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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뮬 May 08. 2022

<당신은 세상을 시청합니까?>

세상을 대하는 법

    이제야 숨이라는 게 쉬어졌다. 나무가 폐에 자신의 가지를 집어넣어 산소를 한 올 한 올 불어넣어 주는 것이었다. 공기청정기가 아닌 자연이 주는 선명한 공기가 온몸을 맴돌았다. 자연 속에서는 도시에서 쉬던 숱한 한숨이 하늘을 향한 관대한 심호흡이 되었다. 도시에서의 일상과는 다르게 자연에 가면 시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한숨이 심호흡이 되는 것도 한숨을 크고 느리게 쉬어서 심호흡이 되는 것이었다. 도시에도 피는 똑같은 민들레가 시멘트 사이가 아닌 녹색의 푸르른 풀들 사이에 있을 때는 더 소중하고 귀여워 보였다. 비 오는 날 아스팔트 위를 기어가는 지렁이를 보고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였다. 지렁이가 사람들에게 밟혀 몸의 한 부분을 잃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내가 살아가면서 놓친 놀라운 광경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다. 세상을 시청하기만 하는 내가 정말로 하찮은 존재였다.




    특별한 것이 아닌데 소중하고, 하찮은데 위대하게 보이는 건 이제야 내가 자연을 제대로 받아들였다는 신호일까. 너무 바쁜 일상을 보내서 봄이 훌쩍 다가와 이제는 조금씩 여름으로 탈바꿈한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우리 집 마당에 핀 라일락의 향기도 외출하기 전에 칙칙 뿌려댄 향수 탓에 제대로 한 번 맡아보지도 못하고 져버렸다. 개미가 흙길을 개척하고, 지렁이가 지하 동굴을 만들고, 나비가 날갯짓을 익히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수많은 곤충들의 은밀하고 에로틱한 짝짓기도 놓치고 말았다. 우리 집 뒷산에는 필사적인 생명의 에너지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우리가 거대한 자연을 마주할 때 어떻게 행동하고, 교감해야 할까? 자연을 향한 파괴와 자연에 대한 간섭은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하고, 자연에 속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종의 꽃을 10번 보더라도 시간, 장소, 바람의 세기, 햇빛의 강도, 흙의 색 등에 따라 아름다워 보일 수도, 하찮아 보일 수도, 사랑스러워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계속 자연을 관찰한다면 분명 배우는 것이 생길 것이다. 작은 생명체들이 주는 인간의 온몸을 울리고도 남을 위대한 용기와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휴식....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의 질감을 느끼고, 생명의 저력을 새길 수 있었다. 나는 그러하였다. 자연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순간을 이렇게 대해야 한다. 치밀한 관찰과 폭넓은 교감을 통해 삶은 더없이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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