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다 이유가 있어"
"오늘 이태원 갔는데 우리 2년 전에 갔었던 타로 집 선생님이 그대로 계시더라, 여전히 쪽집게야 너도 빨리 가봐"
J가 건넨 속보에 귀가 솔깃해졌다. 2년 전 J와 나는 이태원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우연히 들어갔던 타로 집에서 놀라운 쪽집게 선생님을 만났었다.
당시 나는 전 직장에서 새로운 팀으로 이동한 상태였고 이제 막 나의 직속 상사가 된 사람의 속마음을 물었었다.
"새로운 직속 상사분이 제가 일하는 거에 대해 만족하고 계실까요?"
선생님은 타로카드를 펼쳐보더니 질색하며 대답하셨다.
"이 사람은 당신을 여자로 보고 있어 언젠가 개인적인 술자리를 제안하는 날이 올 건데 절대로 가면 안 돼! 조심해야 해"
놀랍게도 이태원 선생님의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새로운 상사는 별다른 이슈 없는 면담을 핑계로 툭하면 근무시간에 카페로 몰래 불러내어 사적인 질문을 하였고 호시탐탐 둘만의 술자리를 노렸다.
나는 그를 최대한 피해 다니며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고 내가 이직에 성공하여 퇴사를 하던 날, 그는 오후 반차를 내고 위스키 바에 먼저 도착해있다며 둘만의 퇴사 파티에 참석하길 강요했으나
나는 마지막 퇴근과 동시에 그의 전화번호를 차단해 버렸다. 결국 선생님의 예언 덕분에 인생의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 후 인생을 살아오며 궁금했던 질문들이 많았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이태원 상권이 대부분 망해버렸고 상호도 확인하지 못했던 그 타로 집 또한 사라졌을 거라 생각하며 찾아가 보지 않았는데 여전히 그곳에 선생님이 계신다는 J의 속보를 듣고 나는 곧장 이태원으로 향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셨다.
"뭐가 궁금해서 왔어?"
"제 인생이요"
"생년월일이랑 이름 불러줄래?"
선생님은 사주 풀이조차 안 하고 그저 적어놓은 내 생년월일만 뚫어져라 쳐다보시더니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힘들었겠네 인생의 기복이 남들보다 유독 심했을 거야 지금 가족들이랑은 잘 지내?"
"아니요.. 말씀드리기는 복잡한데 지금은 혼자 살고 있어요"
"응 네 운명이 원래 그래, 엄마가 계셨다면 아빠가 안 계셨고 아빠가 계셨다면 엄마가 안 계셨을 거며 두 분 다 계셨다면 네가 나와 혼자 살아야 해.. 이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어"
나의 불운을 정답처럼 확고하게 단정 짓는 선생님이 야속해졌다.
"왜.. 제 인생은 그래야만 했어요?"
"다 이유가 있었어 그렇게 상황이 온전치 못해야만 네가 성장하거든 그래서 네가 지금 사람 된 거야, 옛날로 따지면 동자승 같은 거지 형편이 어려운 부모 곁을 떠나 절에 들어가 진리를 깨우친 동자승처럼 가족과의 결핍이 너를 더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 준거야 온전한 부모 밑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잘 풀렸다고 할 수 있지"
선생님 말씀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인생은 분명히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제멋대로 살던 철없는 나는 홀로 남겨지고 나서야 하나하나 직접 부딪쳐가며 깨달아 온 것들 덕분에 지금은 제법 새사람이 되었다.
곧이어 선생님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을 담담한 말투로 이어나갔다.
"그리고 네가 남들보다 인생의 굴곡이 심하고 유독 고비가 많았던 이유는 사실 너를 예뻐하는 조상님들 때문이야 네 곁엔 몇 분의 수호신들이 있는데, 그분들은 네게 욕심이 있으셔서 너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길 원하셨어 게으른 너의 천성을 극복하고 성장시키려면 너를 매번 위기에 빠트려야 했고 그럴 때마다 너는 그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계속 성장할 수 있었던 거야.. 생각해 봐, 네가 별다른 위기 없이 지금껏 순탄하게 살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사람 노릇 못 했을걸?"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는 위기를 항상 기회로 만들어왔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어두운 성격에서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계기는 소중한 사람들을 대부분 잃었을 때의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오래전에 놓아버린 글을 다시 쓰게 된 계기도 어렵게 이직한 직장이 생각했던 조건과 달라서 찾아온 우울감에 대한 돌파구로 시작되었다.
인생에서 좋은 대운이 오기 직전, 1~3년가량 교운기 시기를 거쳐야 하는데, 보통 그 시기에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겪는다고 한다. 실제로 자살한 사람들의 사주를 보면 자살한 시점에서 그다음 대운이 호운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바닥을 치면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이 원리에서 나온 것 같다.
인생의 기복이 유독 심했던 나는 이런 교운기를 여러 번 겪어보고 나니 이 원리를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갑자기 찾아온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결국 새로운 대안을 찾아냈고 그 대안은 전보다 더 윤택한 인생을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마치 기존에 순탄하게 걸어왔던 길의 끝에서 낭떠러지가 나타나 또 다른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더 빠른 지름길을 알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내 곁에 수호신의 존재한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2017년 겨울, 일본에 홀로 장기 여행을 갔을 때 핸드폰이 고장 나서 겪었던 수많은 위기들 속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매 상황마다 반드시 나타나는 일들을 겪으며, 내 주위엔 나를 위기에 빠트렸다가 다시 구해주는 장난기 많은 수호신이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2021.05.29일에 집필한 오사카 여행기 마지막 구절에 적혀있다.)
선생님은 "모든 일은 다 이유가 있어"라는 말과 함께 그동안 내가 하늘에 수없이 물어왔던 원망 섞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 말씀들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순 없지만, 그동안의 불운들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이번 생에 내가 풀어야 할 숙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단순한 불운이라고 원망하고 사는 것보단 그게 객관적으로 내가 더 발전할 수 있는 마인드니까
이태원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암시를 주었다.
"아직 가족들이랑 인연이 안 끊겼어 언젠간 다시 만날 거야 지금은 수련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성장해서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