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하듯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그때를 기다려. 충실히, 성실히, 절실히, 길게. - 본문 중에서
<쓸 만한 인간>은 2013년부터 '톱클래스'라는 잡지에 칼럼으로 실었던 글을 모아 2016년에 출간되었던 박정민 산문집의 개정증보판입니다. 기존 도서에 실리지 않았던 몇 개의 새 글을 포함, 수정 작업을 거친 후 재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윌라오디오북에서 들은 책입니다.무심결에 귀만 열어놓고 듣다가, 점점 열심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십 대, 아직 배우로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햇병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병아리쯤 되던 시절부터 쓴 글인데요, 들을수록 귀에 착착 감기고 감칠맛이 나는 것이 글이 참 맛깔스러웠습니다.
게다가 본인이 직접 모든 글을 낭독했는데 그 점은 윌라에게 고맙기까지 합니다. 듣는 독서의 즐거움을 또 느낄 수 있었거든요.
글에는 재치와 유머가 사이사이마다 쏙쏙 빼먹기 좋게 들어있습니다. 어떤 글은 한 편의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일본 여행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나, 그린라이트에 대한 이야기, 인터뷰 등 많은 글 속에 웃음이 함께여서 듣는 즐거움이 더했습니다. 왠지 웃픈 느낌도 들었습니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성우처럼 읽어나가는 글들이 내 귀를 타고 들어와서 가슴까지 닿아 웃게 하는 힘이 좋았습니다.
그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엄마'나 '아빠의 청춘'에서는 속 깊은 아들 냄새가, '새해 복'과, '덕'에 서는 동물을 사랑하는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났습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들.
한예종에 입학하기 위한 면접 이야기도 재밌습니다. 그의 유니크함이 보였다고 해야 할까요. 박원상 배우와의 인연도 예사롭지 않더군요. 이준익 감독과 함께한 영화 <동주>와 <변산>에 대한 글은 그의 배우로서의 깊은 고뇌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박정민이라는 배우를 눈여겨보게 된 것은 아무래도 영화 '동주'에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송몽규' 역할이었는데 동주 역의 강하늘보다 더 눈에 들어왔었거든요. 이 작품으로 그는 신인남우상을 수상했습니다.
계속 생각해 보니 내가 보고 기억하는 박정민의 영화 출연작은 기적, 시동, 타짜:원 아이드 잭, 사바하, 변산, 그것만이 내 세상, 지옥 등인데요, 이외에도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분명히 본 영환데 박정민이 출연했었는지조차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영화가 많아서 깜놀했네요.
많은 출연작 중에 변산에서 보여준 랩,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보여준 피아노 실력은 감탄사를 부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때부터 였을 겁니다. 박정민 배우에게 확 꽂혔을 때가.
실제로 그는 힙합과 랩을 좋아한다고 해요. 피아노는 전혀 문외한이었는데 영화를 위해 피나게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피 땀 눈물이 영화 속에서 빛을 더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스테디셀러더군요. 꾸준히 많이들 읽고 혹은 듣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들어보니 그럴만하다 여겨졌습니다.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가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길을 냈으니까요. 결국엔 다 잘될 거다,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다, 당신은 강한 사람이다 같은 흔하지만 한 줄의 그 문장이 사람들에게 닿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도 역시 우리처럼 힘들지만 열심히,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어. 하는 어떤 동질감과 공감에 교집합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도시가 안개에 갇혀버렸습니다. 마치 영화 미스티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를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비가 한 방울씩 내립니다. 안개는 소리도 없이 도시를 휘감았지만 곧 홀연히 사라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