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지향 6년 차의 이야기
원래부터 문구용품을 아주 좋아했다. 다른 문구덕후와 비교하면 그렇게 욕심쟁이는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포스트잇이 잔뜩 있었던 중학교 시절이 있었다. 그 많은 포스트잇을 다 들고다니고 싶어 적당한 크기의 바구니를 집에서 찾아내어 넣고 다녔다. 그렇게 눈에 띄게 되자 같은 반 학생들이 나에게 포스트잇을 빌려, 정확히는 한장씩 가져갔다. 지금 냉정하게 돌아보면 물질적으로 손해만 본 것이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행복했다.
그렇게 나의 문구 욕심은 변화없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가까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변화는 찾아왔다. 입학금에 놀란 엄마의 폭탄발언이었다.
"용돈은 이제 안 줄 거야. 버스비하고 밥값은 내가 다 주는데 이거만 해도 얼마야. 용돈은 솔직히 필요없지 않아?"
단번에 용돈 못 받는 신세가 되는 순간이었다. 거기다 동생이 다니던 학교를 고려해 전보다 더 좁은 집으로 이사가면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생활을 살 수 없게 되었다. 욕심은 쉽게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미니멀이라는 개념도 모른 채 강제로 미니멀을 실천하게 되었다.
나의 대학교 1학년 시절은 점심으로 최애 음료인 '요거트 스무디'와 삼각김밥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로 채우고 전공 강의로 진작에 망해버린 시간표 덕에 동아리실에서 공강 5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이 이걸 알면 이거 갖고 점심이 되나며 놀라겠지만, 난 덩치가 매우 작고 소식하던 사람이라 의외로 이 정도로도 점심이 가능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은 엄마가 해주시는 밥으로 든든하게 먹는 편이라 영양 문제는 생각보다 문제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날에도 점심용 스무디를 사러 대학 내 서점에 가서 음료를 주문했다. 음료를 기다리다 심심해져 책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띄인 노란 책이 있었다. 바로 곤도 마리에의 <곤마리 씨, 우리 집 좀 정리해주세요>였다. 만화를 좋아하면서 책 자체는 별로 안 좋아하던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잠깐이라도 살펴보고 싶었지만, 손상되지 말라는 듯이 비닐로 포장되어서 읽어볼 수 없었다. 읽을 수 없으면 뭐 하겠느냐. 산다.
당연히 이때 나는 엄마의 선언 이후 용돈은 거의 없었지만, 점심값에서 아낀 돈에 생일선물로 돈을 주신 경우가 있어서 이 책을 살 정도는 되었다. 난 음료를 받은 후에도 책을 놓고 한참을 고민하다 '이번 한번만 눈 감고 사자'라는 생각으로 사게 되었다.
동아리실에서 음료를 마시며 본 책은 내 머리를 강타했다. 마법같이 변한 방. 나는 내 방이 너무 좁다며 싫어했는데 사실 진짜 이유는 물건이 너무 많아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건에게 방세를 주고 있던 것이었다. 그 이후 이 책은 2023년 1월까지 계속 재독하면서 내 물건을 조금씩 줄이게 한 일종의 인생 지침서가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필요없다고 생각한 걸 그냥 버렸다. 기부도 못할 상태의 물건이었기 때문에 기부는 꿈도 꾸지 못했다. 중학교 때 다이어리는 당시 내가 다시 보기 싫었다는 이유, 과거에 쓰던 필통은 지금도 쓰는 다이소 레몬 파우치가 제일 좋다는 이유 등으로 버려졌다. 당시 미니멀은 진짜 쉬운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고, 그 생각은 두 가지 일이 있고 난 후 사라졌다.
첫째, 인스타그램에서 본 스타빌로 형광펜을 사고 싶다고 생각한 직후의 일이었다. 처음 접한 형광펜이다 보니 하필 스테들러로 착각해 7개 세트로 사버리고 말았고, 집에 와서 종이에 그어보면서 잉크가 너무 많이 나와 이게 아니었다며 스스로를 원망했다.
'왜 색깔별로 하나씩 샀어. 테스트용으로 딱 1개만 사지.'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었고 환불할 수도 없어 그만 자신을 탓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스테들러 형광펜은 7개 중 주황색 1개만 올해 1월에 다 썼을 정도로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잉크가 너무 진했으니 손이 안 가는 게 당연했다. 나는 이 형광펜 무더기를 볼 때마다 다음에는 절대 이러지 말자며 되새기면서 조금씩 사용하고 있다.
둘째, 애초에 내 한계를 알지 못했다. 우리 집은 4인 가족이었고 내 방은 동생과 사용하던 방이었다. 초기에는 우리 집에 물건이 많다고 생각한 내가 부모님께 충고를 빙자한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 이후 내 다이어리와 스티커를 살펴보다 생각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내가 과연 잔소리할 만한 자격이 있을까? 물건 다이어트 요요가 온 주제에.'
그 이후 나는 물건과 관련된 잔소리를 그만두기로 했다. 내 물건 다이어트를 잘 해서 적은 물건으로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로 했다.
6년이 지난 지금은 대학원 생활로 인해 다시 용돈받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미니멀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물건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문구는 눈에 띄게 줄어 펜꽂이가 필요없어져서 그림 그려서 펜이 많이 필요한 동생에게 주었다. 필요한 물건이 많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선물로 물건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다이어리 방식도 불렛저널로 바뀌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미니멀을 지향하면서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는 제르넨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