉 차 있던 터키에 대한 마음이 빈약한 초승달처럼 여위어 간다. 참르자 언덕의 터키 국기이 힘차게 펄럭인다. 을 너무 믿었나?


흥을 우기 위해 직인다. 괴레메 간다. 일명 카파도키아라고도 불린다. 이곳은 터키인들도 손꼽는 표적 관광지다. 스머프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고 기형괴석으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세계최대의 열기구 스팟을 유하고 있다. 소문대로 이건 정말 장관이다. 직접 타는 것도 좋지만 그 명성만큼이나 열기구들의 향연을 구경하는 것도 스펙터클 감동이 있다. 현실을 넘어선 초현실과 현실 같지 않은 비현실을 오간다. 살아있는 증강현실이 따로 없다. 다만 가격도 비현실적이다. 자연산 활어처럼 매일 싯가로 풍선가격이 널을 뛴다. 기본가격이 1인당 10만 원에 육박하지만 이마저도 굉장히 고마운 찬스다. 기상악화로 풍선이 못 뜨기라도 한다면 가격은 두 배, 세배 혹은 그 이상로도 올라간다. '또 터키 땅을 언제 밟겠나? 일생 한 번인데'라는 마음으로 자기 최면을 시도해도 200, 300유로 가는 가격은 분명 부담은 부담이다. 이걸 아는지 현지 업체도 저마다 호가 다르게 책정한다. 그래서 터키 여행은 발품이 필수다. 심지어 작은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탈 때도 손님마다 내고 타는 비용이 모두 다르다. 같은 노선 다른 가격. 매력 있는 제도지만 누군가에게는 24시간 할증과도 같다. (겐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호불호도 심하게 갈리고 비용에 따라 여행의 만족도가 심하게 나뉠 수 있다. (유명 관광지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터키는 험상 그 편차가 좀 더 컸다. 아마도 불안정한 환율 때문이었으리라.) 어쨌든 이런 혼란은 구글에는 없었.


상황이 이쯤 되면 행은 고사하고 그 나라 자체가 질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조건 일방적이지는 않다. 고객 평가에도 민감하다. 낙타투어를 위해 들렀던 여행사도, 공항 가는 셔틀을 운영하는 버스 회사도 별점에는 무척 신경 쓴다. 어딜 가나 좋은 후기를 남겨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한다. 성질 급한 업체는 당장 구글로 접속해 긴 이야기를 남겨달라고도 한다. 가격도 품질도 서비스도 모두 다르지만 하나같이 모두 별점에 크게 신경 쓴다. 이들에게 평점은 절대적이다. 간판 보다 확실한 홍보 수단이자 미래 수요를 확보하는 매출보험이기 때문이다. 최저 손해와 최대 만족을 위해 타인 경험을 참조하는 여행객들에게 이 5점 척도는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걸 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그걸 아는 데도?) 그렇지만 자유 여행의 묘미는 언제나 변수가 있다는 점. 개인의 특성이 경험의 범위를 좌우한다는 점에 있다. 아무리 평점과 별점, 추천과 비추천이 난무해도 그날의 변수와 개인 특성의 총합이 소중한 기억과 추억의 결합을 돕는 상급심원이 된다. 인의 후기를 확인하는 '참조'가 새로운 고객 '창조'에 크게 이바지하는 건 분명하지만 참조 사회가 공고화해지면 개인 특성의 다채로움은 다수의 경험 앞에 쉽게 색채를 잃게 된다. 참조 사회의 적들은 그래서 별점 테러에 앞장서는 키보드 워리어가 아니라 기억과 만족의 균일화를 거부하는 아방가르드 전사를 자처야 한다. 스탠다드함은 품질의 고름을 추구하기보다는 하향평준화 유혹에 더 잘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조하되 선택은 창조하려고 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구글 평점 2점 대였던 앙카라의 패스트푸드점 '도유요'와 점 3점 대였던 필라프 은 나에게 다시 가고 싶은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가 하면 아무도 추천하지 않던 뷰티샵이나 책에는 나와있지 않던 산책코스는 터키를 지극히 사적인 추억으로 수놓게 하는 (일등까지는 아니고) 삼등공신으로 자리했다. 점과 평점, 각종 후기를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세심한 자가만족의 최대치를 위해 높은 평점 좌우되지 않는 참조 사회의 당당한 적이 되고자 한다.


! 참조 사이트에는 없던 파묵칼레 기념품 가게의 할아버지, 탁심 광장의 생수 소년들, 숙소의 율칸, 여행사 사장 야신을 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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