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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Jul 11. 2024

남한산성에서는 뛰는 거야!

제1회 남한산성 1222 계단 트레일런

지난 6월 22일 뚝섬 하프 마라톤을 시작으로 6월 29일 문경 100km 울트라 마라톤 도전에 이어, 7월 7일 남한산성 트레일런.

3주째, 매 주말마다 한국에서 열리는 다양한 레이스에 참가 중이다.


포장된 도로나 그다지 업다운힐이 심하지 않은 일반 마라톤 레이스의 주로와 달리, 트레일런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코스가 비포장은 기본이고, 마치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승천이라도 할 듯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 계단과, 바위와 나무뿌리가 복잡하게 뒤엉켜있는 거칠고 험한 산길을 달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1회 대회라고 하니, 올해 처음 개최되는 모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 일요일 아침부터 제법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들었다.

사이판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업힐 훈련을 위해 경사가 심한 언덕을 뛰어오르지만, 섬의 특성상 제대로 된 산이 없는지라 울창한 숲에서 느끼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며칠간 제법 많은 비가 내려서 걱정이 됐으나, 다행히도 대회 당일에 비는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엄청나게 습한 공기는 눅눅하고 축축하다 못해 끈적거리기까지 했다.

7km와 15km, 두 가지 코스가 있었고 당연히 나는 15km 코스에 참가 신청을 했다.

출발 신호와 함께 배낭이나 패니 백을 허리에 찬 참가자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주최 측에서 골인 지점 외에는, 코스 중간에 참가자들을 위한 음료나 간식을 제공하지 않기에, 각자 알아서 레이스 중간중간 마실 음료나 당충전을 위한 먹거리 등을 준비해야 한다.

등산 용품을 파는 가게와 정겨워 보이는 식당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남한산성 초입 도로를 지나니 곧바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며칠간 비가 와서인지, 코스 곳곳에 즐비하게 드러누운 이끼 낀 젖은 바위들도 다소 위험해 보였고 울퉁불퉁 질척 질척한 바닥도 미끄러운 곳이 많았지만, 차분하게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남한산성 1222 계단 입구에 다다랐고, 이때부터 끝이 없을 것 같은 '지옥의 계단 오르기'가 시작됐다.

되도록 앞이나 위를 쳐다보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하나둘씩 계단을 오르긴 했지만, 바닥에 후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떨어지는 땀방울들과 숨 넘어가기 직전의 거칠고 불안정한 호흡은,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내 바로 뒤에서 계단을 오르던 중년의 한 남성 참가자는 유난히도 죽는소리를 하며 요란하게 끙끙대는 신음소리를  연신 크게 뱉어내는데, 참으로 거슬리고 신경 쓰였다.

'아니, 혼자만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다들 똑같은 조건이고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왜 저리 유난일까.'


'도대체 이 우라질 계단은 언제 끝이 나는 거냐...' 육성으로 욕지기가 나오려던 찰나에, 드디어 1222 계단이 끝나고 성벽을 끼고 달리는 코스가 시작됐다.

아주 힘든 코스는 이제 어지간히 끝났겠거니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개인적으로 1222개의 가파른 나무 계단은 그나마 양호하게 느껴졌다.

크기도 제 각각인 크고 작은 바위들로 불규칙하게 만들어진 돌계단이 끝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올라가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나타나서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다.

'아, 이거 만만한 코스가 아니구나. 더럽게 힘드네 정말...'

비 오듯 흐르는 땀과 헐떡 거리는 숨소리, 터질 것처럼 팽팽하게 긴장된 허벅지의 통증을 느끼면서도... 그토록 힘들다고 씩씩 대면서도 지금 이 순간이 싫지 않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직접 체험하고 느끼지 않으면 절대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실만이 안타까울 뿐이다.


트레일런이나 울트라 마라톤에서, 코스를 이탈하거나 길을 잘못 들어서 정해진 거리보다 더 달리는 상황을 두고 '알바' 했다고 표현한다.

특히 트레일런은 코스의 특성상,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알바의 경험을 피해 가기 힘든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포함한 많은 참가자들이 작게는 1~2km부터, 많게는 4~5km 가까이 알바를 하고 말았다.


헷갈리기 쉬운 지점에는 리본을 달아두던가 방향을 안내하는 표식이라도 좀 했으면 했는데,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국내의 모든 국립공원이나 둘레길에는 함부로 그런 표식이나 마킹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곤란하단다.

아니, 그렇다면 참가비를 좀 더 받더라도 혼란스러울만한 장소에 진행요원이라도 배치해서 안내라도 해주던가...

작년에 참가했던 '안산, 인왕산, 북악산, 3 산 종주 트레일런'에서도, 코스 중간중간에 제대로 된 표식이 없어서 참가자들이 혼란스러워했었는데... 올해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 점이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트레일런을 사랑하는 더 많은 러너들의 대회 참여를 위한다면, 주최 측인 한국 산악 마라톤 연맹에서도 대회 진행이나 준비에 개선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왔던 길을 다시 한번 돌고 여기저기 헤매고 기웃거리다가, 오고 가는 등산객들에게 물어물어 가다 보니, 드디어 골인 지점으로 향하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놈의 알바를 하느라고 3km 정도를 더 헤매고 다닌 덕분인지, 이미 다리는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상태이고 피로도 몰려오고 있었지만 어쨌든 레이스는 마무리해야 하니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골인!

한국에서의 세 번째 레이스를 마쳤다.

완주 메달과 기념 티셔츠, 간식 등을 받고 간단하게 사진 촬영을 마친 후, 얼얼해진 다리를 이끌고 두 딸내미들이 기다리는 숙소로 향했다.

"얘들아, 엄마 또 하나 끝냈다!"


참 희한한 건, 남한산성 트레일런을 끝낸 지 채 일주일도 안 됐는데, 슬슬 짜릿했던 그 코스가 그리워진다는 거다.

뒈지게 힘들었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있달까...

그렇다, 이쯤 되면 병이다.


뛰기에는 다소 험한 코스일 수도 있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남한산성에서는 자고로 달려야 맛이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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