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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Jan 24. 2023

꽃신

'첫' 2




마루 위로 길게 볕이 집을 짓고 있는 오후 나절.

그 반짝이는 볕 속에 오도카니 앉아있던 아이는 눈이 빠지고 목이 길어집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장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아버지는 모처럼 이른 아침 장나들이를 갔습니다. 바짓가랑이 붙들고  "내도 데려가도오" 울고불고했는데도 엄마 아버지는 "요서 딱 기다리고 있으래이. 후딱 댕기오꾸마." 휑하니 바람만 남긴 채 등을 보이며 총총걸음으로 가버렸습니다.

아이는, 볕에 눈이 부셨지만 꼼짝도 하지 않고 온몸으로 볕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으니까요. 시선은 저 멀리 보이는 고갯마루. 그 고개를 넘어서 엄마 아버지가 온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얀 진돗개인 메리는 아이의 심통을 달래려는 듯 아이 앞에서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매일 같이 놀던 메리의 재롱에도 도무지 기분이 나이지지가 않았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아이는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볕은 마루 끝으로 밀려나고 볕이 지은 집도 점점 좁아들 즈음, 메리의 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아이는 그제사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꿈속에서 엄마 아버지가 두 손에, 머리에 들고 이고 오던 보따리가 정말 눈앞에 나타났거든요.


아버지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아이를 바라봅니다. 엄마는 눈 흘기며 귀여운 듯 아이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꺼내놓았습니다. 알록달록 꽃신 한 켤레.

아버지는 아이에게 꽃신을 신겨봅니다. 마침맞게 잘 맞습니다. 아이는 신이 났습니다. 꽃신을 신고 마루 위를 폴짝폴짝 뛰어봅니다. 그래도 마당에는 나가지 않습니다. 흙이 꽃신에 묻으면 안되니까요.


저녁이 오고 어스름 달빛이 쟁반같이 떠있는 하늘. 금세라도 별들은 땅 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

아이는 꽃신을 꼭 안고 밥을 먹고 엄마의 따사로운 품에서 잠을 청합니다. 내일은 동네에 나가서 친구들에게 꽃신을 자랑할 생각입니다. 그 생각에 기분은 둥둥 하늘을 납니다.


아이는 꿈속에서 배만큼 커진 꽃신을 타고 하늘바다를 훨훨 날아다닙니다.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발그레 퍼집니다.






출처 네이버 이미지





언제였을까요.

너무나 오래된 기억이지만 꽃신에 대한 첫 기억이자 마지막 기억입니다.

아마도 그날은 추석 명절 전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몇십 년도 더 전의 기억. 시골에서의 기억. 흑백사진으로 박혀있을 기억. 그럼에도 선명한 컬러로 각인된 기억.



그날의 꽃신은 고무신이었고 색동색이었습니다. 요즘은 사라져 버린 것들 중의 하나일 겁니다. 사진을 찾아봐도 그 시절의 꽃신은 없었습니다. 한복이 아니면 꽃신을 신을 일도 없는 요즘입니다. 그럼에도 사진처럼 기억이 흐려지지 않은 건 꽃신을 둘러싼 그 배경이 몹시도 아름답고 그립기 때문일 겁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아주 더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추억입니다. 이 날은 꼭 기억하고 싶은 날 중의 하나였던 모양입니다.

아직도 그 색깔은 빛이 바래지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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