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된 계기
집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다 문득 생각나서 10년 전 잡지를 꺼내와 내가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의외로 지금 보다 필력이 훨씬 좋았다.
그때는 본업이 글쟁이라 하루 종일 글만 써서 그런지 구사하는 논조도 다채롭고 전문적이었다. 20대 초반인데도 아주 똘똘한 녀석이었다.
"결국 글이 좋아서 다시 펜을 잡을 거였으면 10년 동안 왜 방황했지?"
열정 페이에 굴복했다지만 마감 때문에 거의 회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점심 저녁이 모두 나와서 굶어 죽지는 않았다.
어시스턴트 시절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텨냈으면 난 분명 그 분야에서 지금쯤 자리를 잡았을 거다.
하긴, 다시 생각해 보니 많이 힘들긴 했다.
친구들이 캠퍼스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홀로 조기 취업한 나는 잡지사로 출근해 에디터들의 텃새를 버텼다.
패션/뷰티 매거진이라 그곳은 여인들의 왕국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어시스턴트라는 직급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로 따진다면 수드라(노예 계급)였다.
밤 12시까지 기사를 쓰다 말고 뛰쳐나가 막차를 겨우 잡아타고 집에 가서 기절하기 바빴고 아침에 메이크업 대신 다크서클을 장착하고 출근하면 수드라 신분답게 담배 심부름부터 해야 했다.
각자 원하는 담배 이름들은 참 길고도 다양했다. 편집장님 눈에 띄지 않게 검은 봉투로 잘 감싸서 자리까지 안전하게 딜리버리 서비스를 해 드려야 했다.
"언니는 원래 귀족인데 서민으로 잘 못 태어났어"
이런 우스개 농담을 듣던 나는 수드라 생활을 버틸 수 없었다. 서민으로는 살 수 있어도 노예는 생활은 나의 한계였다.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일이었는데 결국 내 발로 나와서 재미없는 사무직으로 전향했다.
그 뒤로부터 나의 꿈은 오직 대기업, 더 많은 연봉, 더 좋은 복지, 정년이 긴 회사였다. 그에 대한 열망은 대단해서 이직에 목숨을 걸었다. 하루에 무조건 이력서 3개씩 일 년 내내 각 기업에 보냈고 심지어 여행 중에도 좋은 조건의 공고가 올라오면 호텔 내에 있는 PC를 빌려 두 시간 동안 이력서를 써서 보냈다. 이미 지원자가 150명인 공고에 말이다.
그 집념으로 결국 코로나 취업난을 뚫고 어렵게 이직에 성공했다. 출산 휴가를 몇 번이나 다녀와도 복귀가 가능하고 좋은 복지에 정년도 길어 결혼해서 여자가 다니기에 최적인 직장이었다.
어렵게 온 자리인 만큼 한 달 내내 감사함과 애정을 담아 일했다. 그러나 문제는 첫 월급이 입금돼서부터였다. 내가 생각한 금액보다 훨씬 적어서 확인해 봤더니 그 금액은 원래 내 월급이 맞았다.
이 회사에서 나에게 먼저 면접 제안을 해왔고 실무자들이 까탈을 부리느라 사람을 계속 구하지 못하고 있었던 자리였는데 내가 면접에 합격하자 인사 담당자는 풀 경력인 내가 변심할까 봐 세전 금액을 세후처럼 애매하게 둘러대 우선 입사시킨 거였다.
심지어 고작 일 년 먼저 입사한 직원이 나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이 회사는 규격화된 연봉 테이블이 따로 없었다. 대기업인데도 불구하고 납득이 안 가는 희한한 시스템이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난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억울하면 병나는 나는 정말 그날 이후로 몸져누웠다.
아무도 내 밥그릇 사정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직접 인사팀과 직속 상사를 찾아가 면담 신청을 했고 다섯 번의 전쟁 같은 면담을 끝내고 나서야 연봉협상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알고 왔던 연봉보다 조금 더 올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다시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해온 만큼 대접받지 못했다는 분노가 회의감으로 변하면서 모든 게 권태롭고 지겨워졌다. 주말에 분리수거를 하러 나왔는데 와인병이 끊임없이 나왔다. 정신 차리고 보니 몇 주간 술에 절어 살았다.
술로도 기분이 풀리지 않아 에세이를 한 권 사서 읽었다. 그 책은 너무 잘하려고 애써 왔던 나를 따뜻하게 다독여 줬다. 정말 신기하게도 진통제를 먹은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졌다.
힘들었던 만큼 문장 하나하나가 보약 같았다. 저자를 찾아보니 나랑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았다. 나이도 동갑이고 전공했던 분야, 해왔던 일까지도
갑자기 "나도 글을 써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마시다 말고 주섬주섬 노트와 펜을 찾았다. 그리고 제주도 여행기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10년 전 글을 쓸 때는 필력과 단어에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최대한 있어 보이게, 어렵게, 전문가처럼 말이다. 기사 외에 내 이야기를 쓸 때에도 그랬다. 경험도 없는 속 빈 강정이라 어려운 단어들로 포장해야만 했다.
10년이 흘러 다시 펜을 쥐어보니 나는 많이 변해있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보고 배운 경험들이 하나 둘 쌓이면서 제법 내면을 가득 채웠다.
내면이 가득 차니 단어를 어렵게 쓸 필요가 없었다. 최대한 간결하게, 누구나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쉽게 써 내려갔다.
"그제서야 하늘이 나에게 왜 10년이란 공백을 줬는지 깨달았다."
나는 그때 펜을 쥘 자격이 없었다. 아무리 내가 화려한 단어와 필력으로 무장했어도 읽는 사람에게는 텅 빈 내면이 훤히 들여다 보였을 것이다.
그때 내가 회고록을 썼다면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한 일이다.
10년 동안 하늘은 수없이 나를 가시밭으로 내던졌다. 나는 피가 흐르고 딱지가 지고 아무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내면이 굳은살처럼 차오르고 단단해졌다.
이젠 보여줄게 많으니 굳이 있어 보이는 단어로 포장할 필요도 없다.
8년 전 사주를 보러 갔는데 삼십 대 중반 즈음에 다시 글을 쓰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는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하늘이 원래부터 정해 놓은데로 내 인생이 흘러가는 느낌이다.
"그동안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생겼는지 이제는 모두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