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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운 Oct 05. 2024

정량적이기보다 정성적인 삶

독서, 달리기, 그리고 삶.

주중의 루틴으로 독서와 달리기를 꾸준히 한 지 5년 차에 접어들었다.

하루에 한 줌씩 쌓이는 독서라는 훈련의 과정을 돌아보면 내 개인의 세상을 보는 시야와 생각하는 힘이 횡적 종적으로 향상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한편 가뜩이나 많은 생각들에 독서를 통해 얻은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머릿속을 온통 헤집고 다니기 시작하면, 나는 달리기를 시작한다.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의 꼬리를 붙잡으며 상상에 몰입된 달리기를 하다 보면, 과거를 돌아보기에서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고, 종국에는 한 문제를 단순하게 종결해 버릴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상의 행위 중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주체가 그것을 얼마나 수용하고 즐기는 가에 따라 삶의 의미가 달라지고 인생이 확장되는 것을 느끼며 새삼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된 주중의 일상들을 때때로 이렇게 글로 옮기고 있다.

내가 존경하는 한 작가는 어떤 추상적인 마음과 느낌을 단어, 문장화하여 시각화하고, 그것을 부르고 읽행위를 통해 그것이 비로소 살아있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세상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되는 시간은 인생에서 모두에게 공평한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을 의미를 부여해서 정성스럽게 보내고 그 시간을 거쳐간 행위와 생각들을 명료하게 시각화하는 글쓰기를 하면 나의 본질이 분명하게 떠오르고 인생의 방향을 정돈하고 다듬을 수 있다.

 

일상의 루틴은 마치 명상과도 같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너무 무겁고 중요한 인생의 요소들이 단순한 것들로 분류되어 버리고는 한다. 그러면 일종의 시원함을 느낀다. 이것을 나는 ‘마무리’라고 부르고 싶다.


최근 사서 일을 그만두고 일반 직장인으로 복귀했다. 입사 한 달이 막 지났지만 인수인계를 해 주는 사람도 없고, 내 뒤에 앉은 사람들의 이름도 모를뿐더러, 우리 팀 직원들의 나이와 연차 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 개인의 일만 하고 가겠다는 조직 문화 때문에 나와 같은 매니저급을 제외한 일반 직원들은 아침 11시가 다 되어 출근하고 늦은 밤에 집에 간다. 20여 년 간을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왔고 저녁의 삶이 소중한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운 조직 문화다.

최근 그룹 차원의 경영 방식의 변화로 상처받은 오랜 직원들이 속속 떠나고, 거의 절반 이상이 외부 신입이나 나 같은 중고신입들로 채워졌다고 들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무기력함과 우울감과 누적된 피로를 그대로 느끼는 반면 새로운 사람에 대해 늦추지 않는 경계와 텃세도 보인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조직에 몸을 담고 열심히 일해왔는데 나 같은 외부 직원이 하루아침에 상부 매니저로 채용되었을 때 느낄 조직원들의 허탈감과 자괴감 또한 잘 알고 있다.

출근하면서 이미 괴로운 얼굴을 하고 꿈도 희망도 없이 조직을 비난하는 말을 늘어놓는 직원들을 보며, 과거 업무에 찌들어 작은 조직에 인생이 갇혀버렸던 내 모습이 투영되기도 하고, 사서로써 석 달을 일했을 때 과업이 주었던 즐거움과 보람에 대한 그리움이 들었다. 반면 사서 연봉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지금의 연봉통지서를 볼 때마다 다시 좋아하는 일과 돈을 버는 직업 사이를 쉴 새 없이 저울질하고, 가성비와 효율성이라는 측면의 고민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근 20년을 다닌 직장을 퇴사하고 한 동안 사람들이 퇴사 사유에 대해 물어봤을 때 처음에 나는 이래 저래 말이 많았다. 지난 20여 년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마는, 나는 그 부분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꼭 다 이해받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자책, 그러다가 남 탓과 원망, 그리고 자괴감과 패배감이 들며 실패자라는 낙인을 스스로에게 지우며 우울한 인생을 형성해 나갔다. 어떤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세계관에 갇혀 버리면 그 자체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잠식해 버리는 것은 순간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똑같은 시간을 비관적인 마음으로 다 칠하고 버려버리는 것이다.


이런 과거를 떠올리며 작금의 현실이 뒤섞인 채로  오늘의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가 중반에 다다를 무렵 나는 진짜 퇴사의 이유에 대해 정리가 되었다.

나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성적인 문제에 집중했던 것이다.


지난 20년 간의 직장에서는 단순히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커서 일에 과 몰입했다. 승진의 욕심도 없었지만 나의 시선은 늘 내가 아닌 외부에 존재해 있었다. 그러다 빠르게 승진했지만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탓으로 심리적 압박과 주변의 질투가 존재했다.

그러면 지금 나는 무엇 때문에 회사 일이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지금도 중간에 다리를 걸친 매니저로 입사해서 ‘얼마나 잘하는가 보자’ 식의 직원들의 시선이 존재하는데 내 의식이 그쪽에 머물러 있으면 회사 일이 스트레스이고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일이 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늘 자책이 컸고 잘한다는 칭찬도, 못한다는 타박도 싫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는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출근해서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이 그저 수동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과제에 대해 고민하고 회사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고, 시장 조사를 하는 일들이 일이 아닌 공부라고 생각이 미치자 삶의 질이 갑자기 대폭 상승했다.

그렇게 업의 본질을 공부로 정의해 버리자, 일에 질질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주도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결국 삶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최근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라는 책을 굉장히 몰입해 읽고 있다. 내부의 내 영혼이 가지는 의도를 구체화해서 실행하면 자연스럽게 내가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한 외부 세계와 연결되고, 결국 내 인생의 많은 그림들 중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실로 어마어마한 내용이다.


오늘의 달리기에서 나는 정성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의 본질에 다다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사람에게 주어진 똑같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낸 것도 감사하다.


내 삶의 본질은 오래 달리기와 맞닿아 있었다. 같은 시간 속에서 꾸준히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삶. 달리기를 시작할 때와 종착지에서의 내 인생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오늘 하루는 우선 성공이다. 이 느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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