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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말 Feb 27. 2023

초조함이란 감정의 무게

이혼 소송 중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감정 중 대표적인 것은 상대 배우자나 상간남, 상간녀에 대한 분노감일 것이다. (나의 이혼 사유는 불륜이 아니기에 그로 인한 분노감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다음이 우울과 슬픔인 것 같다. 인터넷 카페 게시글들을 보면 대체로 그런 감정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의외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감정은 초조함이었다.


제주로 이주한 지 1년이 넘은 시점, 그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해외 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으니 제주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1년 동안 거의 연락이 없던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치고는 너무 뜬금없고 예상밖의 이야기였다. 내가 왜 별거를 선택했는지 정말 모르냐고 묻고 싶었으나 얘기해도 여전히 모를 것 같아서 묻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제주에 집을 얻어서 아이를 케어하겠다느니, 육아휴직을 하겠다느니 하며 전혀 현실적이지도 않은 의견들을 내놓았다. 그 후에 그는 카톡으로 ppt 파일도 보내왔다. 제목이 뭐였더라. 행복플랜? 회사에서 브리핑하던 습관의 연장선인가, 어이없는 발상에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ppt 파일을 열어보니 앞으로 퇴근 후와 주말에 자신이 요리를 하고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도 적극 하겠다는 내용, 나의 부모님에게 집을 사드리고 용돈을 드리겠다는 등의 허황된 약속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아내의 의사를 절대적으로 존중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가 존중하겠다는 나의 의사 중에 이혼은 포함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2년 반 전 소 취하를 부탁하며 내가 원하면 소송 이혼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이혼에 동의해 주겠다는 약속은 까맣게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 날이 갈수록 그가 절대 호락호락하게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다시 소송하는 것뿐이다. 이전엔 소장 접수 후 얼마 안 되어 취하를 했지만 이번엔 끝까지 가야 한다. 잊고 싶은 일들을 다시 기억해 내고 정리해서 증거로 만들어야 했다. 소송을 몇 번이나 해야 할지 모르니 변호사 비용으로 몇백만 원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 혼자 소송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한 번 남에게 맡겨보고 맘에 들지 않거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상한 ‘셀프’ 정신이 발동하는데 이번에도 그런 셈이었다. 변호사 선임 비용도 부담이 되었지만 혹시 변호사와 의사소통이 잘 안 되거나 변호사가 내 사건에 소홀하다면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변호사 선임비를 입금하고 나서 ‘을’이 되는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기에 더욱 그러한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시 소송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시점부터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 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하는 방법도 잘 모르겠고 하기는 싫고 미칠 지경이었다. ‘처음에 소 취하를 하지 않았더라면’ 하면서 후회를 백만 번 해보아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거의 울부짖는 심정으로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찾으며 소송 절차를 밟아나갔다. 통화 녹음 파일을 다시 들으며 녹취 의뢰할 부분을 찾는 일이 특히 고역이었다. 그의 목소리와 지금 들어도 화가 나는 말들, 거기에 대답하는 나의 목소리. 나의 대답은 왜 그리 자신감이 없고 냉철하지도 못했는지 자책감이 들었다. 정신력이 바닥날 때면 아이에게도 나의 힘든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슬퍼하고 화내다 정신적으로 거의 탈진한 나의 모습을 보며 아이는 불안해했다.


그러나 아무리 하기 싫더라도 지금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소장 접수 준비를 했다. 그의 소유인 아파트에 가압류를 했고 재산분할 금액에 따른 공탁금과 인지대 등을 납부했는데 지금은 자세한 절차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꽤 오래전의 일이 되었다.


소장에 대한 답변서를 받아보니 그는 이혼 생각이 없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원고의 이혼 청구의 기각을 구한다고 하는 그 말에 어찌나 답답하고 화가 나던지. 변론기일을 기다리는 것도, 그전에 준비서면을 쓰는 것도 너무 지치고 힘든 일이었다. 그가 나를 상대로 왜 변호사까지 선임해 가며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저 나의 입장과 내가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도대체 나는 언제 이 사람과 법적인 남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의 내 삶을 내 의지대로 계획하는 데 그가 어느 정도로 걸림돌이 될까? 소송은 언제 끝날까? 변호사도 없이 과연 소송에서 이길 수나 있을까? 만약에 내가 진다면 몇 번이나 더 소송을 해야 할까? 앞으로 경제 상황은 얼마나 더 나빠질까? 등 나의 질문들에는 어떠한 답도 없었지만 질문을 멈출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미래를 걱정해 봐도 아무것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혼을 한다고 해도 재산분할에서 받아야 할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도 있고 그가 아이를 빌미로 나를 계속 괴롭힐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것 또한 내가 초조하고 불안한 이유 중 하나였다.


나에게 있어 다른 감정들은 기복이 있었다. 화가 났다가도 가라앉았고 우울하다가도 괜찮아졌다. 하지만 초조한 느낌은 하루종일 지속되었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불안했다. 정신이 어딘가 멍하니 붕 뜬 느낌이고 어떤 일에도 집중하거나 에너지를 낼 수 없었다. 초조함이란 감정은 나의 의지력을 소진시키고 내 얼굴에서 표정을 지워버렸다. 온종일 두근대는 긴장감속에 하루하루는 의미 없이 지나갔다.


나는 세상과 끊어졌고, 끊어지고 싶었다.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들조차 겨우 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할 의욕도 없었다. 초조함을 덜 느끼려면 신경을 다른 곳으로 자꾸 분산시켜야 했기 때문에 소파에 누워 하루종일 티브이를 보았다. 내용이 자극적이고 흥미로울수록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티브이 속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소송 절차는 느리게, 느리게 진행되었고 결과를 알 수 없는 끝없는 기다림 속에 나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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