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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껑열린 별똥별 Jul 15. 2023

달걀 프라이와 날아라 병아리

사람들은 저마다 감추고 싶은 비밀 스런 부분들이 있다.  상처, 장애, 또는 비정상이라고도 불려지는 그것들의 기준은 참으로 애매하다.  주로 타인의 관점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이는 남이 주는 그 이상한 침묵의 눈길을 초월하고 자기 삶을 살지만, 어떤 이는 마음고생을 가득하며 한평생 살기도 한다.  

나는 왼쪽 허벅지에 기다란 흉터가 있다. 내가 2살 정도 되었을 때, 엄마가 아궁이에 뭔가를 보글보글 끓이시는데 그 근처에서 다리를 덜렁거리며 놀다가, 그만 그 뜨거운 곳으로 퐁당 빠졌다. 엄마의 온갖 정성도, 병원 의사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원래 부잡한 아이였던 나는 붕대를 감고 온 동내를 돌아다녔고, 말랑 말랑한 흉터가 흘러내려 허벅지에 울퉁 불퉁한 자국을 선명히 남겼다.

그때는 그 흉터가 앞으로 내가 감추고 살아야 하는 수치심의 원인이 될지 전혀 몰랐다. 나는 그 흉터 때문에 학교에서 아이들의 조롱을 받았고, 무릎 위로 살을 보여야 하는 짧은 바지나, 치마는 상상도 못 했다. 당연히 다리를 다 드러내야 하는 수영복을 입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입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늘 옷이나, 책등으로 그곳을 꼭 가렸다. 그러다 보니, 가릴 것도 없이 버텨야 하는 동네 목욕탕을 가는 것은 최악이었다. 엄마는 이 흉터 때문에 행여 내가 시집을 못 가면 어쩌나, 혹은 미래의 남편한테 구박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하셨다. 지나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되지만, 그때는 정말 심각한 고민이었다. 

성장을 할수록 그 상처는 내 키와 더불어 같이 자랐다.  수술을 하는 방법도 알아보았지만, 그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는 엉덩이 살을 뜯어 와서 덮는 방법 밖에 없었다. 한 흉터를 가리기 위해 다른 하나를 만들어야 하는 결론을 얻은 후에야 우리 모녀는 더 이상 방법 찾는 것을 포기했다. 그 후에 온전히 할 수 있는 일은 남들의 불쌍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시선을 모른 척하고 무조건 버티는 것이었다.  

미국에 살면서 몸에 여럿 흉터가 있어도 다 드러내 놓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달려가서 가려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들이 나처럼 타인의 눈과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그 치부를 덮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어떤 부끄러움이나, 거리낌이 없이 흉터들을 다 펼쳐 보이고 당당하게 잘 다녔다. 그때의 충격은 너무나도 컸다. 솔직히 그들의 흉터를 바라보는 나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으면서, 나 자신은 왜  남의 시선으로부터 관대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으로 한참 생각을 했다.  그건 바로 “여자는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몸을 지녀야 한다”는 유교 사회의 잘못된 관습에 평생 세뇌된 덕분이었다. 몸의 흉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뿌리 깊게 심어 놓은 사회적 인식에 실망하게 되고, 그들의 기대에 절대 협조하지 않기 위해 용기를 키우기로 했다.  나의 인간적인 가치는 결코 타인에 의해 정의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남의 의지에 의해 깨져, 뜨거운 팬 위에서 프라이가 될지, 아니면 그 딱딱한 편견의 껍질을 혼자 깨고 날아라 병아리가 될지는 나의 결정에 달렸다.  나는 나의 흉터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나의 상처를 당당하게 포용하니, 오히려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나만의 특별한 표시라 더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 되었다.  내 왼쪽 다리의 훈장을 가장 잘 자랑할 수 있는 비키니를 입고, 아직도 잘 움직이는 팔다리가 있음에 감사하며, 이제는 사람들이 많은 해변에 가서도 자신 있게 물놀이도 잘한다.  

내가 허락하지 않은 세상의 모든 편견은 정중히 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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